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마음만으론 부족해"… 50분 '광클' 부른 비영리의 '탁월함'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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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만으론 부족해"… 50분 '광클' 부른 비영리의 '탁월함' 논쟁

스타트업엔 2025-11-28 11:12: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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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뜻으로 시작했으니 결과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비영리도 이제는 '탁월함'을 무기로 경쟁력을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27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 이른 오전부터 40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스타트업 데모데이나 테크 컨퍼런스 못지않은 열기였다. 다음세대재단과 카카오임팩트가 주최한 '2025 비영리 컨퍼런스 체인지온(ChangeON)' 현장이다.

올해로 18년째를 맞은 이 행사는 국내 비영리 섹터에서 가장 유서 깊은 컨퍼런스 중 하나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유독 달랐다. 주최 측에 따르면 참가자 모집 시작 50분 만에 티켓이 매진됐다. 비영리 행사가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방불케 한 것은 이례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올해의 주제인 '탁월(卓越)'에서 찾는다. 그동안 비영리 분야가 '희생', '봉사', '선한 의도'를 강조해왔다면, 이제는 복잡해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페셔널한 실력, 즉 '탁월함'을 갈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행사의 포문은 방법론에 대한 고찰로 열렸다. 당장 현장의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인문학과 과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영리가 추구해야 할 본질을 비췄다.

김헌 서울대 교수가 서양 신화 속 영웅 서사를 통해 탁월함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김헌 서울대 교수가 서양 신화 속 영웅 서사를 통해 탁월함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세션 연사로 나선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서양 신화 속 영웅 서사를 빌려왔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탁월함이 압도적인 성과나 결과물이라고 착각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탁월함의 본질은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 매 순간 마주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정의했다.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기 쉬운 활동가들에게 과정의 가치를 역설한 셈이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창욱 과학동아 부편집장은 과학 저널리스트의 시각을 더했다. 그는 과학사의 혁신 사례들을 나열하며 탁월함이 천재의 전유물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 편집장은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엉뚱해 보이는 호기심,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시도들이 겹겹이 쌓인 결과"라며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축적의 힘'을 주문했다.

2부 세션은 실제 비영리 현장에서 '탁월함'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홍진아 카카오임팩트 팀장을 필두로 박상원 사단법인 늘픔가치 대표, 정민석 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이사장,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각자가 마주한 사회적 난제들을 어떻게 돌파했는지 공유했다. 단순히 '우리가 이런 좋은 일을 했다'는 나열식 성과 보고가 아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스타트업 성장기를 연상케 했다.

사례 발표 후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가 모더레이터로 나서 던진 질문은 묵직했다. "탁월함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장 교수는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비영리의 실천이 단순한 활동을 넘어 사회적 진화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마지막 세션은 '지원 사격'의 성격을 띠었다. 비영리 활동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 중 하나인 '전달력'과 '인사이트'를 다뤘기 때문이다.

김지원 경향신문 기자는 '읽기'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려면 독서가 필수적"이라며 "사유의 폭이 넓어져야 활동의 메시지도 깊어진다"고 조언했다. 다큐멘터리 작가인 한지원 방송작가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활동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공허하다"며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고 새롭게 기획해 대중을 설득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을 공유했다.

현장을 찾은 한 30대 활동가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며 늘 '좋은 의도' 뒤에 숨어 전문성 부족을 합리화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며 "내가 주인공이 되어 탁월함을 고민해볼 수 있어 큰 용기를 얻고 간다"고 소감을 밝혔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지난해 주제였던 '사랑'이 비영리의 출발점이라면, 올해 '탁월'은 그 가치를 증명하고 확장하는 수단"이라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활동가들이 서로 연대하며 실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류석영 카카오임팩트 이사장 역시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비영리 활동가들의 전문성을 재확인한 자리"라며 "이곳에서 논의된 탁월함과 선한 영향력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컨퍼런스는 비영리 섹터가 단순히 '도움을 주는 곳'을 넘어 '사회 혁신의 전문가 그룹'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50분 매진 사태가 보여주듯, 성장을 갈망하는 활동가들의 욕구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 비영리 조직들에게 '탁월함'은 선택이 아닌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이번 체인지온 컨퍼런스의 전체 세션 영상은 오는 12월 중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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