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 당시, 여성들이 입술에 바른 붉은 립스틱이 사회적 억압에 맞선 여성들의 저항 의지를 상징했던 것처럼, 향수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모든 향수는 빈 페이지와 같고, 그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겔랑의 '샬리마(Shalimar)' 향수가 1925년 출시 당시에는 열광적으로 피어난 오리엔탈리즘을 향으로 구현했다고 평가 받았으나 1980년대에는 커리어 우먼의 파워를 드러내는 향으로 인식되었고, 이후 세대간 전해지는 유산과도 같은 향수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말이죠.
조향사는 비전을 갖고 혁신을 추구하는 이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디올 뷰티의 ‘미스 디올(Miss Dior)’은 다시 찾아온 사랑의 황홀함을, 니나 리치 ‘레흐 뒤 땅(L’air du Temps)’은 혁신적인 가벼움을 보여주며 향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죠. by 사회학자 로낭 샤스텔리에르(Ronan Chasìellìer)
입생로랑 뷰티의 '오피움(Opium)'은 도취된 모습의 여성을 광고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과 동시에 충격을 안겼고, 2000년대 톰 포드와 함께 ‘포르노-시크’의 시대를 열며 대담한 관능을 상징했어요. 전설로 추앙 받는 향수도 시간에 따라 의미가 변화하고, 실제 포뮬러도 진화하고 있답니다. 새로운 규제와 지속 가능한 원료, 알레르기 기준 등 시대에 따른 변화 속에서 조향사들은 오리지널의 ‘영혼’을 지키면서 대체 원료를 찾는 정교한 작업을 하고 있죠. 오리지널의 깊이를 유지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성과 같은 현대적인 요구를 반영하는 작업은 클래식 향수를 다시 숨 쉬게 합니다. 그렇다면 '컬트' 향수라 말할 수 있는 아이코닉한 제품들 중 '다시 숨 쉬고 있는' 향수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미스 디올 에쌍스 드 퍼퓸, 50ml 23만1천원, Dior Beauty.
MISS DIOR ORIGINAL, DIOR BEAUTY – 1947
」폴 바셰(Paul Vacher)가 조향한 디올의 첫 향수 ‘미스 디올’은 시프레-앰버 베이스 위에 생생한 그린 넥타 향기가 피어나는 구성으로, 1947년 디올 뉴 룩(New Look)의 전율을 향으로 담아내며 그 당시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어요. 2017년, 프랑수아 드 마쉬(François Demachy)가 리포뮬레이션한 향기는 파출리를 살짝 덜어내며 더욱 실키하고 현대적으로 재탄생했죠. 초기 암포라 형태의 보틀도 아름다웠지만, 현재 프로스티드 하운즈투스 모티프와 리본 형태의 ‘뽀야나르’ 보우로 장식된 꾸뛰르 감성의 보틀도 사랑스럽죠?
깔레쉬 오 드 뚜왈렛, 100ml 26만2천원, Hermès.
CALÈCHE, HERMÈS – 1961
」에르메스의 절제된 우아함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깔레쉬(Calèche)'가 아닐까 싶어요. 조향사 기 로베르(Guy Robert)는 시트러스와 플로럴, 시프레 노트를 조화롭게 만들어 단 하나의 노트가 지배하지 않는 현대적인 향기를 창조했죠. '깔레쉬'라는 이름은 에르메스의 상징인 사륜 마차를 나타내고, 보틀 디자인은 마차의 랜턴을 모티프로 디자인 되었답니다.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을 완벽하게 구현한 향수예요.
트레조 오 드 퍼퓸, 50ml 105유로, Lancôme.
TRÉSOR, LANCÔME - 1990
」'장미의 여왕'이라 불린 조향사 소피아 그로스만(Sophia Grojsman)이 만든 향수로 부드럽고 벨벳같은 잔향이 사랑의 초상을 떠올리게 해요. 살구꽃과 복숭아, 샌들우드가 피부 위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이 로맨틱한 향은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부터 이네스 사스트레(Inés Sastre),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 페넬로페 크루즈(Penélope Cruz)까지 수많은 뮤즈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죠. 오리지널 제품과 비교했을 때 잔향이 조금 더 달콤해졌지만, 향의 본질은 여전해요. 파리 루브르의 역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보틀 디자인은 초창기 디자인 그대로고 무게만 약간 더 가벼워졌어요.
샬리마 레쌍스 오 드 퍼퓸 인텐스, 90ml 27만5천원, Guerlain.
CHALIMAR, GUERLAIN - 1925
」조향사 자크 겔랑(Jacques Guerlain)은 샤 자한(Chah Djahan)의 아내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상징하는 타지마할에서 영감을 받아 톡 쏘는 베르가모트와 에틸바닐린의 관능적 깊이를 대담하게 결합한 향수 '샬리마(Chalimar)'를 창조했어요. 리포뮬레이션을 거치며 기존의 가죽 향은 부드러워졌지만 공작깃 모양의 캡을 얹은 바스크 실루엣의 보틀 디자인은 여전히 절대적인 상징성을 지녀요.
오피움 오 드 퍼퓸, 50ml 115유로, YSL Beauty.
OPIUM, YSL BEAUTY - 1977
」무슈 생 로랑이 파리의 기메 박물관(Guimet Museum)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오피움(Opium)'은 조향사 장-루이 시우작(Jean-Louis Sieuzac)의 터치를 통해 금기와 도발의 절정을 보여주는 향으로 완성됐어요. 피에르 디낭(Pierre Dinand)이 디자인한 몰약병 형태의 보틀은 오늘날 많이 심플해졌지만 오리지널의 무드는 여전하답니다.
Nº5 오 드 빠르펭, 100ml 28만4천원, Chanel.
Nº5, CHANEL - 1921
」어니스트 보(Ernest Beaux)가 그 당시로써는 굉장히 대담한 알데하이드라는 합성 원료를 사용해 만든 샤넬의 전설적인 향수. "원료 수확부터 추출 방식까지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 덕분에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모든 샤넬 Nº5 향수는 동일한 품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라스산 쟈스민과 일랑일랑, 메이 로즈 등 원료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향기죠." 샤넬 하우스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Olivier Polge)는 말합니다. 오늘날의 포뮬러는 일부 알데하이드만 교체되었을 뿐 오리지널 향 대비 큰 변화는 없어요.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부터 마고 로비(Margot Robbie), 캐롤 부케(Carole Bouquet)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이미지의 인물들이 Nº5 향수의 모델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향수의 이미지가 시대와 함께 유연하게 흐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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