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의 "서학개미 때문에 환율급등" 논리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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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 총재의 "서학개미 때문에 환율급등" 논리 맞나?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1-28 07:5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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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운대에 접근하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외환시장을 둘러싼 해묵은 공식들이 깨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통상 환율 급등의 주범으로 꼽히던 미국과의 금리차나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아닌, 한국의 내국인 개인 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가 새로운 압력 변수가 됐다는 것이다.

 이창용(65) 한국은행 총재는 이례적으로 환율 상승의 책임을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확대에서 찾았다. 이창용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이 지금 1,500원 수준으로 가는 것이 한·미 금리차 때문도 아니고 외국인에 의한 자본 유출 때문도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단지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현상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나아가 "젊은 분들이 해외투자를 많이 해서 유행처럼 커지는 면이 걱정된다"며 "개인투자자들의 위험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공개적인 경고를 했다. 과거 외환 당국의 환율 관리 초점이 외부 충격 방어에 있었다면, 이제는 내국인의 자발적 자본 유출이라는 내부 구조적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외환시장 역학 관계를 바꾼 '서학개미 충격파'

서학개미의 해외 증권투자는 이미 단순한 자산 선호를 넘어 외환시장의 단기 변동성을 결정하는 핵심 동인이 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5년 11월 21일 기준 해외주식 개인투자자 보관금액은 1,564억 8,011만 달러(약 230조 8,238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말 보관금액(1,215억 4,303만 달러) 대비 28.74%나 증가한 수치였다.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테슬라 주식 규모(245억 4,569만 달러, 약 36조 1,680억 원)는 국내 시가총액 17위인 한화오션의 규모를 상회할 정도였다. 이처럼 대규모의 투자가 집행되려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야 하므로, 이는 원화 약세와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환전 수요가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는 '방식'과 '시점'이었다. 대다수 국내 증권사는 고객이 원화만으로 해외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하는 통합 증거금 시스템을 운용하는데, 증권사는 밤새 거래된 고객들의 달러 부족분을 다음 날 아침 외환시장 개장 직후인 오전 9시에 일시에 매수해 결제한다. 

 이러한 미시 구조적 취약점 때문에 외환 당국은 외환시장이 열리는 개장 초반, 달러/원 환율이 급등하는 '9시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지난 11월 21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9개 대형 증권사 외환 담당자들을 소집해 환전 수요를 장중으로 분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국은 특정 시점이 아닌 하루 평균 환율로 정산하거나, 주문 즉시 환전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증권업계는 이미 24시간 거래 체제에 맞춰 시스템을 정비한 상태여서 당장의 시스템 변경은 전산 안정성 우려 등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며 난색을 표했다.  

구조적 유출의 거인: 국민연금의 만성적 달러 수요

 서학개미의 영향이 단기적이고 급격한 변동성을 야기했다면, 환율의 고공행진을 장기적으로 고착화하는 구조적 압력은 국민연금공단(NPS)에서 비롯됐다.

국민연금은 운용 규모 1,322조 원에 달하는 외환시장의 단일 최대 플레이어다. 이 중 58%인 771조 원이 해외 투자 자산에 배분되었으며, 2028년까지 해외 투자 비중을 60%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원화로 보험료를 받아 대규모의 해외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 국민연금은 매년 대규모의 달러 환전(달러 매수)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구윤철 부총리 겸 장관은 "외환시장 규모 대비 큰 연금의 해외투자가 단기에 집중되면 물가 상승과 구매력 약화로 인한 실질소득 저하 등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당국은 향후 수십 년간 연평균 30조~45조 원 규모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액 증가가 원화의 구조적 약세를 유발하는 가장 큰 배경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당국은 시장 충격을 분산하기 위해 국민연금과 한국은행 간의 외환 스와프(FX Swap) 거래 한도를 2025년 말까지 650억 달러(약 95조1000억원)로 증액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이 스와프 제도는 국민연금이 외환 보유액을 활용해 필요한 달러를 조달하게 함으로써, 현물 시장에서 대규모 달러 매수 없이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핵심 정책 도구로 기능한다. 이창용 총재는 이를 두고 "국민 노후자산 희생이 아니라 보호하고자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고환율의 뿌리

국내 생산성 둔화가

자본을 해외로 밀어냈다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는 단순히 '쏠림 현상'이나 '유행'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반영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세가 급속도로 둔화한 것이 국내 자본 수익성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투자 수익률이 해외 투자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밑도는 수익률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KDI 보고서는 이러한 수익률 역전이 합리적인 경제 주체들에게 국내 투자를 축소하고 해외 투자를 확대할 강력한 경제적 유인을 제공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2000~2008년 국민소득 대비 0.7%에 불과했던 순해외투자 비중은 2015~2024년 4.1%로 6배 가까이 상승했다.

더 심각한 것은 국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경제 활력이 더욱 저하된다는 점이었다. KDI는 생산성 둔화가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충격이 자본 유출로 인해 1.5배 증폭된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생산성 하락에 대응해 국내 투자를 축소하고 자본을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국내 자본 스톡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GDP 감소 폭이 더욱 확대되는 구조였다.  

이는 한국 경제가 국내 생산 활동보다는 해외 투자 수익에 더 많이 의존하는 형태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외환시장의 불안정은 단순한 금융 문제가 아니라, 국내 투자 환경의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활력 저하의 징후라는 진단이 가능했다. 

 고환율 장기화와 정책의 새로운 과제

당국은 단기적인 시장 충격을 분산하기 위해 한국은행-국민연금 외환 스와프 한도를 확대하고,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집행 시기를 국내 외환시장 유동성에 연동해 조절하는 '뉴 프레임워크' 도입을 논의했다. 또한 증권사에도 '9시 쏠림 현상' 분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근본적으로 국내 자본 유출이라는 경제적 현실을 상쇄하는 임시방편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환율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으로 '규제 완화와 고용 유연성 확대를 통한 기업 투자 유도'를 꼽았다. 국내 기업의 자본 수익성이 높아져야만 해외 투자로의 구조적 흐름을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고환율 기조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뉴 노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대규모 외화 유입(560억 달러 규모)과 같은 일시적인 강세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 국민연금과 서학개미의 구조적 달러 수요 압력을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창용 총재가 언급했듯이, 환율 관리는 이제 외환위기 대응 방식이 아닌, '개인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을 조절' 해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한국 경제는 고환율 시대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구조적 개혁을 서두르는 것이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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