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더봄] 난장판 손주와 정리 강박 할머니의 숨바꼭질,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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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더봄] 난장판 손주와 정리 강박 할머니의 숨바꼭질, 승자는?

여성경제신문 2025-12-01 13:00:00 신고

사람마다 한두 가지 강박은 갖고 있지 싶다. 살면서 없던 강박이 생기기도 하고, 있던 것이 어느새 스르르 사라진 걸 느낄 때도 있다. 강박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고 일의 성취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강한 압박’이다 보니 본인은 조금 괴롭다.

강박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차 번호판 숫자를 더하며 걷는 사람이 나왔다. ‘수학 천재’가 틀림없다. 덧셈 결과가 나와야 다음 걸음을 옮기니, 밖에 나와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나. 손주의 두 자릿수 더하기 두 자릿수 덧셈도 꾸물꾸물 채점하는 나 같은 할머니에겐 애초에 생길 수도 없는 강박이다.

청결 강박도 옆에서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손을 씻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고, 외식은커녕 종일 세탁기를 돌린다. 그 행동의 근원까지야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두루뭉술 사는 성격이 편하기는 하다.

나에게는 정리 강박이 살짝 있다. 진실로 살짝이다. 냉장고 물건을 오와 열을 맞춰 세워 놓는 사람을 보고 내가 ‘살짝’임을 확신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너저분한 상태를 조금 못 견딘다. 안 보이는 공간이면 상관없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었으면 좋겠고, 편하다고 이것저것 꺼내 놓고 쓰지 않는 편이다.

밥 먹고 청소하기보다는 청소하고 밥 먹는 것이 좋고, 대청소를 마친 후 고요한 집 안의 정적을 사랑한다.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청소된 방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조리원을 나온 손주가 들이닥쳤다. 아이만 온 것이 아니라 거의 이삿짐 수준의 아이 용품과 함께였다. 미니멀리즘은 아니어도 ‘텅 빈 집’처럼 살던 거실에는 아기 이불, 욕실에는 아기 욕조, 부엌에는 젖병과 소독기···. 그 이후 몇 년간, 처음 짐의 다섯 배는 족히 더 늘어난 것 같다.

처음 몇 달은 변화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밥상 놓을 자리만 있으면 밥을 먹고, 아침이면 저녁을, 저녁이면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는 나날에 집 같은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손주가 어린이집에 가고 낮에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씩 생기자,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놀라지는 마시길··· /이수미
너무 놀라지는 마시길··· /이수미

한마디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집'이 되어 버렸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몇 달 간격으로 그 물건들이 싹 나가고 새로운 물품이 들어오는 놀라운 상황.

엄마끼리 물건을 교환하며 주거니 받거니, 무엇이 좋다 하면 쇼핑 싫어하는 딸도 엄마를 위해 사주기도 했는데, 손주가 무언가를 만들 줄 알게 되자 장난감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블록에, 레고에, 책과 교구, 미술용품, 찰흙, 각양각색 물놀이용품과 비눗방울 도구, 또 그것들을 놓을 책상과 선반과 서랍장···.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아이의 눈빛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럽지만, 그 뒤치다꺼리는 모두 살짝 강박을 숨긴 할머니의 몫이었다. 난장판이든 쓰레기 집이든 에라~ 모르겠다 했으면 편했을 텐데··· 쫓아다니며 치우느라 밤이면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수십 가지 작품을 만들어 놓고도 몇 주 전 만든 것이 안 보이면 귀신같이

“할머니, 노란색 색종이로 만든 비행기 어디 갔어?”

“할머니가 또 버렸구나? 어이구···.”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딸네가 이사를 하고, 그 많던 짐과 교구가 거의 옮겨 갔다. 할머니 집은 예전의 '텅 빈 집' 대신, 보고 또 보아도 다시 보고 싶은 손주의 그림과 만들기 작품이 '꽉 찬 집'이 되었지만, 대신 현재 진행 중인 책과 장난감과 블록과 미술용품은 어찌 되었을까?

딸네 집 거실의 8인용 책상을 꽉 채우고 있다. (→ 사진 참조)

8인용 책상이랍니다! /이수미
8인용 책상이랍니다! /이수미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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