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한일령(限日令)으로 일본행이 막히자 중국인 관광 수요가 한국으로 몰릴 전망이다. 연말·겨울 성수기를 앞둔 항공업계는 한중 노선 확대와 유커(遊客, 중국인 단체 관광객) 모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특정 국가 간 갈등을 관광 흐름으로 잇는 현상은 국제 관광 생태계 왜곡이라며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번달 중순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를 공식 권고하며 사실상 ‘한일령’ 수준의 조치를 취했다. 중국 항공사들은 일본행 항공권 취소·변경 수수료를 연말까지 면제하며 일본 여행 포기 수요를 흡수하는 데 나섰고, 이 과정에서 일본행 항공편 약 49만건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행 수요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기 위해 한국 항공업계가 빠르게 채비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장거리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중거리 중국 노선 확대를 올해 하반기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있어 이번 상황을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 노선은 일본 노선보다 운임이 높고, 면세 쇼핑과 수하물 수요도 많아 좌석당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해 한일령이 ‘실적 반전 카드’로 부각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더불어 정부가 지난 9월 29일부터 중국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시너지는 배가 됐다. 7월 기준 중국인 입국자는 전년 대비 23% 증가한 60만명이다. 관광 수요가 지속된다면 내년 상반기에는 2016년 수준으로 회복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3분기 사실상 적자를 본 항공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연말 성수기와 함께 이번 한중 노선 확대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며 “수익 만회를 위한 기회”라고 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현재 중국 내 20개 도시를 대상으로 26개 노선을 운영하며, 이달부터 인천~푸저우 노선을 주 3회에서 주 4회로 늘려 운항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중국 노선 운항을 전년대비 20% 확대해, 18개 노선에서 주 164회 운항하며 인천~충칭, 청두 노선의 매일 운항 등 주요 노선을 적극적으로 증편하고 있다.
LCC도 노선 확대에 분주하다. 제주항공은 중국 14개 도시에 취항하며 전체 노선의 22.9%를 차지하고, 에어부산은 23.3%로 가장 높은 중국 노선 비중을 보유하고 있다. 진에어와 티웨이항공도 신규 취항을 추진하며 중국 지방 도시 네트워크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주요 도시 노선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가 점유 중이지만, LCC는 구이린·장자제·시안 등 소도시 노선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인천·대구·부산 등 지방공항을 거점으로 틈새시장 확보와 동시에 지방 수요를 흡수하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수요 이동이 연말 성수기와 내년 2월 춘절(설 연휴)과 겹친다는 점도 항공·관광업계의 기대를 키우는 요인이다. 일본 관광업계는 한일령 장기화 시 춘절 기간 중국인 방문객이 평소의 2~3배 수준에서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항공은 물론 호텔 객실·쇼핑 인프라를 중심으로 수용능력 점검에 나선 모습이다.
다만 한일령이 외교·안보 이슈에서 촉발된 만큼, 사태 장기화 여부와 추가 제재 수위에 따라 수혜의 크기와 기간은 달라질 수 있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한일령을 계기로 특정 국가 간 갈등이 관광 흐름을 단기간에 뒤흔드는 구조가 굳어질 경우, 관광 생태계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관광 교류는 정치 변수와 분리해 관리하려는 협력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이번 일본 여행 자제령과 함께 일본 유학, 문화 콘텐츠, 항공·여행사를 포괄하는 전방위 조치를 동원해 대외정책 수단으로 ‘관광’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관광을 외교 카드로 빈번하게 사용하는 관행이 굳어지면, 특정 국가에 대한 쏠림 효과와 동시에 다른 지역의 급격한 침체가 반복돼 장기적인 투자와 고용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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