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 = 박수연 기자] 한국과 미국이 핵추진잠수함(이하 핵잠)을 동시에 건조하는 이른바 '투트랙(Two-Track) 전략'이 한미 조선 협력의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부족한 건조 역량을 한국 기업이 인수한 미국 내 조선소로 보완하고, 한국은 이를 통해 핵잠 기술 자립과 조기 확보를 실현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한화 필리조선소'가 양국 협력의 핵심 고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일 방산·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성공적인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한미 조선협력 추진방안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병행 건조론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핵심은 한국형 핵잠은 국내 인프라로 건조하고, 미국이 필요한 핵잠은 미국 내 한국계 조선소(필리조선소 등)를 활용해 건조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는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와 맞물려 경제적·안보적 실익을 모두 챙길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 美 66척 건조 목표 '빨간불'… 필리조선소가 돌파구
발제자로 나선 최용선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전 국가안보실 방산담당관)은 현재 미국의 핵잠 건조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최 위원은 "미국은 2054년까지 다목적 공격용 핵잠(SSN) 66척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 건조 능력은 연간 1.2척 수준에 불과해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2023년 기준 미 핵잠의 33%(16척)가 정비 대기 중일 정도로 인력과 시설 부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마저도 중국의 엄청난 잠수함 전력 확보 속도를 최소한으로만 반영한 예측이다. 2023년 미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16척인 핵잠을 2040년까지 70척으로 늘릴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현재 미국의 자체 핵잠 건조 역량만으로는 최악의 경우 2054년 SSN이 38척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화그룹이 인수한 필리조선소가 유력한 대안으로 지목된다. 최 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 건조 승인과 함께 필리조선소를 거론한 것은 단순한 덕담이 아닌, 미국의 건조 역량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건조 기업으로 한화오션(042660)을 선택한 데는, 현지 건조를 우선시하는 미국에 유일하게 자체 조선소를 보유한 국내 업체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체적인 협력 모델도 제시됐다. 보안 등급이 높은 원자로 시스템과 전투체계는 기존 미국 조선소가 담당하되, 선체와 격실 블록 제작 및 조립 등 일반 공정은 필리조선소가 맡는 식이다. 이를 통해 미국 내 규제(존스법 등) 충돌을 피하면서 단기간에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 韓, 기술 축적·비용 절감 '두 마리 토끼'…1500억달러 '마스가' 예산 韓 조선업계로 흐르나
한국 입장에서도 필리조선소를 활용한 투트랙 전략은 '기회'다. 방사청 한국형잠수함사업단 출신인 류성곤 에스앤에스이앤지 상무는 "국내 업체가 보유한 미국 조선소를 마스가 프로젝트의 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 전문가들이 설계·생산·시험 등 전 단계에 참여해 핵심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형 핵잠의 독자 건조와 핵연료 자립화(저농축 우라늄 사용 등)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정일식 한국기계연구원 국방기술연구센터장은 "현재 한국의 잠수함 국산화율은 80%를 상회한다"며, "기존에 마련된 산업적 기반에 미국과의 협업 경험이 더해지면 '21세기 거북선'인 핵잠의 적기 확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계획 중인 1500억달러 규모의 마스가 투자금이 필리조선소 등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현지 인프라 확충에 쓰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용선 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승인하며 필리 조선소에서의 건조를 거론한 것은 한국 핵잠을 미국에서 건조하라는 뜻보다 한미 조선 협력을 토대로 미국의 핵잠 건조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며, "미국의 핵잠 건조 능력 복원은 자체 예산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동맹국의 외부 생산 능력이 결합돼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먼저 마스가의 새로운 방향으로 미군 핵잠 건조에 대한 양국 협력을 제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세미나를 주최한 부승찬 의원은 "핵잠 확보의 속도뿐만 아니라 조선산업과 지역경제 성장이라는 방향성도 중요하다"며, "국내 건조냐 해외 건조냐 하는 이분법적 논쟁에서 벗어나 한미가 윈윈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역시 "핵잠 건조는 원자력·소재 등 핵심 산업 발전을 견인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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