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가 전례 없는 고강도 인사혁신을 선언하면서 금융지주 보험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거취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실적 둔화와 내부통제 리스크가 겹쳐 있는 농협생명과 농협손해보험은 인사 기조 변화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연말 인사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두 조직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조직 내부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전면적 인적 쇄신으로 기조 바뀐 농협 인사…임기와 무관한 평가 체제 가동
농협중앙회가 올 12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내놓은 '범농협 인적 쇄신안'은 그간 관행처럼 굳어졌던 농협 조직 문화를 뿌리째 뒤흔들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협은 수년간 국정감사·금융감독원 검사·내부 감사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 범농협 계열사 전반의 통제 부실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결과로 풀이된다.
농협의 인적 쇄신은 강호동 중앙회장을 둘러싼 금품수수 의혹, 계열사에서 잇따라 발생한 금융사고와 내부 비위 등이 계기가 됐다. 강 회장은 그간 전문성보다 선거공헌도를 중심으로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올해 국정감사에서 중앙회 임원단이 여야 의원들로부터 직격탄을 맞으면서 농협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번 쇄신안에는 농협 조직 내에서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과감한 조치들이 담겼다. 대표적인 것이 퇴직자의 재취업 금지, 회장 의중 개입 여지를 줄이기 위한 외부 헤드헌팅 도입, 대표·임원·집행간부 절반 이상 교체, 수의계약 전면 금지, 책무구조도에 따른 대표이사 해임 절차 강화 등이다. 단순한 인적 교체를 넘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특히 외부 전문 헤드헌팅 도입은 농협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농협 인사는 내부 추천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회장과의 인연·선거 기여도·조직 내 충성도가 주요 기준으로 자리잡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를 통해 친 회장 중심의 인사 구조를 차단하고 전문성과 성과 중심의 인선을 추진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쇄신 기조가 주요 계열사 CEO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될 것으로 분석된다. 농협중앙회는 임기 잔여 여부와 상관없이 경영성과, 전문성, 내부통제 관리능력 등 실질적 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내부적으로 공유한 상태다. 일종의 '제로 베이스 심사'에 가까운 방식이다.
특히 농협금융 산하 계열사인 농협생명과 농협손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사는 정책보험 비중과 외부 환경 변수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크고, 소비자 민원·내부통제·채널 관리 등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CEO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연말 인사에서 보험부문 수장들의 거취는 중앙회 쇄신 기조의 방향성을 가늠할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배경이다.
실적 둔화와 내부통제 리스크가 겹친 농협생보·손보…CEO 거취 '시험대'
농협생명 박병희 대표와 농협손보 송춘수 대표는 모두 올해 1월 공식 취임한 '보험전문가 CEO'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당시 중앙회는 보험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임했다고 강조하며 두 대표를 임명했지만 취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인사 쇄신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농협생명 박 대표의 경우 실적 둔화와 내부통제 논란으로 거취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농협생명의 연결기준 누적 당기순이익은 2109억원으로 전년 대비 14.9% 감소했다. 보험손익이 지급보험금 증가와 미발생손해액(IBNR) 부담이 확대되면서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여기에 비용구조 개선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수익성 방어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다른 대형 생보사와 비교할 경우 경쟁력 열세가 부각된 대목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는 중앙회가 강조하는 '경영성과 기반 평가' 기준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적 변동성이 외부 요인에 의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익성 관리 지표는 CEO 평가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판촉용 핸드크림 수의계약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사건은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되며 농협생명의 내부통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촉발했다. 특히 계약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 연루 의혹, 단가 부풀리기 정황, 납품 미이행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면서 금융당국이 즉각 검사에 착수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박 대표는 당시 부사장으로 결재라인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내부통제 미흡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금융당국 역시 국감장에서 "비위 혐의가 짙다"며 엄정한 조치를 예고한 상태다. 중앙회가 인적 쇄신 기준을 강화하며 '비위 발생 시 대표 해임' 규정을 명문화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박 대표는 임기가 남았음에도 거취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농협손보의 송춘수 대표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농협손보는 정책보험 중심의 사업 구조상 정부 정책과 외부 환경에 취약한데, 올해 집중호우와 산불 등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손해율이 급등했다. 그 결과 3분기 기준 누적 당기순이익은 1219억원으로 전년 대비 12.1% 감소했다. 보험손익 역시 325억원으로 전년대비 무려 75% 가까이 줄었다.
농협중앙회의 성과·전문성 중심의 대대적인 쇄신인사가 송 대표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농협손보는 소비자 보호 리스크도 떠안고 있다. 농협손보의 민원 건수는 올해 3분기 기준 236건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보유계약 10만건당 민원 건수가 5건 이상으로 높아졌다. 내부적으로는 CCO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업계에선 농협생명·농협손보 모두 실적 둔화와 내부통제 리스크, 민원 증가, 정책보험 구조 부담 등의 악재가 겹쳐있는 만큼 농협중앙회의 '성과 중심 쇄신 인사'가 두 CEO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농협 산하 보험 계열사 대표 모두 실적 부진, 내부통제 의혹, 민원 증가 등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이들의 연말 인사는 중앙회 쇄신안의 상징적 조치가 될 수 있다"며 "농협이 과거의 관행을 끊고 진정한 쇄신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형식적 변화에 그칠지는 농협생명·농협손보 인사 결과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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