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한한 김신우 법무법인 대륙아주 원자력에너지자원 팀장(외국변호사)은 서울 강남구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미국의 원전 시장에 올인해야 하는 골든타임”이라며 “웨스팅하우스 불공정 계약에 움츠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화룽 1호 전략’으로 원전 수출에 나서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워싱턴 D.C.에서 주로 활동하는 김 변호사는 산업계(한전KPS·POSCO), 규제기관(원자력안전위원회)을 두루 경험한 흔치 않은 경력의 전문가다. 미국 법·정책·규제를 바탕으로 원전 수출 전략 등을 조언해오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논란도 김 변호사가 집중해서 보는 분야다.
|
앞서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가 올해 초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에는 한국이 해외 원전 수출 시 1기당 조 단위 로열티를 최대 50년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됐다. 협약에 따라 우리나라가 유럽 시장에 독자 수출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련해 김 변호사는 웨스팅하우스 논란을 타개할 참조 사례로 중국의 화룽 1호 개발·수출 과정을 설명했다. 화룽 1호는 중국이 독자 설계한 3세대 원자로다. 중국은 웨스팅하우스와 불공정 계약을 맺었으나 15년간 체계적인 로드맵을 세워 원전 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 현재는 파키스탄 등의 국가에 화룽 1호를 수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단기·중기·장기 과제를 정한 뒤 10년 이상의 국산화 로드맵을 짤 것을 주문했다. 그는 5년 이내 단기 전략으로 ‘상호 이익 구조’를 제안했다. 한국이 웨스팅하우스의 3세대 원전(AP1000)에 대해 설계·조달·시공(EPC) 및 프로젝트 관리를 맡고, 동시에 우리가 독자 개발한 APR1400을 미국 내 신규 원전 프로젝트에 도입하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와의 재협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중기(5~10년) 과제로는 미국 시장은 미국 기업과 협력하고, 개발도상국 시장에서는 한국형 모델로 독자 수출하는 ‘이중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기적(10년 이후)으로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 시점을 앞당겨 대형·중형·소형 등 다양한 기술 라인업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라며 “원전 수출은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의 원전 시장에 올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400GW로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미국 정부가 한국을 유력한 파트너로 평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변호사는 “미 워싱턴 D.C. 인근인 버지니아에 데이터센터와 SMR을 함께 짓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며 “현재 일본은 적극적으로 미국과 원전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일본에 원전 프로젝트를 뺏기지 않으려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과 본격적인 논의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제조업 비중, 전력다소비 업종 비율 등 우리 산업 구조를 고려하면 기저부하의 일정 부분은 중장기적으로도 원전이 맡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탈원전 vs 친원전’ 프레임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경쟁 관계가 아닌 역할 분담으로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주요 내용이다.
|
-한국의 원자력 기술·산업·정책을 바라보는 미 행정부나 워싱턴 정가 시각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한국 원자력 기술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지만 한국 원자력 전략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우선 기술·산업 역량에 대한 평가는 기대 이상이다. 미 에너지부(DOE), 의회 보좌진, 민간 원전 기업,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공통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 한국은 제때, 예산 안에 원전을 지어본 거의 유일한 파트너라는 점이다. 둘째로는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설계·조달·시공(EPC) 및 시운전까지 완주한 경험이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셋째로는 한국이 자체 개발해 수출한 APR1400의 시공·운영 경험이 쌓이면서 ‘한국은 입증된 공급자(proven provider)’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한국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고, 함께 글로벌 공급망을 구성할 핵심 국가로 보고 있다.
|
|
-그런데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전략에 대해선 왜 의문을 제기하고 있나?
△미국은 한국의 원자력 정책·전략에 대해선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로는 한국이 미국과 어떤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시장을 미국 기업과 협력할지, 어떤 시장을 독자적으로 가려는지가 한미 간에 뚜렷하게 공유돼 있지 않다. 한미가 함께 갈 제 3국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양국 간에 없는 상황이다.
둘째로는 정기적인 고위급 소통 채널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 프랑스의 경우 민간 CEO와 장관급이 워싱턴 D.C.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전략 브리핑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반면 한국은 산업통상부나 공기업 임원들이 개별 방문하는 경우만 있을 뿐이다. 한미 원자력 파트너십에 대한 정례적인 대화의 틀이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
셋째로는 미국 시장에 대한 한국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미국 내에 신규 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 시장이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선 ‘한국이 정말로 미국 본토 시장에 파이프라인을 만들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 많다. 단순 기자회견이 아니라 구체적인 프로젝트 제안, 조인트벤처(JV) 구조, 투자 계획이 보이길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이 먼저 ‘미국과 함께 어디까지 갈지’, ‘어떤 방식으로 갈지’ 등에 대해 정치·외교·산업 차원의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다.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의 원전 시장에 올인해야 한다.
-웨스팅하우스와의 불공정 계약 때문에 원전 독자 수출이 힘들지 않나?
△중국은 과거에 웨스팅하우스와 15년간 불공정 계약을 유지했음에도, 이를 국산화 전략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 결과 ‘화룽 1호(Hualong One)’ 독자 모델을 완성하고 해외 수출까지 성공했다. 한국도 계약 위반을 하지 않는 선에서 원전 부품의 국산화 튜닝을 단계적으로 하면서 자립에 나서야 한다. 중국은 15년간 이같은 ‘화룽 1호 전략’을 세워, 표준모델과 금융 패키지 및 외교력을 동원해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한국도 단기·중기·장기 전략을 세워 미국 원전 시장을 뚫어야 한다.
|
-‘화룽 1호 전략’을 반영한 단기·중기·장기 전략이란?
△단기적(5년 이내)으로는 이미 수주한 해외 프로젝트와 진행 중인 입찰에서 웨스팅하우스와의 법적 분쟁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계약 구조, 프로젝트 회사, 라이선스 구조를 재점검해 ‘소송은 소송대로, 사업은 사업대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에 대해 설계·조달·시공(EPC) 및 사업 관리를 해주고, 동시에 우리의 APR1400을 미국에 건설하는 방안을 병행하는 주고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와 재협상도 해야 한다.
중기적(5~10년)으로는 수출 모델을 이중화해야 한다. 이는 미국, 나토(NATO) 시장에서는 미국과 협력 모델로 진출하고 비동맹, 중립권, 개발도상국 시장에서는 한국 독자 모델로 가는 방식이다. 투 트랙을 동시에 설계해 둬야 법·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 핵심부품 국산화율을 80% 이상 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장기적(10년 이후)으로는 APR1400 같은 대형 원전뿐만아니라 다양한 기술 라인업을 갖춰야 한다. 특히 앞으로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SMR 도입 시기를 빨리 앞당겨야 한다.
정리하자면 ‘전략적 이중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법·정책·동맹 구조의 리스크를 분산하고, 기술·금융·비지니스 모델도 하나의 길에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이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한국이 향후 10~20년에 한 번뿐인 글로벌 원전 리빌딩 사이클에서 공급망의 중심이 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
-미국은 데이터센터 옆에 SMR을 함께 짓는다고?
△미 워싱턴 D.C. 인근인 버지니아에 데이터센터와 SMR을 함께 짓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AI)으로 전력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에 워싱턴 D.C.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현재 일본은 적극적으로 미국과 원전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일본에 원전 프로젝트를 뺏기지 않으려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과 본격적인 논의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1~2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서 트럼프 임기 중에 굵직한 기둥을 박아놔야 한다.
-이재명정부의 에너지정책 관련해 제언하자면?
△에너지 정책은 안전과 환경(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와 공급 안정성, 경제성·산업 생태계라는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세 가지 중 하나만 강조하면 나머지 두 가지에서 반드시 비용을 치르게 돼 있다. 관련해 4가지 과제를 제언하고 싶다.
첫째, ‘탈원전 vs 친원전’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는 높은 원전 비중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 수요관리, 효율 향상이 모두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몇 퍼센트냐가 아니라 대통령이 강조한 실용적 차원에서 ‘어떤 시간표로 어떤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전환할 것인가’다.
둘째, 12차 전기본은 정치적 선언문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기술·재무 계획이어야 한다. 계속운전, 신규 원전 건설 여부는 국내 전력수요, 기후목표, 균형발전, 산업경쟁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포트폴리오 결정이어야 한다. 전기본에는 계속운전, 단계적 감축, 신규 대체 등 발전소 개별 단위의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담겨야 한다.
셋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내년부터 포화에 도달하는 부지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정치적 논쟁과 별개로 물리적 한계가 닥친다. 중간저장시설, 건식저장, 중간저장, 심층처분 등 옵션에 대해 전국 단위 사회적 합의 매커니즘을 가동해야 할 시점이다. 독립적인 사용후핵연료 관리기구 설립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경쟁 관계가 아닌 역할 분담으로 봐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크지만 원전은 장주기 안정출력이 강점이다. 제조업 비중, 전력다소비 업종 비율 등 우리 산업 구조를 고려하면 기저부하의 일정 부분은 중장기적으로도 원전이 맡는 것이 현실적이다. 원전 비중이 높을수록 안전 규제, 사고 대응, 투명성 확보, 지역사회 상생 구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에너지정책의 찬반 구도를 넘어서 데이터, 리스크, 시간표에 기반한 국가 에너지 전략으로 논의를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원전은 그 전략 안에서 중요한 축이지만 유일한 해답만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가스, 수소, 저장장치, 수요관리, 송·배전망 강화 등과 함께 ‘한국형 복합 에너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