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에너지 안보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AFP는 11월 25일 보도에서 세르비아의 유일한 정유 공장이 운영을 중단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세르비아 연료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핵심 기반 시설이지만, 러시아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세르비아 석유 산업 회사(NIS)는 지난달부터 워싱턴의 제재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이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러시아 에너지 부문 단속의 일환으로, 올해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기 당시 제안돼 10월 9일부터 공식 시행되었다. 갑작스러운 제재 집행은 베오그라드 정부에 긴급한 대응책 마련을 요구했고, 세르비아 정부는 연료 비축과 함께 12월부터 사용할 신규 수입 계약 체결 등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유 공장의 운영 중단이 가져올 충격을 완전히 상쇄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세르비아 경제학자 고란 라도사블레비치는 “일시적으로 수입으로 버틸 수 있지만, NIS가 운영을 멈춘다면 결국 파산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유 공장이 존속하려면 러시아가 보유한 지분 처리 문제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러시아 국영 기업 가스프롬은 NIS의 45%를 직접 보유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자회사 명의로 11.3%를 추가 보유하고 있다. 세르비아 정부는 약 30%의 지분을 가진 주요 주주지만, 경영 지배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세르비아 관리들은 러시아가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으며 양측 간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세르비아 알렉산다르 부치치 대통령은 NIS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세 가지 잠재 구매자’가 있다고 언급했으나, 구체적인 신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NIS는 미국의 제재 유예를 새로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워싱턴의 반응은 없는 상태다.
정유 산업 민영화의 뿌리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르비아는 4억 유로에 해당 기업 지분 51%를 러시아 측에 매각했고, 이는 에너지 인프라 투자 등 광범위한 협정의 일부였다. 하지만 협정 내용은 부분적으로만 이행되며 장기적 부담으로 남았다.
정치적으로도 난제가 적지 않다. 세르비아는 여전히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유럽 국가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자산을 사실상 몰수해 국유화하는 방안을 택하는 것은 부치치 대통령에게 정치적 리스크가 큰 선택이다. 그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시장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강압적 국유화 시나리오는 부정했다.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현재 천연가스 공급 계약 문제도 동시에 협상 중이다. 러시아는 최근 단기 계약만을 제시하고 있으며, 부치치 대통령은 이를 “세르비아가 NIS 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막기 위한 러시아의 압박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정유 공장 운영 중단 여부는 세르비아 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는 사안으로, 향후 협상 결과가 세르비아의 에너지 안보와 러시아와의 관계 재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Copyright ⓒ 뉴스비전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