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신희재 기자 | "야구단 일을 바닥부터 시작하면서 경험한 게 많았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염경엽(57) 감독이 25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한국스포츠경제 사옥을 찾아 평범한 선수에서 명감독으로 거듭난 비결을 밝혔다.
지난달 LG를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끈 염경엽 감독은 이달 초 구단과 3년 최대 30억원에 재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 11월 제14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3시즌 동안 두 차례 통합우승(정규시즌·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공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로써 염경엽 감독은 2019년 김태형 두산 베어스(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3년 총액 28억원을 뛰어넘으며 KBO리그 역대 감독 중 최고 대우를 받게 됐다.
현역 시절엔 상상도 못 했던 반전이다. 염경엽 감독은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프로 데뷔해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 동안 통산 타율 0.195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은퇴 후에는 현대 프런트로 들어가 제2의 인생을 맞이했다. 전표 관리부터 시작해 주요 부서 팀장을 거치며 야구단 일을 배웠다. 2007년부터는 코치로 현장에 돌아가 현대, LG,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를 차례대로 거쳤다. 은퇴 후 2013년 넥센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이 될 때까지 무려 12년의 세월이 걸렸다. 당시만 해도 오늘날의 염경엽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지만, 이후 2개 팀을 거쳐 LG에서 지도자로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베테랑과 유망주의 조화, LG가 강팀으로 올라선 비결
염경엽 감독은 최근 자신의 리더십 철학을 담은 에세이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를 출간했다. 12일 출간된 책은 현재 전국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염경엽 감독은 선수 시절 자신을 '한량'으로 표현하면서도 은퇴 후에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점을 강조했다. 그는 "예전만 해도 야구단 조직은 구분이 잘 안됐다. 일 잘하는 사람이 다 하는 시대였다"며 "야구단 일이 내 손을 안 거치면 안 되게끔 했다. 또 윗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이때 '상향 리더십'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리더십 철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사의 '꼬장' 때문에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스트레스받았다. 그때 일을 하는 것보다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즐겁게 출근하는 분위기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염경엽 감독은 LG 부임 후 베테랑과 유망주의 조화를 이룬 데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주전조와 비주전조를 명확하게 나눠 팀 내 경쟁을 줄였다. 이를 통해 베테랑들에게는 안정감을 주고, 유망주들은 같은 포지션의 베테랑을 보며 성장할 기회를 제공했다.
염경엽 감독은 "LG의 장점은 선임들이 유망주와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임들도 (코치진과) 함께 유망주들을 키워주니까 팀이 잘 돌아간다. 우리 팀은 선임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라며 "내가 만들고 싶었던 팀 분위기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신인들은 주전 선수들과 경쟁하면 (어지간해서는) 못 이긴다. 또 선배들도 어린 선수들을 경쟁자라고 생각하면 '내가 살아야 하는데' 싶어서 안 챙긴다"고 부연했다.
이날 자리에 동석한 주장 박해민과 차명석 단장도 염경엽 감독의 철학을 지지했다. 박해민은 "감독님은 경기에 못 나갈 때 오해가 없게 설명해 주신다. 선참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원활하게 소통한다"고 소개했다. 차명석 단장은 "내가 구슬을 모으는 사람이라면, 염경엽 감독은 세밀한 부분을 잘 잡아줬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슬럼프 극복하고 폰세·와이스 버틴 한화 제친 비결은
지난 7월 대구에서 만난 염경엽 감독은 "안 좋을 때 무리하지 않아야 반등할 수 있다. 지금은 견디고 비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LG는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시즌 초반 승률 8할을 넘기며 단독 1위로 치고 올라갔으나 6월 들어 홍창기, 오스틴 딘 등 주축 타자들이 부상으로 이탈해 내리막을 탔다. 결국 전반기를 선두 한화 이글스에 4.5경기 차 뒤진 2위로 마무리했다.
이 시기 염경엽 감독은 위기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를 주기보다는 주축들을 믿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즌을 운영했다. 이는 LG가 8월 구단 월간 최다승 신기록(18승 1무 5패)으로 선두 탈환에 성공하는 원동력이 됐다.
염경엽 감독은 당시에 대해 "6월엔 이정용, 함덕주가 오면 더 좋아질 거로 생각했다. 탄력받아야 했는데 오히려 고꾸라지면서 막막해졌다"면서도 "144경기를 매번 똑같이 운영하면 후반기에 무너지게 된다. 누가 빠졌을 때 누구를 보충할 것인지 뒤를 계산하면서 (후반기를) 준비했다"고 복기했다.
LG는 시즌 막판까지 한화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친 끝에 최종전에서야 정규시즌 1위를 확정했다. 염경엽 감독은 "한화는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가 거의 40승을 했다. 1년에 10연승 이상도 두 차례나 했다. 그만큼 팀 전력이 좋고 안정적이었다는 의미다"라며 까다로운 상대였음을 언급했다.
LG는 위닝 시리즈(3연전 2승 이상)를 최대한 많이 가져가는 전략으로 한화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염경엽 감독은 "우리는 7연승 이상을 달리면 전력에 과부하가 생겼다"며 "3연승과 2승 1패를 반복하면서 안 될 땐 한 경기 졌다. 그러면 보충이 됐다"고 되돌아봤다. 이를 통해 8월 말에는 12연속으로 KBO 한 시즌 최다 위닝시리즈 신기록도 작성했다.
최근 3년 동안 두 차례 우승을 차지한 LG는 내년 시즌 구단 역사상 첫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염경엽 감독은 "기분은 2년 전 우승이 더 좋았지만, 이번 우승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느낌이다"라며 "사실 올해는 한화가 우승해야 했다. 그런데 운이 따르고, 선수들도 너무 잘해줘서 기회가 왔다. 내년, 내후년이 훨씬 좋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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