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의 성지'로 국내 3대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성수동 상권이 상권 소멸 단계로 접어들지 않도록 상권 정체성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022년 성수동에 본격 진출한 무신사는 성수동 상권을 젠트리파이어한다는 시각이 있지만, 실상은 핵심 점포로서 상권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여러 기업들의 지역상권과의 상생 협력은 최근 일방적인 퍼주기식에서 브랜드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석 동국대 교수는 28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2025년 한국유통학회 11월 유통 포럼'에서 "현재 성수동 상권은 강남, 홍대에 이어 서울의 '3대 핵심 상권'으로 자리잡았다"며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 관점에서 볼 때 성수동 상권은 젠트리피케이션 3단계에 접어들어 '상권 소멸'을 의미하는 4단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유통 포럼은 'K-패션과 로컬 상권의 동행: 글로벌 시대의 지속 가능한 상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의 낙후되거나 지가가 싼 지역에 중산층이 유입되면서 주거지·상업지로서 물리적 재개발이 일어나 부동산 가치 상승이 일어나고, 그 결과 지역의 원주민과 영세 상인이 축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은 4단계의 과정을 거치는데 △1단계는 임대료 싼 지역에 예술가와 학생, 소규모 창작자들이 입주해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지역문화를 형성 △2단계는 감도높은 소비층의 유입으로 카페나 갤러리, 빈티지숍 등이 등장 △3단계는 부동산 개발업체와 프랜차이즈 등 본격적인 자본이 유입 △4단계는 고급화와 상업화로 지역 정체성이 사라지고 '상업적 균질화'가 진행 등이다.
이 교수는 "4단계는 지역 상권의 독특한 정체성이 사라지고 여느 번화가와 동일한 상업적 균질화가 진행돼 어디에서나 갈 수 있는 스타벅스나 프랜차이즈 식당가 들어서는 단계"라며 "성수동은 현재 3단계"라고 지적했다.
이를 주도한 것은 2022년 성수동의 무신사 진출이다.
무신사는 2019년 성수동 사옥 건립 계획을 밝힌 후 2022년 5월 무신사 스튜디오와 무신사 테라스를 오픈하고 같은해 9월 무신사 본사를 이전했다. 2023년 10월에는 무신사 스탠다드와 무신사 E1 오피스를 오픈했고 지난해 9월에는 무신사 스토어 성수@대림창고를 열고 무신사 뷰티 페스타 in 성수를 개최했다. 올해 6월에는 소담상회 with 무신사를 개점했고 9월에는 성수역 역명에 '무신사역'을 병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무신사가 당시 소멸해가던 성수동에 'K-패션의 성지'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부여했다는 게 이 교수의 시각이다.
이 교수는 "무신사 진출로 성수동이 패션 팝업의 성지라는 아이덴티티가 더해졌다"며 "일반 상설매장이 아닌 경험 중심의 팝업매장과 단독매장이 아닌 편집매장이라는 독특한 상권을 형성하는 데 무신사가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무신사가 대기업 제품뿐만 아니라 신진브랜드와 로컬샵, 뷰티 페스타 등 지역 전체 상권을 도모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무신사는 성수동을 젠트리피케이션하는 존재라기보다, 핵심 점포로서 유동인구를 끌어들여 지역 소상공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앵커 태넌트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상공인의 기업가 정신도 필요하다"며 "임대료 상승을 웃도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을 배양할 수 있도록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정책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권의 수명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며 "성수동 상권의 수명주기를 늘리기 위해 성수동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상권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장명균 호서대 교수는 국내 상생협력 사례로 노브랜드·현대백화점·시몬스·코오롱FnC 등의 상생 사례를 소개했다.
노브랜드는 전통 시장과의 공존 협력을 통해 전통 시장에 젊은 고객과 소비층이 다시 유입될 수 있도록 활력을 부여한다.
현대백화점은 개별 장인의 제품을 국가대표급 전통 브랜드로 승격시키면서 '전통식품=올드'라는 이미지를 바꿔 MZ세대의 입맞에 맞춘 현대적·대중적 상품으로 개발한다.
시몬스는 본사와 팩토리움이 있는 제조 도시를 브랜드 탄생의 상생 무대로 설정하고 4700m 규모 복합문화공간인 '시몬테라스'를 조성해 지역 랜드마크로 성장시켰다. '파머스 마켓'을 열어 농가나 로컬브랜드와 함께하는 페스티벌도 개최한다.
코오롱FnC는 로컬 프로젝트를 통해 관광지는 아니지만 소멸위기를 겪는 소도시에 대해 팝업과 한옥스테이, 로컬마켓 등으로 상생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가령 강진의 '청자색'처럼 지역을 상징하는 로컬 컬러를 정해 의류·굿즈 디자인에 반영하고 지역 스토리북·지도·매장 포스터 등을 소개, 지역의 관광코스를 브랜딩하는 시도를 한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한국의 궁궐과 전통공예와 연결해 문화 후원자의 국가적 헤리티지를 정립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포지셔닝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문화가 글로벌 시장에 노출되면서 기업이 브랜드의 공동 기획자로 참여하는 메세나형 상생모델이다.
장 교수는 "이같은 시도들은 일반적인 퍼주기식 상생이 아니라 브랜드 전략 및 비즈니스 모델로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라며 "상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카테고리와 고객층을 여는 성장 전략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인 박경도 서강대 교수는 "단순히 현상 진단을 넘어 도시상권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로컬 상권과 지역공동체가 상생 균형점을 찾는 실질적 방안 모색의 장이 되길 바란다"며 "K-패션이 글로벌 무대에서 빛나면서 지역공동체와 함께 걸어가는 지혜가 싹트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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