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신문 신디케이트는 11월 20일 “인공지능이 아시아의 다음 성장 엔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글을 쓴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이종화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가 맞이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아시아의 향후 성장 가능성과 과제를 집중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화가 글로벌 번영을 이끌었으나, 현재 경제성장은 완만한 국면으로 전환되었고 이 흐름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중 갈등을 포함한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무역·투자 단절, 인구 고령화, 생산성 정체, 불평등 심화, 자연재해 등 복합적인 구조적 역풍이 세계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수출 중심 모델에 의존해온 아시아 성장 구조의 핵심을 흔들고 있다.
아시아는 경제 파편화로 기존의 수출 엔진이 약화된 데다 급속한 고령화가 노동력 공급을 제약하면서 재정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다. 아시아 전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3년 9.8%에서 2050년 18.6%로 거의 두 배에 이를 전망이다. 일본과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중국 역시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인도와 일부 동남아 국가가 인구 보너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창구 역시 빠르게 닫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인구 구조가 경제 운명을 결정짓는 절대적 요소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며 개인 근로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전기나 인터넷처럼 산업 전반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닌 범용 기술로 평가된다.
다만 인공지능이 가져올 거시경제적 효과는 아직 불확실하다. 일부 분석은 향후 10년간 AI가 글로벌 생산성을 매년 0.8~1.3%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하지만, 실제 성과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도입·적응·통합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단기적으로 생산성이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또한 AI의 초기 수익이 소수의 선도 기업과 국가에 집중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AI 흡수 능력은 아시아 각국 간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IMF의 AI 준비 지수에 따르면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 선진국은 디지털 인프라, 규제 체계, 노동시장 환경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의 대형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평가를 받고 있으나,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같은 저소득 국가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
이 교수는 아시아 전체가 미래의 기술 전환 속도를 따라잡고 심화되는 성장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AI 활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디지털 소양과 STEM 교육에 대한 투자, 평생학습 및 재교육 체계 강화, 직업 전환 촉진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AI가 단순 업무뿐 아니라 복잡한 작업까지 자동화할수록 인간의 보완 기술인 디지털 역량·사회적 기술·문제 해결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각국 정부는 AI가 창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연구개발 투자, 견고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 신뢰 가능한 데이터 시스템과 AI 윤리 규범 마련은 필수적 요소로 꼽힌다. 개방적 경쟁 환경과 국경 간 연구 협력, 스타트업 자금 조달 확대는 기술 독점을 방지하고 혁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핵심 전략이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의 혜택이 소수 선진국과 첨단 산업에만 집중될 경우 기술 격차가 심화되어 경제·사회·정치적으로 장기적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아시아가 협력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인공지능과 인간 창의력을 결합한다면 지속적 성장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탄력적 경제 구조를 갖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시아가 디지털 전환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현재의 구조적 도전을 넘어 미래 성장의 새로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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