책임경영·쇄신 명분 앞에 갈대처럼 쓰러지는 우리 주변 '김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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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경영·쇄신 명분 앞에 갈대처럼 쓰러지는 우리 주변 '김 부장들'

르데스크 2025-12-05 16:12: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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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후보가 차기 대표이사가 되면 우리 회사는 분명 젊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묻겠습니다. 과연 젊어진 회사에 여기 계신 분들의 자리가 있을까요"

 

수년 전 인기를 끌었던 한 드라마 대사의 일부다. 극중 상황은 새로 생기는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두고 창업주의 아들과 막내 손자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아들 측에 선 인물이 이사회에 참석한 회사 임원들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세대교체와 쇄신이라는 대의명분을 막을 도구로 개인의 욕망을 활용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대화가 벌어지는 장소가 바로 이사회장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이사회에 참석할 정도의 힘을 갖지 않은 인물이라 해도 과연 대의명분을 앞세운 결정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올해 연말 임원인사를 마친 몇몇 기업의 내부 분위기가 질문의 답을 말해주고 있다. 주요 기업 대부분이 쇄신·세대교체를 내걸고 젊은 임원을 대거 배출한 가운데 승진에서 밀린 관리자급 직원,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나이대의 직원들 사이에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후계자가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일부 기업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한 모습이다.

 

"젊어진 조직에 내 자리 있을까" 빨라진 경영승계 시계에 40·50 회사 성장 주역들 초긴장

 

▲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 (사진 왼쪽)과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올해 주요 기업들의 연말 임원인사에선 오너 일가 후계자들의 승진 사례가 유독 많았다. 그동안 경영수업을 받던 후계자들이 CEO 등 핵심 요직에 올랐다. 일례로 지난 17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대가 3세인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HD현대그룹 회장으로 승진했다. 26일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아들이자 오너가 3세인 신유열 부사장도 CEO 20명이 교체되는 칼바람 속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같은날 GS그룹 오너가 3·4세인 GS에너지 허용수 사장과 GS칼텍스 허세홍 사장도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LS그룹 오너가 3세인 구동휘 LS MnM 대표이사도 올해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외에도 △SPC그룹 오너가 3세 허진수(사장➞부회장)·허희수(부사장➞사장) △농심 오너가 3세 신상열(부사장➞사장) △삼양라운드스퀘어 오너가 3세 전병우(상무➞전무) 등이 경영 전면에 등판했다. 아직까지 정기 임원인사를 실시하지 않은 기업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후계 경영인들의 승진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각 기업들이 젊은 후계 경영인을 경영 전면에 내세우면서 내건 명분은 경영환경 변화와 위기 극복을 위한 조직 쇄신,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 강화 등이다. 책임을 부여 받은 후계 경영인을 주축으로 젊고 유능한 인재를 대거 발탁하는 세대교체를 단행하면 변화나 위기에 발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변화와 위기 대응은 기업의 존폐와 관련 깊고 그 부분에 있어선 젊은 세대가 나름의 장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선 당연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 서울시 한 구내식당 점심시간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르데스크

 

주목되는 점은 내부 직원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회사의 생존을 위한 젊은 후계 경영인의 등장을 개인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후계 경영인의 등장으로 조직 전체가 젊어지게 되면 퇴직 압박을 받는 시기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후계 경영인이 40세 이후에나 요직에 올랐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30대 초반에 요직을 차지하는 사례가 늘면서 위기를 느끼는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빠르면 40대 초·중반, 아무리 늦어도 50대 초반엔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부쩍 늘었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재직 중인 K씨(46세·남)는 "후계 수업을 받던 오너 3세·4세 임원이나 대표이사 승진 나이가 빨라진 것은 우리 같은 40대에겐 기회이자 위기다"며 "임원에 오를 기회가 빨리 오긴 하지만 만약 기회를 잡지 못하면 이른 나이에 퇴직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후계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임원들이 점차 늘면서 그들 보다 나이가 많으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니 일찌감치 퇴직을 염두하는 직원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고 덧붙였다.

 

한 식품 기업에 재직 중인 Y씨(33세·남)는 "우리 회사는 얼마 전 임원 인사에서 오너3세가 핵심 요직에 승진 배치됐다"며 "아직까지 30대 중반이고 대리 밖에 되지 않아 퇴직 압박은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주변에 차장·부장들을 보면 불안해하는 모습들이 종종 눈에 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젊은 오너 경영인이 오면 분명 그를 보필할 사람을 줄줄이 임원으로 발탁 할텐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을 고르겠나"라며 "나 같아도 선택받지 못하면 엄청난 퇴직 압박을 느낄 것 같다"고 설명했다.

 

▲ 2025 서울시 4050 중장년 취업박람회 현장. [사진=연합뉴스]

 

한 화학기업에 재직 중인 J씨(48·남)는 "요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드라마가 한창 인기라고 해서 보는데 내용이 정말 남에 일 같지가 않다"며 "우리 그룹도 다른 계열사에 오너 아들이 이미 임원을 맡고 있는데 그 계열사를 보면 임원 나이가 엄청 젊어진 게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어 "임원 나이가 젊어지면 아직까지 임원을 못단 나이 든 사원급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임원 승진 확률도 확 떨어져 일찌감치 퇴사 이후 먹고 살 고민을 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쇄신·책임경영 자체는 변화와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오너의 의무 스스로 짊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회사의 성장을 도모한 인재들이 퇴사 압박에 시달리는 것은 경계할 만한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칫 구성원 전체가 조직이나 일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성원들의 애사심 하락은 이직 리스크에 따른 시간·비용 부담, 기업 경쟁력 악화 등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하는 사안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후계 경영인의 등장과 세대교체는 기업 성장과 변화를 위한 중요한 조치이지만 과도한 경영 승계는 내부 직원들에게 퇴직 압박을 가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며 "특히 회장, CEO 등 핵심 직책을 맡은 오너일가의 나이대가  젊어지고 이에 맞춘 임원 승진이 진행되면 중장년층 직원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들이 불안감을 느끼면서 이직 및 퇴사가 늘어나면 기업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경영 혁신과 세대교체는 직원들의 안정감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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