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인천시립박물관이 기획특별전 ‘바다의 꽃, 게 섰거라’를 내년 2월 2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인천 시민의 식재료이자 민속 신앙의 대상, 그리고 한국 문학과 미술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게’라는 존재를 음식·생활·예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시선에서 조명하는 이색 전시다. 특히 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일부가 인천에서 처음 공개되며 전시의 깊이를 더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관련 작품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게’라는 한 소재가 조선 회화에서 근대·현대 미술까지 어떻게 해석되어왔는지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게는 ‘밥도둑’으로 불릴 만큼 일상 식탁에서 사랑받은 재료일 뿐 아니라, 조선 시대 문학·회화의 단골 주제였고 민간에서는 액운을 막는 부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꽃게 어획량 감소와 생활 환경 변화로 게와 관련된 문화가 급속히 사라지는 가운데, 인천시립박물관은 “잊혀져 가는 게 문화를 더 늦기 전에 기록하고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한 전시”라고 취지를 밝혔다.
첫 번째 공간에서는 게가 한국인의 식탁에서 어떤 역사적 여정을 걸어왔는지를 다룬다. 고려 시대에도 게를 젓갈로 담가 먹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마도 1호선’ 출수 목간, 조선 시대 문헌에 기록된 각종 게 음식 조리법, 게젓과 전통 음식 등이 소개되며, 게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식재료임을 보여준다. 또한 현대에는 김밥과 햄버거 속 맛살, 과자와 조미료 등으로 게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는 모습을 시각 자료와 함께 제시, 세대를 넘나드는 한국인의 ‘게 선호 문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인천만의 고유한 게 문화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연평도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연평꽃게’는 어획 과정과 그에 얽힌 섬 주민들의 민속을 영상과 사진, 유물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 인천 송도와 영흥도에서는 과거부터 대문에 ‘범게’를 걸어 집안의 부정을 막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실제 범게 실물과 당시 사진을 함께 선보이며 잊혀져 가는 민속 신앙의 흔적을 복원한다. 이 공간은 게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인천 지역의 신앙·생활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세 번째 공간은 ‘게’를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시의 핵심 섹션이다. 조선 시대 작가들은 게를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혹은 강직한 선비를 뜻하는 은유로 자주 그려왔다. 게가 옆으로 걷는 모습에서 ‘임금 앞에서도 뒷걸음치지 않는 정직함’을 읽어 ‘횡행개사(橫行介士)’라 불렀으며, 창자가 없다는 특성은 세속적 욕망을 초월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무장공자(無腸公子)’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이 같은 상징성을 바탕으로 한 조선 회화의 대표작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 ‘해도(蟹圖)’가 전시 초입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김홍도의 ‘해도’ 속 게는 소과·대과 합격, 장원급제를 의미하며 그림 곳곳에 상징적 장치가 배치돼 있어 해석하는 재미를 더한다.
근대 미술에서는 이중섭이 게를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애들과 물고기와 게’는 물론, 이건희 컬렉션으로 잘 알려진 ‘꽃과 어린이와 게’도 전시되며, 제주 서귀포 시절 가족과 보낸 시간을 상징하는 ‘게’를 통해 그의 감정과 그리움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느낄 수 있다.
이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자청화게무늬접시’, 국립현대미술관의 김기창·안동오 ‘백자청화물고기팔각연적’ 등이 함께 전시되며, 조선 이후 게가 생활미술의 주요 소재로 자리 잡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김태익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어획량 감소로 게가 식탁에서 사라지고, 게에 관한 문화적 담론도 빠르게 잊혀지는 시점에서, 게를 우리의 문화적 기억 속에 남기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꽃게의 고장 인천에서 ‘게’를 종합적으로 다룬 첫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바다의 꽃, 게 섰거라’는 음식–민속–문학–미술–지역정체성을 잇는 입체적 전시로, 하나의 생물이 한국인의 삶과 문화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성한 문화사적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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