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해군 소위 임관, 병역 회피의 역사적 고리를 끊다
삼성 창업 3대 '합법적 회피'에서 4대 '자발적 희생'으로
2025년 11월 28일, 이재용(57)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인 이지호(24) 씨가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임관식'을 통해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지호 소위는 11주간의 고된 교육·훈련 과정을 마쳤으며, 특히 후보생 89명을 대표하는 대대장 후보생으로서 임관식에서 제대 지휘를 맡아 재계와 국민적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날 임관식에는 이재용 회장이 직접 아들의 어깨에 계급장을 수여하며 “수고했어”라고 격려했고, 이 소위는 “필승. 신고합니다. 사관후보생 이지호는 2025년 11월 28일부로 해군 소위로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이라고 답했다. 이재용 회장의 전 배우자인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친가와 외가 가족들이 총출동했다는 점 또한 이 사건이 갖는 상징성을 방증했다.
이지호 소위의 병역 이행은 삼성가 역사상 최초로 장교 복무를 이행한 사례이자, 과거 삼성을 둘러쌌던 '병역 특혜 및 회피' 논란을 창업 4세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청산하려는 단호한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2000년 미국에서 태어난 선천적 복수 국적자였던 이지호 소위는 장교 복무를 위해 현행법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결정까지 했다. 일반 사병으로 입대할 경우 복수 국적 유지가 가능했지만, 이 소위는 복무 기간이 총 39개월로 상대적으로 긴 해군 학사장교를 선택했다. 재계 관계자는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복무 기간이 긴 장교보다 병사 복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지호 소위의 선택을 공동체를 위한 모범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지호 소위는 훈련 소회를 통해 “함께한 동기들이 있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었다”며 동기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삼성가, 재벌 평균의 2배가 넘는 '면제율 73%'의 불명예
이지호 소위의 모범적인 선택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속한 삼성 일가가 한국 재벌 그룹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병역 면제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006년 KBS '시사기획 쌈'의 조사 결과(아래 표)에 따르면, 국내 7대 재벌그룹 총수 일가의 병역 의무 대상자 중 면제율은 33%에 달했다. 이는 생계 곤란이나 학력 미달 등 재벌가와 무관한 사유를 제외한 일반인의 평균 면제율 6.4%보다 5배나 높은 수치였다.
<주요 엘리트 집단 및 삼성가 병역 면제율 비교 (2006년 기준)>주요>
특히 재벌가 평균 중에서도 범 삼성계열은 조사 대상자 11명 가운데 8명이 면제를 받아 면제율 73%를 기록, 7대 재벌 그룹 중 가장 높은 불명예를 안았다. 이는 SK그룹(57%), 한진(50%) 등의 면제율을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질병 면제자 14명 중 13명이 사실상 재벌 후계자인 외아들이거나 장남이었다는 사실은 병역 면제가 우연이 아닌 후계자를 위한 구조적 노력의 결과였음을 시사했다. 재벌 일가의 병역 회피는 과거부터 군 복무를 중시하는 국민 정서상 큰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일반 청년들에게 분노와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며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창업 2세대: '밀항'과 '40일 훈련'
삼성가 병역 논란의 역사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아들들인 2세대에서 시작된다. 이 시기 병역 의무 이행은 주로 정치적 개입이나 국외 체류를 통해 처리됐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남이자 CJ그룹 명예회장이었던 고 이맹희 전 회장은 공식적으로 국외 장기 체류를 이유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 에서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군 입대 시기가 되자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다고 직접 고백했다. 둘째 아들인 고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 역시 오랜 일본 유학 생활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추론됐다. 묻어둔>
삼성 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고 이건희 회장의 병역 이행 과정은 정치권력의 특혜가 얽힌 가장 복잡한 사례였다. 이건희 회장의 병역 문제는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발각된 것이 조사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교련 전 동아콘크리트 사장의 증언이 담긴 책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군대 갈 나이로 보이는데도 낮에 골프를 치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띄었고, 이에 청와대 특명으로 고위층 자제들의 병무 부정 사건 조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조사 결과 이건희 회장은 40일간 30사단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것으로 병역을 마쳤다. 이는 일반적인 병역 이행과는 거리가 먼 특혜성 조치로 해석됐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2012년 맏형과의 유산 소송 중 기자들에게 "그 양반(이맹희 전 회장)은 30년 전에 나를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던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병역 문제가 가족 간 권력 다툼의 도구로 활용됐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창업 3세대: '합법적 우회'의 절정
이재용 회장의 허리 디스크 논란
삼성가 3세대 남성 후계자들 대다수에게 병역 면제는 사실상 '필수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3세대는 2세대처럼 최고 권력의 직접 개입보다는, 법적 기준과 의학적 판정 기준의 허점을 정교하게 파고들어 면제를 획득하는 '합법적 기준 우회' 방식을 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병역 면제는 가장 큰 의혹을 낳은 사례였다. 이 회장은 1990년 6월 징병검사 당시 최고 등급인 1급(현역 입영) 판정을 받았으나 , 불과 17개월 뒤인 1991년 11월 재검사를 요청하여 5급(입영 면제) 판정을 받았다. 급격한 등급 변화의 사유는 수핵탈출증, 즉 허리 디스크였다.
이런 면제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는데, 이재용 회장의 진단서를 발급한 안세병원이 1991년 당시 척추 디스크 전문 병원이 아닌 산부인과 전문병원이었다는 사실이 2006년 KBS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당시 안세병원 관계자는 1991년에는 척추디스크 환자가 오면 대학병원으로 보냈고, 척추디스크 질환을 전문으로 다룬 것은 1999년부터라고 증언했다.
삼성그룹 측은 당시 "국가대표 승마 선수로 활동하다 여러 차례 낙마 사고로 허리를 다쳤다"며 "보다 정밀한 진단을 받기 위해 척추디스크 전문병원인 안세병원을 찾아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은 이후 장애물 승마 국가대표를 지냈으며, 허리를 많이 쓰는 골프에서도 뛰어난 실력(핸디캡 6, 드라이버샷 평균 250야드)을 보였다는 점은 대중의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됐다.
범삼성가 3세대에서도 다양한 면제 사유가 '종합선물세트'처럼 나타났다. 이재현(65) CJ그룹 회장은 유전병을 사유로 군 면제를 받았고 , 그의 외아들 이선호(36) 씨 역시 동일한 유전병으로 면제 처분을 받아 병역 면제가 대물림되는 이례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정용진(57) 신세계그룹 부회장(범삼성가)의 군 면제 사유는 과체중이었다. 대학 입학 당시 79kg이었던 정용진 부회장의 신체검사 당시 체중은 104kg으로, 당시 면제 기준 103kg을 불과 1kg 초과하여 면제 판정을 받아 의도적인 체중 증량 의혹을 낳았다.
<삼성가 주요 남성 구성원 병역 이행 현황 및 특징 (세대별 비교)>삼성가>
창업 4세대 '희생적 선택'
이지호 소위가 미국 시민권까지 포기하고 39개월의 해군 장교 복무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개인적 의무 이행을 넘어, 이재용 회장 시대의 삼성 그룹이 지향하는 사회적 책임(CSR) 전략의 결정판으로 해석된다.
이재용 회장은 2020년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 당시 “모든 문제는 경영권 승계로 인해 발생했고 승계 문제가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도록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4세 경영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었다. 또 이재용 회장은 아들에 대해 “본인이 (군대에) 간다고 했고 그가 스스로 선택해 입대한 것”이라고 밝히며 아들의 자발적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가 창업 3세대 이재용 회장이 병역 문제로 사회적 의혹의 정점에 섰다는 점을 고려할 때 , 4세대가 가장 긴 복무 기간과 가장 큰 희생(국적 포기)을 감수한 것은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려는 '체면 만회 전략'이자 필수적인 공정성 확보 작업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는 이재용 일가가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존중을 유지하고, 삼성 그룹이 전통적인 소유 경영 모델에서 벗어나 사회적 신뢰 기반의 전문 경영 모델로 순조롭게 전환하고 있음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강력한 도덕적 증거로 작용한다.
이지호 소위의 모범적인 행보는 과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가 병역 의무가 없음에도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자원입대한 사례와 함께, 재벌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새로운 시대적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재벌 총수 일가의 병역 이행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리스크 관리이자 핵심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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