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지혜 기자】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혁신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1인1표제’가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고 있다. 이 제도가 단순한 혁신안이 아니라 당권 장악과 차기 지방선거, 전당대회, 대선으로 이어지는 장기 포석의 핵심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당 내에 번지면서 정 대표의 입지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당심을 빠르게 결집시키며 “당원 주권 정당”이라는 명분을 강조해 왔지만 계파 간 반발이 거세지고 여권 내 차기 주자 구도가 재편되면서 그의 전략에도 금이 가는 모양새다. 여기에 대통령실과 범여권까지 미묘한 긴장 기류까지 더해지며, 정 대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복잡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1인1표제, 권력 재편인가
당초 오는 28일 ‘1인1표제’ 당헌·당규 개정안 결정이 될 예정이던 중앙위원회는 12월 5일로 일주일 연기되면서 결정이 미뤄졌다. 지난 24일 열린 당무위원회가 전략지역 보완책 등 후속 논의를 이유로 중앙위 소집 일정을 늦춘 것이다. 정 대표가 전격 추진 중인 1인1표제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완전히 동등하게 조정하는 당헌 개정안이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 대표의 발언을 전하며 “반대 의견은 거의 없다”며 “만장일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에도 추진해왔던 정책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국민주권 시대에 걸맞게 당원주권 정당으로 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당무위 말미에 고성이 오갔다는 보도와 일부 당원의 ‘의결 무효’ 가처분 신청 움직임은 내홍이 표면화됐음을 방증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명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논평을 통해 “의견수렴 방식과 절차적 정당성, 타이밍 면에서 ‘이렇게 해야만 하나’라는 당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들려온다”며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언주 최고위원 역시 공개적으로 “수십 년 유지된 중요한 제도를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단 며칠 사이에 밀어붙이는 것이 맞느냐”며 “왜 대통령 순방 중에 이처럼 이의가 많은 안건을 처리해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 시절을 언급하며 “2023년 우리 당이 60대1이던 대의원 대 권리당원 표 반영 비율을 20대1로 축소했을 땐 지금과 다르게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그간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 가치를 100대1, 60대1, 20대1로 단계적으로 축소해왔다. 이재명 대표 시절에도 1대1 동등화를 검토했으나 20대1 선에서 조정을 멈췄다. 때문에 이번 개정안은 민주당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개정안이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가장 큰 이유는 당권 지형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도당위원장 상당수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선출된 인물들로, 지방선거 공천과 차기 대선 기반 구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1인1표제가 도입되면 권리당원이 집중된 호남과 수도권 표심이 당내 선거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면서 이들의 기존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보다 권리당원 득표율이 훨씬 높았고 이른바 ‘친명(친이재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를 제치고 대표가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 때문에 정청래 중심의 권력축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친명’ 김민석, 차기 당대표로 부상
정 대표의 1인1표제 강행 드라이브는 계파 갈등을 넘어 대통령실과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균형자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정 대표 체제가 지나치게 팬덤과 강성 지지층에만 치우치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정가에선 김민석 총리가 차기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설에 휩싸이며 ‘정청래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신지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한 방송에서 “내년 8월 전당대회에서 김민석이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당초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김 의원이 최근 “내년 8월 당대표 경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여의도 안팎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정 대표가 이처럼 속도전을 택하는 것은 당심 중심 구조를 조기에 굳혀 ‘정청래 대세론’을 확보하고, 김 총리와 같은 대항마가 부상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 대표가 이번 개정을 통해 당심 기반을 자신의 축으로 완전히 재편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이를 견제할 인물과 세력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1인1표제라는 제도 개편이 단순히 ‘당권 경쟁 룰’ 변경을 넘어, 대통령실과 민주당 지도부, 계파 간 권력 장악을 둘러싼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조국 ‘외연 확장’, 새로운 위협으로
정 대표를 둘러싼 또 하나의 변수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다. 최근 두 사람의 정치개혁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여권 진영 내 표 분할 구도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은 것으로 분석된다.
조 대표는 지난 6일 취임 인사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지난 4월 채택된 ‘원탁선언문’이 반년이 지난 지금도 답보 상태”라고 지적했다. 앞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지난 4월 ‘내란종식·민주헌정수호·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를 꾸려 대통령 선거 직후 교섭단체 요건 완화와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는 공동 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다.
조 대표는 지난 23일 열린 전당대회에서도 당 대표 수락 연설을 통해 “민주당에 묻는다. 정치개혁을 언제까지 미룰 것이냐. 대선이 끝났으니, 그 합의는 없던 일이 된 것이냐”며 “민주당이 계속해서 공동선언문을 서랍 속에 방치한다면, 그것은 곧 대국민 약속 파기이자 개혁정당들에 대한 신뢰 파기”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특히 조 대표는 이 자리에서 “팬덤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당원의 열정은 엔진이고 국민의 목소리는 방향이다. 두 목소리가 함께 가는 정치를 하겠다”며 외연 확장으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메시지는 정 대표의 강성 당심 중심 전략과 정면 충돌하는 지점이다.
조 대표가 ‘확장 전략’이라는 어젠다를 선점하는 순간,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으로 확장할 공간을 상실하게 된다. 조국혁신당의 세력 확장은 민주당의 기존 표밭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조 대표의 외연 확장 전략이 정 대표의 당심 중심 전략을 위협하는 구도가 형성되는 셈이다.
속도전·지지층 정치의 함정 빠질수도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 이른바 팬덤 결집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1인1표제’ 강행뿐만 아니라 “딴지뉴스가 민심의 척도”는 발언이나 이재명 대통령 해외 순방 중에서 계속 내놓은 정치적 메시지 등은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팬덤 중심 정치가 중도층에 피로감을 준다는 점이 큰 리스크다. 지방선거와 대선 등 향후 선거 일정에서 중도 확장은 필수 과제인데, 정 대표식 전략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정 대표의 정치 방식은 속도전의 정치이고,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라고 규정했다. 그는 “지금 정 대표가 취하고 있는 방식은 원심력만 강하게 작동시키는 전략”이라며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그만큼 구심력이 약해져 외연 확장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심력을 세게 걸면 내부 결속은 강해지지만, 동시에 소외되는 층이 많아지고 당내 갈등은 더 시끄러워진다”며 “특히 중도층을 밀어내는 효과가 커 장기적으로는 리더십의 불안정성을 키운다”고 분석했다.
결국 정 대표는 ‘1인1표제’ 강행으로 당내 갈등을 마주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실과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처지다. 여기에 김민석 의원이 차기 당대표 대항마로 부상하고, 조국 대표가 외연 확장 전략으로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팬덤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1인1표제’ 추진마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처럼 복수의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정 대표의 리더십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정가에선 정 대표가 당권 강화를 위한 속도전을 멈추지 않을 경우 내부 반발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제동을 걸고 조율에 나설 경우엔 강성 지지층의 이탈과 함께 추진력 상실이라는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권 내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정 대표의 정치적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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