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논의를 하다 보면 늘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IPCC, UNFCCC, 파리협정… 그 중에서도 COP, 즉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는 매년 말 전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 회의입니다. COP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수많은 협약과 협상, 부대행사가 동시에 진행되며 주요 기후 이슈를 중심으로 다양한 액션이 이뤄집니다. 올해는 11월 10일부터 21일까지 제30차 COP가 브라질 벨렘(Belém)에서 개최됐습니다.
하지만, 국가 정상과 협상가들이 오가는 복잡한 논의 구조, 하루에도 수십 개씩 병렬로 진행되는 세션, 전문 용어로 가득한 회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COP을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게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COP에 모이는지,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GEYK의 COP30 탐방기 in 아마존] 시리즈에서는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이하 GEYK)가 COP30 현장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의 시각에서 현장의 분위기와 논의의 핵심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COP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인지 그리고 왜 이 공간이 기후문제 해결에서 중요한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기후정책의 국제적 논의는 오랫동안 ‘감축(mitigation)’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평균기온 상승이 1.5℃에 근접하며 기후위기가 이미 현실이 됐고 극한기상으로 인한 피해가 확대되면서 ‘피해를 줄이는 것’ 즉, 적응(adaptation)은 감축과 동등한 무게를 지닌 핵심 의제로 부상했습니다.
적응은 단순히 재난에 대비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생존, 경제 기반의 지속 가능성, 인권 보호, 기후 불평등 완화라는 광범위한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의 적응 수준은 매우 파편화돼 있고 진전 상황을 공통된 기준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해 왔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글로벌 적응 목표(Global Goal on Adaptation, 이하 GGA)’입니다.
GGA는 지난 2015년 파리협정 제7조에서 최초로 등장한 개념으로, 전 세계적 차원의 적응의 집단적 진전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준이 될 ‘적응 지표’입니다. 각 국가의 적응 목표가 모두 다른 상황에서 ‘적응의 진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국제적 시도입니다.
GGA가 중요한 이유는 국가별 상황이 다르더라도 ▲국제사회가 공통된 지향점을 가지게 되는 점 ▲적응 정책을 재정 및 기술 지원과 연결해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는 점 ▲적응 진전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 개발을 통해 향후 투자 우선순위 ▲재원 배분 기준 ▲불평등 해소 전략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적응에 있어 공통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기에 GGA는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난제이기도 합니다.
GGA 논의는 매우 오랜 기간 정체와 진전을 반복해 왔습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GGA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개념만 제시되고 구체적인 정의나 지표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2021년 COP26에서야 비로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2년 프로그램이 마련됐고 2022~2023년 동안 전문가 협의와 기술 워크숍 등이 이어졌습니다.
2022년 COP27에서는 워크프로그램의 공식 로드맵이 채택됐지만 지표 개발과 적응의 정량화, 재정·기술지원 등의 이행수단(Means of Implementation, 이하 MoI)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으로 진전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전환점은 2023년 COP28로 최초의 GGA 글로벌 프레임워크가 채택되면서 적응에 있어서 7개의 테마와 2030 공동목표가 설정됐습니다. 그러나 ‘측정 지표’는 여전히 미완성이었고 논의는 COP29와 COP30으로 넘겨졌습니다. 따라서 COP30은 GGA의 지표 확정 및 채택을 위한 결정적 회의였으며, 적응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행 가능한 체계로 만드는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COP30 첫 주차에 참여한 GEYK는 브라질 현지 시각 기준 지난달 11일부터 시작된 GGA 협상 현장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협상은 기술적 문구를 다루는 회의처럼 보였지만 실제 그 안에는 각 국가가 지키고 싶은 원칙,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기후위기 앞에서 국가별 현실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첫 협상에서 가장 먼저 발언을 시작한 국가는 G77+China 그룹(중국을 포함한 130개국 이상이 포함되는 개발도상국 그룹)의 스리랑카였습니다. 스리랑카는 지금까지 쌓아 온 적응 논의가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를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특히 “지표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지표를 통해 개도국이 실제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며 이행수단(MoI)의 실질적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중국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이며 국가들이 처한 맥락이 다른 만큼 이행수단(MoI)이 특정 분야에만 치중돼서는 안 되고 모든 분야를 포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발언한 아프리카 협상그룹(African Group of Negotiators, 이하 AGN)의 우루과이는 개도국 전체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이번 지표 논의가 “단순한 기술적 목록 작성이 아니라, 실제로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를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재원 조달 방식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지표를 확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며 지표가 각국의 정책과 주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됐습니다. “지표를 만드는 목적은 보고 자체가 아니라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집단적 진전이어야 한다”는 AGN의 발언이 인상 깊었습니다.
반면 EU(European Union, 유럽연합)는 COP30에서 GGA 지표를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지표를 확정해 각국의 적응 노력과 GST(Global Stocktake, 전 지구적 이행점검)를 정렬시키고 국제적 이행 체계를 더 촘촘하게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젠더·원주민·청년·취약계층 등 교차적 요소를 반영한 지표의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일본 역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기보다는 UAE 프로그램에서 이미 합의된 틀을 기반으로 신속히 지표를 채택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지표는 국가 간 비교나 평가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국가 재량을 존중하는 ‘가이드라인’ 수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양쪽의 분위기 사이에서 조정적 역할을 한 국가들도 있었습니다. 칠레는 지표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협상의 긴장을 완화하는 실용적 접근을 보였습니다. 군소도서개발국(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 SIDS)은 지표가 절대 재정 접근의 문턱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미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는 이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우려였습니다.
전체 발언을 종합해보면, 국가들의 입장은 대체로 두 흐름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U와 일본 등의 선진국들은 개선을 최소화한 채 COP30에서 지표를 채택하길 원하며 이행수단(MoI) 지표에 대해선 자발성을 인정했습니다.
반면 G77, AGN 등 개도국 그룹은 지표 채택으로 인해 국제적 평가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며, 무엇보다 실질적 이행수단인 MoI의 중요성을 강하게 강조했습니다. 또한 지표들이 재정 여부에 따라 흔들리는 ‘조건부’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협상은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를 두고 몇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으며, 협상이 너무 길어지면 비공식-비공식 협상(informal-informal consultations)으로 넘어가거나 시간대를 조정해 남은 논의는 몇 시간 또는 하루 후에 이어서 진행되곤 했습니다. 말이 곧 무기가 돼 자국의 입장을 분명히 그러나 완곡히 드러내는 국제사회의 협상장에 들어와있다는 것이 실감났던 순간이었습니다.
치열한 논쟁 끝에 COP30에선 GGA의 핵심 구성요소인 ‘적응 지표’가 공식 채택됐습니다. 그동안 2023년부터 전문가 그룹이 수집해 온 1만여 개의 잠재적 지표 후보군은 약 100여 개로 정제됐고, COP30 협상 과정에서 이를 최종적으로 59개의 벨렘 적응 지표로 확정하는 데 모든 당사국이 합의했습니다. 이는 GGA의 이행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첫 글로벌 지표 세트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진전입니다.
최종 합의문에선 합의된 GGA 지표는 개발도상국이 적응 재원에 접근하는 데에 있어 이행돼야 하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점이 명시됐으며 새로운 법적 의무나 국가의 이행 보고와 같은 부담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됐습니다. 이는 개발도상국이 우려해온 ‘지표가 또 다른 의무로 기능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 것입니다.
또한 GGA가 전적으로 자발적이며 비구속적이라는 점도 명확히 확인됐으며, GGA가 ‘국가 주도적’인 방식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됐습니다. 아프리카 그룹 의장인 Richard Muyungi는 “지표가 국가의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국가가 GGA 지표를 달성하고 싶다고 해서 법을 바꾸라고 요구할 수 없다”며 국가 이전에 지표 이행이 우선시돼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최종 합의된 바에 의하면, 당사국들의 재량에 따라 COP30에서 채택된 지표를 ‘시험 적용’해 볼 것을 권장합니다.
UAE–벨렘 실무 프로그램 종료가 선언된 한 편, 각 당사국들이 이 지표들을 국가적응계획(National Adaptation Plan, NAP),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ational Determined Contribution, NDC), 격년투명성보고서(Biennial Transparency Report, BTR) 등에 활용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이는 적응을 국가 정책의 표준체계 안에 정착시키며, 국제적 책임성과 비교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 다른 핵심 특징 중 하나는 ‘Cross-cutting considerations’의 도입입니다. 이는 적응의 기술적 성과뿐 아니라 과정의 포용성과 정의를 모든 적응 분야에서 동시에 평가하도록 하는 기준입니다. 젠더·원주민 지식·지역사회 참여·인권·생태계 건전성 등이 이에 포함되며 GGA는 단순한 적응정책이 아니라 정의롭고 참여적인 적응을 보장하는 글로벌 기준을 정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COP30 이후에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표는 채택됐지만 이를 실제로 활용할 운영 가이드라인, 국가별 데이터 기반 구축, 표준화된 산정 방법이 아직 불충분합니다. 이에 더해 실질적인 지표 운영과 데이터 축적을 위한 2026~2027년의 ‘벨렘–아디스 비전’ 2년 프로그램 출범이 합의돼 향후 추가 적응 지표 적용 실험과 방법론 개발이 이어지도록 설계됐습니다.
따라서 이번 COP30 이후 ▲2026년 COP31과 함께 개최될 CMA8(파리협정 이행을 담당하는 당사국회의) 이전까지 지표 운영에 관한 기술문서 작성 ▲2026~2028년 연 2회 적응 로드맵 워크숍 개최 등을 후속조치로 명시했습니다. 또한 지표의 최초 공식적 검토 시점을 2029년 GST-2 이후로 설정하고, 이 검토 절차를 2026~2027년 SB 회의(UN 기후협약 실무·보조기구 회의)에서 구체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COP30은 ‘지표 채택’이라는 형식적 진전을 이루며 GGA를 국제 기후체제 안에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나, 몇몇 국가들은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이번 결과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채택된 GGA 지표는 자발적이고 비구속적이며, 각국이 실제로 얼마나 활용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재정과 기술 지원이라는 실천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채 지표만으로는 개발도상국들과 취약 공동체가 직면한 현실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채택된 지표가 어떻게 통합되고 어떤 실효성 있는 이행수단이 확보될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입니다.
특히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서 극심한 폭우로 인해 발생한 홍수와 산사태 소식을 접한 후 개도국에 대한 실질적 적응 지원과 이행수단(MoI)을 강조하던 스리랑카 대표단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적응 지표는 그 무엇보다 객관적이며 국가의 적응 수준을 정량화할 수 있는 국제적 표준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적응’ 지표라는 성격만큼 그 목표는 궁극적으로 사람과 공동체의 회복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이 지표가 실제 현장에서 살아 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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