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과의 갈등 심화 속에 신흥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신흥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중국의 수출국 다변화 가속화 현상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의 관세 조치 시행 이후 중국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다. 반면 유럽연합(EU), 아세안, 아프리카 등 미국 외 지역으로의 수출은 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준호 한은 조사국 중국경제팀 과장은 "중국경제는 미국 관세정책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미 수출 급감을 미국 외 국가로의 수출 확대로 완충하면서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미·중 무역갈등이 본격화된 2018년 19.3%에서 지난해 14.7%로 낮아진 데 이어, 올해 들어 11.4%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관세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수출국 다변화 전략이 본격화된 결과다.
실제로 관세 부과 이후 글로벌 교역 흐름을 보면, '중국→미국' 수출은 급감한 반면 '중국→아세안', '아세안→미국' 수출은 크게 늘었다. 미국향 감소분이 아세안을 통한 우회 수출로 상당 부분 대체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품목별로는 완구류에서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고, 이어 휴대폰·진공청소기·TV 등 전기·전자제품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한편 중국의 수출 다변화는 자국 내 공급과잉 해소와 신흥시장에 대한 영향력 확대라는 전략적 목적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분석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미국 관세 이후 중국의 EU 수출 증가에 대해 해외 압력보다 국내 수요 둔화가 더 큰 요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고, EU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응한 규제를 잇달아 마련하고 있다.
실제로 철강 등 전통 제조업뿐 아니라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중국 생산 능력은 내수 및 글로벌 수요를 상당폭 초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품목의 EU 수출이 급증하고 수출 단가도 하락하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 강화로 중국의 아프리카·중남미 시장 공략도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의 아프리카 및 중남미(멕시코 제외) 수출은 각각 27.9%, 11.5% 늘며 중국 총수출 증가율(6.1%)을 크게 상회했다.
중국은 2013년 이후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프리카 투자를 확대해왔으며, 외교·경제적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중남미에서도 멕시코·브라질 등 주요 미국 관세 대상국을 제외한 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크게 늘었다.
한은은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중장기적으로 신흥시장 내 '메이드 인 차이나'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철강·건설기계 등 다수 품목에서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수요 감소로 중국에 대한 수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국산 저가 공세와 정면으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이 중남미·아프리카로 수출을 빠르게 다변화할 경우, 한국의 수출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 과장은 "중국의 수출국 다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제조 경쟁력에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경쟁력 까지 접목될 경우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독일, 일본 등 제조업 중심 국가들의 어려움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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