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66] 보화비장展을 보고 - ‘안목’의 시간을 건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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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련의 Artist Life_Story #66] 보화비장展을 보고 - ‘안목’의 시간을 건너며

문화매거진 2025-11-27 10:26: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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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전시를 보기 전, 간송미술관이 마련한 사전 설명회에 먼저 참여했다. 성북동의 오래된 길을 지나 미술관에 도착하기 전부터 작은 설렘이 있었지만, 정작 설명회에서는 예상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작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분위기, 그 시대를 살았던 수장가들의 마음, 그리고 간송 전형필이 어떤 의지로 이 컬렉션을 완성해나갔는지에 대한 긴 호흡의 시선이 이어졌다. 마치 전시에 들어가기 전 작은 등불을 하나 건네받은 느낌이었다.

▲ 설명회 / 사진: 정혜련 제공
▲ 설명회 / 사진: 정혜련 제공


설명회는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전시장은 분명 그대로였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감상자가 아닌 그 작품을 처음 마주했던 누군가의 감정과 고민을 함께 공유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제목처럼 ‘보화비장(葆華秘藏)’, 즉 아름다움을 품고 감춰 지켜낸다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청자 앞에 서 있을 때도 그 비취색 깊이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누군가 이 푸르름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어 했을 그 마음이었다. 시대적 혼란 속에서 선택했다는 사실이 작품을 훨씬 더 단단하게 보이게 했다. 설명회를 통해 배경을 듣고 난 뒤라 한 점의 유물도 단지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한 시대를 통째로 버티게 한 의지의 증거처럼 다가왔다.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작품을 볼 때 작가로서 늘 색과 재료, 숨결과 결을 먼저 읽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감상 이전에 ‘선택의 흔적’이 먼저 보였다. 안목이라는 것은 눈의 능력이 아니라 삶의 태도라는 말을 설명회에서 들었을 때, 나는 오래 마음이 멈춰 있었다. 사실 나 역시 작품을 통해 행복, 희망, 그리고 세잎클로버와 무지개 같은 상징을 꾸준히 반복해 왔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선택인 줄 알았는데, 이번 전시를 보며 깨달았다. 나 역시 오랫동안 어떤 것들을 ‘선택’하며 내 세계를 만들어왔던 것임을. 

설명회에서 강조했던 “근대 수장가들의 안목이 간송의 안목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는 곧 “한 사람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선택과 만나 더 큰 세계가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는 예술교육을 하는 나의 일상에도 맞닿는다.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라고 말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지켜보고, 선택하는 힘을 길러라.”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 전시 관련 이미지 / 사진: 정혜련 제공


전시장을 걷는 내내 설명회의 문장들이 속삭이듯 따라왔다. 덕분에 작품 앞에서 더 오래 머물렀고, 숨결 하나까지 더 세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특히 오세창이나 민영익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설명회에서 들었던 이야기 조각들이 떠올라 작품에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한 감각도 있었다. 그 그림자는 작품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층위를 만들어주는 그림자였다. 

예술가로서의 나 역시 순간적인 이미지나 감정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을 모아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에서 다시 확인했다. ‘몽다’와 ‘거복이’, ‘행복’을 주제로 한 나의 그림, 3D펜 수업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작은 캐릭터들까지. 그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작은 가치들을 모아놓은 내 나름의 ‘보화비장’인지도 모른다. 

설명회를 듣고 전시를 관람하는 경험은 마치 작품을 보기 전에 조용히 숨을 고르고, 그 숨결로 더 멀리 보는 법을 배우는 순간 같았다. 앞으로도 예술가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지. 이번 전시는 그 질문을 오래 머무르게 한다. 나는 그 질문을 조금 더 오래, 조용히 붙들어보고 싶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흔들림 없이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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