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윗집 사람들'로 모인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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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00:00 기준

하정우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윗집 사람들'로 모인 이름들

바자 2025-11-27 08:00:01 신고


UP STAIRS DOWN STAIRS


윗집 사는 하정우와 이하늬, 아랫집의 공효진과 김동욱. 층을 넘다가, 이따금 선을 넘는 두 커플을 보며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생각에 잠길 것이다. 영화 〈윗집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동욱이 착용한 셔츠, 베스트, 팬츠는 모두 Fendi. 팔찌는 Tom Wood. 왼손 검지에 착용한 반지는 Rocking Ag. 약지에 착용한 반지는 Diesel. 공효진이 착용한 퍼 재킷, 슬리브리스, 스커트는 모두 Chloé. 귀고리는 Messika.


하정우가 착용한 코트는 Kenzo. 탱크톱은 Recto. 팬츠는 Record. 반지는 Sallysohn. 이하늬가 착용한 니트 톱, 팬츠는 Tom Ford. 귀고리는 Messika.


니트 후디는 Leha. 프린트 티셔츠는 Enfants Riches Deprimes. 쇼츠는 ych. 허리에 묶은 니트 톱은 pushbutton. 반지는 모두 Messika. 슈즈는 Adidas.


공효진

하퍼스 바자 가장 먼저 섭외 제안을 받았다던데요. 흔쾌히 수락했나요?

공효진 손을 안 댄 시나리오를 먼저 봤는데, 번역극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안 합니다” 그랬죠.(웃음) 원작에선 탱고도 춰야 했고요. 몇 번 고사하다가 같이 살을 붙이고 키워가면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어요.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유머 코드가 잘 맞기도 하고, 제가 아는 하정우라는 사람은 억지로 웃기려는 요소를 넣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영화가 산으로 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하퍼스 바자 네 배우가 집처럼 만든 세트 안에서 5주간 매일 만나는 경험은 어땠어요?

공효진 처음엔 ‘5주 만에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나?’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촬영 강도가 높을 줄 몰랐죠.(웃음) 해가 뜨기 전 집에서 나와 해가지면 세트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나뉘는 신이 거의 없어서 넷이서 하루종일 떠들어야 했죠. 한 장소에서 쉼 없이 대사를 주고받다 보니 혈액순환을 돕는 디바이스를 돌려 써가면서 촬영했어요.

하퍼스 바자 감독으로서 하정우 씨를 겪어보니 어떻던가요?

공효진〈러브픽션〉을 찍고 난 뒤 어느 모임 자리에서 오빠가 “효진이는 대본을 빨리 외우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한 적이 있거든요. 저는 임기응변에는 강한 편이지만 대사 그대로 완벽하게 숙지하는 편은 아니에요. “네” 하고 받아들였지만, 속으로 ‘내가 대사로 오빠를 애먹였나’ 염려스러웠죠. 이번에 촬영을 시작할 때 그때 기억이 안 나냐고 놀렸는데 “그랬나?” 하더라고요.(웃음)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아진 연기를 ‘보여줘야지’ 싶은 포부가 꽤 컸어요. 나중에 편집을 할 때 제가 많은 걸 담으려 노력해줘서 행복하게 편집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그 이상의 칭찬은 없겠다 싶었어요. 현장에서는 “다시는 안 해!” 하며 끝냈지만 감독과 배우는 그런 관계 같아요. 서로 나이스하면 고만고만해지지만 어느 정도 괴롭혀줘야 좋은 결과가 나오고, 되게 투철하게 열심을 다하게 되는 거죠.

하퍼스 바자 정아는 여태껏 맡은 여성 캐릭터 중 꽤 수동적인 인물처럼 보여요. 정아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공효진 그동안 ‘저 힘든 상황을 어떻게 저렇게 이겨내지?’ 하는 캔디 같은 인물들을 많이 맡았죠. 그런데 이번엔 진짜 현실적이죠. 정아는 현대사회에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일원처럼 보이려는 강박이 있는 여자인 것 같아요. 원만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 여자라 밖으로는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그 강박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죠. 방금까지 남편과 싸워도 손님이 오면 “여보 인사드려” 이러면서 싸우지 않은 척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옆집을 만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포장하고.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윗집, 아랫집 사람들이 저렇게 터놓고 말할 수 있나?’ 싶은 의문이 들었어요. 원작에선 개방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대화가 관객의 정서에 맞을까, 대화의 수위가 높으니 사람들이 “웬 해괴망측한 대화야” 생각할 것 같았거든요. 정아는 가장 관객의 입장과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죠.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도 정아처럼 윗집 사람들의 말에 호기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관객이 묻고 싶은 디테일을 묻죠. “처음은 어떻게 시작하세요? 멤버는 어디서 구하시나요?” 그 호기심을 대변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하퍼스 바자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가지 착장만을 입은 적도 처음이죠.

공효진 대학 강사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만큼 정아가 인테리어를 꾸민 집 안을 보면 색이 무척 많고 화려하잖아요. 내면에서는 불꽃놀이가 일어나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척, 무채색인 척 노력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올 화이트 룩을 입었지만 핏은 요즘에 맞춰 신경을 썼죠.(웃음)

하퍼스 바자 촬영하는 동안 가장 각인된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공효진 첫 촬영이 기억나요. 넷이 주고받는 앙상블을 손꼽아 기다렸거든요. 동욱 씨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지만 평소 연기하는 결이 비슷한 배우라 생각했어요. 첫 촬영 때 대사는 없이 계속 눈짓으로 ‘이 사람들 어떡하지. 여보, 뭐라고 하는지 들었어?’ ‘나 못 들은 척하고 있어’ 그렇게 주고받는 신이 있는데, 서로 어떤 신호를 보내고 반응하고 이어갈지 기대됐거든요. 역시나 동욱 씨가 너무 웃기더라고요. 네 배우가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들어간 현장이지만 진짜 재미있었어요. 부산영화제에선 김 선생이 반응이 좋았죠. 해외 영화제에선 남편 현수 역할이 나오면 관객들이 빵빵 터진대요. 들뜨지 않으려 하지만, 관객분들도 재미있게 봐 주신다면 바랄 게 없어요.

하퍼스 바자 〈윗집 사람들〉과 함께 연말을 맞이한 지금, 배우 공효진에게 올 한해는 어떤 해였나요?

공효진 올해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변화가 많은 해였어요. 남편의 제대가 있었고, 코로나를 제외하곤 처음으로 예정된 작품 없이 온전하게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졌죠.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이었어요. 쉬는 게 꽤 복잡한 감정을 만들더라고요. 25년 동안 계속 일하며,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한두 달 정도씩 쉬는 루틴을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었거든요. 그게 제게 잘 맞는 코어적인 루틴이더라구요.(웃음) 재충전을 발판 삼아 다시 시작하려고요.


티셔츠는 Dolce & Gabbana. 목걸이는 Chrome Hearts. 검지에 착용한 반지는 Rocking Ag. 약지에 착용한 반지는 Diesel.


김동욱

하퍼스 바자 〈윗집 사람들〉 촬영장은 동욱 씨를 간만에 막내로 만든 현장이었겠어요.

김동욱 나이만 놓고 보면 하늬랑 동갑이지만 그냥 막내라고 생각하자, 했죠.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웃음) 효진이 누나랑은 첫 작품인데 정우 형, 하늬와는 이미 작품을 여럿 했었어서 내내 편하고 즐거운 현장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배우 하정우와는 영화 〈신과 함께〉 〈하이재킹〉에서 합을 맞춘 적이 있지만, 감독 하정우와 함께 작업한 건 처음이죠. 두 사람은 달랐나요?

김동욱 낯선 순간은 분명 있었어요. 연기하다 갑자기 혼자 “컷!” 하고 모니터를 보러 갈 때요. 극 초반에 둘이 마주 앉아 있는 신이 아주 많거든요. 눈을 마주치면서 집중해서 연기하고 있는데 컷을 외치면 괜히 내 연기가 이상했던 것 같잖아요.(웃음) 사실 〈윗집 사람들〉 전에 형이 연출했던 다른 작품에도 함께할 뻔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서 기회를 놓쳤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연락을 받았을 때는 꼭 같이 하고 싶다고 했어요.

하퍼스 바자 출연 제의를 받을 당시엔 거의 각색되지 않은 원작 대본 그대로를 받아 봤을 텐데요.

김동욱 맞아요. 각색 전, 얼추 번역까지만 된 대본이었어요. 원작은 감정이나 갈등, 유머가 크지 않았어요. 강렬한 임팩트가 있기보다는 잔잔한 스타일. 내심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은 지키되, 한국 정서에 맞게 캐릭터의 감정이나 갈등을 키우는, 더 다이내믹한 무언가가 더해지면 좋겠다 싶었죠. 이후 각색된 대본을 받아봤을 땐 많은 게 달랐어요. 하정우식 유머가 가미되면서 비로소 완성이 된 거죠. 저희는 진짜 솔직히 우리 감독님이 각색한 대본이 훨씬 좋다고 해요.

하퍼스 바자 이 영화의 장르를 두고 섹스코미디부터 실내소동극, 휴먼드라마까지 의견이 분분하던데요. 연기를 한 배우로서는 〈윗집 사람들〉을 어떤 영화라 말하고 싶어요?

김동욱 분명한 건 단순한 성인물, 코미디라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예요. 이 영화가 담아낸 건 누구나 겪고 있을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막상 꺼내 놓기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해볼 수도 있겠죠. 저는 〈윗집 사람들〉이 그런 물꼬를 터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셨으면 좋겠고요.

하퍼스 바자 동욱 씨가 연기한 아랫집 현수는 영화의 갈등을 촉발하는 가장 예민하고 감정적인 인물이에요. 현수를 만들어갈 때, 하정우 씨의 어떤 디렉팅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나요?

김동욱 정우 형이 가끔씩 현수를 연기할 때 보면 놀랄 때가 있었어요. 호흡과 템포 모든 면에서 제가 해석한 것과 많이 달라서요. 단순히 텍스트를 두고 같이 분석하고 고민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되더라고요. 형은 감독이기 전에 배우이기도 하니까, 연기를 하는 사람의 조언이기도 한 거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제가 했던 작품 중에서 감독님의 코멘트를 가장 충실히 따르는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현수의 외양은 물론, 특정 신 안에서의 드러내야 할 감정의 크기와 감정이 증폭되는 속도까지. 모든 것을요. 저는 이 대본을 가장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하정우 감독이라는 아주 확실한 믿음이 있었어요.

하퍼스 바자 2년 전 〈바자〉와 만났을 때 밝고 경쾌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코미디에 대한 욕심을 비췄었죠. 사실 동욱 씨가 연기를 해온 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면 코미디 연기에 대한 애정이 식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일찍이 2007년에는 일일시트콤 〈못 말리는 결혼〉이 있었고, 10년 전 영화 〈쓰리 섬머 나잇〉, 대상을 안겨준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작년에 방영한 〈강매강〉도 있었죠. 이 장르에 유독 애착이 가는 이유는 뭘까요?

김동욱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누군가를 웃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이에요. 대학 다닐 때, 우연히 연출하던 아는 형님의 제안으로 코미디 연극을 한 편 올렸는데 엄청 칭찬을 받았어요. 연기에 자신감을 붙게 해준 고마운 경험이죠. 코미디는 연기하는 사람이 쉽게, 가볍게 접근하는 순간 그 매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일단 웃기지가 않을 걸요. 더 고민하고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어야 해요. 그 작품 준비할 때도 그랬어요.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해보면서 고민했던 시간이 저를 유연하게 만들어줬어요. 그렇게 코미디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극중 이하늬 씨가 연기한 수경은 “인생은 정말 재밌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상하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뻔한 말이 가장 오래 맴돌았어요. 원초적인 욕망과 호기심에 충실한, 재미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삶을 진실하게 살아본 적이 있던가 자문하게 됐고요. 동욱 씨에게는 이 영화가 무엇을 남긴 것 같나요?

김동욱 영화 안에서 정아와 현수는 자신들을 평범하다고 여겨요. 그들의 눈에는 김 선생과 수경이 어디 외계에서 떨어진 것 같은 독특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대화가 오갈수록 이상한 사람들로 여겼던 윗집 사람들로부터 ‘왜 그렇게 사느냐’는 눈초리를 받아요. 그리고 점점 자각하죠. ‘아, 우리에게 문제가 많구나.’ 지극히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는 거예요. 영화가 말하는 것도 같다고 생각해요. 당신들이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과연 정말 이상한 사람들인가? 누가 더 행복한 사람들인가? 당신들에게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영화 같아요.

하퍼스 바자 같은 질문을 해볼게요. 동욱 씨에게는 요즘 아무 문제가 없나요?

김동욱 없다고 자신할 순 없겠네요. 늘 안정을 우선으로 추구하는 스타일이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한 일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막연히 나에게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지금 저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 큰 자극은 이 영화예요. 12월 3일에 개봉하니 내년까지 쭉 극장에 걸려 있었으면 좋겠네요.


티셔츠는 Noah. 팬츠는 Record. 목걸이, 반지는 Sally sohn. 슈즈는 Hogan.


하정우

하퍼스 바자 스페인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 〈윗집 사람들〉로 네 번째 장편 연출작을 개봉하게 되었어요. 영화는 각 방을 쓸 만큼 서로에게 무심한 커플과 밤마다 층간 소음을 일으킬 만큼 뜨거운 커플이 만나 선을 넘나드는 상황을 다루죠. 작품을 각색할 때 가장 고심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하정우 원작은 슴슴하고 담백해요. 간을 일부러 안 한 곰탕 같은 느낌. 구수함이 살아 있죠. 그래서 표현해볼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한국식으로 바꾸기보단 인물이나 행동을 한 발짝 더 나아가봐도 되겠다, 싶었죠. 원작에는 음악 사용도 거의 없고 아크로 요가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장면도 없어요. ‘극화’시키는 작업에 중점을 뒀죠. 한 공간에서 쭉 촬영되기 때문에, 감정이나 대화 주제에 따라 챕터를 나눠 환기시키려 했고요.

하퍼스 바자 배우로서는 수경 역을 맡은 이하늬씨와 함께 윗집 부부 중 남편인 김 선생 역을 맡았죠. 영화는 아랫집 부부 정아(공효진)와 현수(김동욱)의 초대로 합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두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대화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왜 이 세 배우들이어야 했나요?

하정우 영화가 어떤 측면에선 비현실적인 부분을 지녔기에,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관객에게 거부감 없이, 러블리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배우들을 떠올렸어요. 자기만의 캐릭터가 확실하면서도, 어떤 행동이나 대사를 해도 관객이 받아줄 수 있게끔 만드는 게 중요했죠. 제일 먼저 효진이를 떠올렸고, 동욱이를 캐스팅했어요. 수경 역은 마지막까지 연령대를 고민하다가 하늬가 최종적으로 승선하게 됐죠.

하퍼스 바자 이하늬 씨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지만, 다른 두 배우와는 함께 호흡을 맞춘 적이 있죠. 공효진 씨와는 10여 년 전 〈러브픽션〉 이후 재회했고요. 감독으로서 배우들을 만난 경험은 어땠나요?

하정우 연출자의 입장에서 세 사람의 연기를 보니 감동적인 부분이 있었어요. 제 상상으로 만든 캐릭터들에 영혼을 불어넣어준 것 같았고요. 효진이는 후반 작업에서 편집이 어려울 만큼 모든 테이크에서 예측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줬어요. 20년이 넘는 경력을 지닌 배우가 어떻게 그렇게 원석 그대로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웠죠. 동욱이는 최고의 테크니션.(웃음) 동욱이가 맡은 영화감독 현수는 2008년 함께 〈국가대표〉를 촬영할 당시 흥철 역할에 뿌리를 둔 캐릭터예요. 심통 부리면서 할 말 다 하고, 심드렁하지만 그 안에 귀여움과 헐렁함이 있고. 그걸 맞춤옷처럼 표현했죠. 하늬가 대사를 하면 전 너무 웃겨요. 천연덕스럽게 엄청나게 센 대사들을 하는데, 그렇게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김혜자 선생님을 제외하곤 이하늬밖에 없지 않을까.(웃음)

하퍼스 바자 “자연은 경쟁은 하되 독점은 하지 않습니다.” 커플 간의 성생활이란 화두를 두고 시종일관 하정우식 유머가 스민 대사들이 오가죠.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요?

하정우 대화 주제에 허무맹랑하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기에 대사를 새로 쓸 때 자유로운 부분이 있었죠. 그렇지만 나름의 격식을 갖춘, 초면인 사람들이 처음 식사하는 자리가 주는 제한선이 존재하고요. 그 제한을 둔 상황이 농담 섞인 대사를 할 때 더 긴장감을 부여해요. 후반부에서 정아가 현수에게 “당신의 유머 감각으로 이 상황을 그냥 좀 넘기면 안 돼?”냐고 묻는데, 현수는 원래 끊임없이 농담을 하며 사안을 비틀고, 꼬고, 벗어나는 인물이거든요. 티키타카, 각 캐릭터가 맞받아치며 이어가는 상황에 중점을 뒀죠.

하퍼스 바자 10명의 배우가 출연한 〈로비〉를 촬영할 당시, 자연스러운 말의 뉘앙스와 대화의 호흡을 살리기 위해 타이트한 리딩 연습을 진행했다고 밝혔죠. 대사량이 많은 이번 영화에서도 동일했나요?

하정우 그 2배를 했고, 미친 듯이 리딩을 한 것 같아요.(웃음) 세 배우가 스케줄이 바쁘기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죠. 리딩 대역을 뽑아 매일 아침 9시부터 수차례 읽으며 시나리오를 고쳤고, 배우들도 매주 몇 차례 참여해 템포를 맞춰갔어요. 촬영은 5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찍었는데, 연출자로선 컷을 많이 확보해야 하니 완벽히 세팅하고 준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전날까지 촬영 스태프들과 동선을 계속 맞춰보고 회차 날은 계획대로 찍기만 하면 됐는데, 쉽지 않았어요. 넷이서 쉬는 날 없이 하루 종일 엄청난 대사량을 해야 하니 에너지 소모가 엄청 났죠.

하퍼스 바자 부조리극이나 블랙 코미디 장르에 대한 애정을 밝혀왔죠. 이번 신작에서도 그런 요소가 묻어나고요.

하정우 제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러한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무렵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에 참여했는데 지금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거든요. 모든 인간은 정말 다면체적라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전 일관성이란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모두가 분명 숨겨진 이면이 있죠. 삶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요.

하퍼스 바자 수차례 받은 질문이겠지만 후련히 듣고 싶어요. 배우와 감독을 병행하는 일이 인간 하정우의 삶엔 어떤 의미인가요?

하정우 그냥… 할 만해요.(웃음) 아무래도 채플린의 영향이 커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찰리 채플린의 영화롤 보고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거든요. 단지 ‘배우를 할 거야’가 아니라 저렇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기에 연출과 배우를 같이 하게 된 건 제게 시기와 기회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2007년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를 찍을 때 제 마음가짐은 더 늦으면 안 되고 딱 그때 시작을 해야한다고 느꼈거든요. 아무리 저예산이든 찍고 싶었고, 두 번째 〈허삼관〉을 찍었을 때는 조직적인 시스템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요. 올 초 〈로비〉 개봉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린 건, 감독으로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사이에 시나리오 개발은 계속했지만. 그 답을 100% 내릴 수 없다고 여겼기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번 영화에 도전한 거고요. 표면적으로 어떤 걸 이루고 싶다는 바람은 없어요. 그저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죠.

하퍼스 바자 올해 10년 만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이게 됐죠. 올 한 해는 어떤 해로 기억될까요?

하정우 후반 작업을 할 때 음악감독님이 좋은 곡을 주셔서 기분 좋게 편집실에 가던 기억이 나요. 같이 좋은 방향으로 회의하면서 나아가는 걸 보면 또 신나고. 여름부터는 오랜만에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을 촬영하고 있어요. 영화 현장에 있다가 드라마 촬영장에 가니 분량도 많고 시간에 쫓기지만 또 그만의 재미가 있고요. 임필성 감독님과 매일 ‘하루하루 도장 잘 깼다’고 하며 파이팅을 나눠요.

하퍼스 바자 관객들에게 〈윗집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어떤 이야기로 남길 바라나요?

하정우 관계의 회복이 아닐까, 싶어요. 부부든 가족이든,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고 살면 무뎌지기 마련이잖아요. 효진이가 맡은 정아의 대사 중 “우리가 부부라고 해서 넌 날 비난할 권리가 없어”라는 대사가 있어요. 동욱이가 맡은 현수는 끝까지 자기 스탠스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걸 무너뜨리는 건 결국 정아의 솔직한 이야기예요. 뜬금없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서로의 밑바닥을 보고 진정한 관계를 이루게 되죠. 얌전하게, 착하게 끝내고 싶진 않았어요. 그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치 냄새처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죠. 감정과 뉘앙스로 채워지는 부분을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티셔츠는 Enfants Riches Deprimes. 쇼츠는 Prada. 목걸이, 반지는 Messika.


이하늬

하퍼스 바자 처음 〈윗집 사람들〉의 캐스팅 제안을 받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이하늬 모든 게 다 고정되어 있는 세트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건 네 명의 인간들뿐이잖아요. 그들의 말, 아주 엉뚱한 각양각색의 색깔들이 너무 좋았어요. 함께 하고 싶었지만 찍고 있던 작품이 있어 고민이 되었죠. 그때 효진 언니가 “같이 하자”며 중간에서 프로듀서 역할을 해줬어요. 아무리 친해도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드무니까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퍼스 바자 〈밤에 피는 꽃〉 〈애마〉 등 전작들은 시대극이 많았기에 오랜만에 일상적인 모습이 낯설었죠. 네 배우가 함께한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이하늬 매일 친구들과 놀러가듯 갔어요. 현장은 어쩔 수 없이 치열할 수밖에 없잖아요. 정말 타이트했지만 중간중간 계속 웃을 수 있는 건 역시 같이 하는 사람 덕이죠. 하정우 선배님이 슛이 끝나면 항상 음악을 틀어주셨는데, 모니터 뒤에서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랬죠. 어제 단톡방에서 다시 보니 진짜 가관인 거예요.(웃음) 우리 참 재미있게 작업했구나,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겠다 싶었어요.

하퍼스 바자 숨 쉴 틈이 없을 정도로 대사량이 많은 신들이 이어지죠.

이하늬 다들 선수들이니까 테이크를 갈 때마다 툭 던지고 받는 뉘앙스, 톤, 속도가 다 달라지는 거예요. 세 배우들의 말맛이 살아 있는 연기를 보는 것도 즐거웠고요.

하퍼스 바자〈애마〉에서 희란이 ‘인간 미장센’으로 존재했다고 말한 적 있죠. 이번 영화에서 수경은 넷의 관계에 큰 축을 담당하는 정신적 지주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런 동요 없이 발칙한 대사를 가장 많이 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이하늬 직업과 학력의 권위 때문에 그 여인의 아주 이상한 부분이 묻혀 있지만, 의외성이 계속 나오는 인물이죠. 연기하면서 수경이라는 캐릭터가 그냥 그 자체로 궁금해지고, 너무 재밌겠다 싶었어요. 권위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신용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니 딕션이나 눈빛, 뉘앙스를 명료하게 표현했죠. 하지만 담는 말의 내용은 저속하게.(웃음) “사람인데 너도 한번쯤 생각해본 적 있잖아. 아니야?”라고 되물으면서.

하퍼스 바자 수경은 집요하게 아랫집 부부의 관계를 해부하는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 선생을 누를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죠.

이하늬 다른 사람들 앞에선 조심하지만 사실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너무 많은 여자예요.(웃음) 예를 들어 남편이 “나 똥 마려” 하면 “그냥 싸” 하잖아요. 원래 대사에는 “바지에 묻히지 말고”까지 있었거든요. 둘은 재혼 부부이기에 허물을 감내할 때 의연한 부분이 있을 거라 여겼죠. 김 선생이 비호감 캐릭터가 되지 않도록 톤 조절을 하는 데 애썼던 것 같아요. 남의 집에서 석류를 짖이기고 뭉개는, 어찌 보면 변태적인 행동을 해도 와이프는 너무 좋아하잖아요. 톤을 올리기도 누르기도 하면서 둘의 하모니를 맞춰갔죠.

하퍼스 바자 말씀대로 저속하면서도 우아한 수경을 표현하기 위해 모티프 삼거나 영향받은 것들이 있다면요?

이하늬 매일 부딪히는 사이에서 조심해야 될 것 같은 말들을 오히려 캐주얼하게 툭 뱉었을 때,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살면서 경험한 그런 상황들을 떠올렸죠. 말의 온도가 엄청 중요한 작품이니까요. 저는 수경이나 김 선생이 마치 천사 같다고 감독님께 얘기하기도 했어요. 내려와서 계시를 주고, 아랫집 사람들의 관계를 환기시킨 다음에 홀연히 사라지는.

하퍼스 바자 이 영화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오직 서로만이 알 수 있는 커플의 관계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윗집 사람들〉이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로 남았으면 하나요?

이하늬 결혼을 해보니 부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한다는 건 군불 지피듯 노력을 요하는 중요한 문제 같아요. 이 영화는 마치 충격 요법처럼 탕! 하고 삶에 나타난 사건이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이야기죠. 방식이 좀 변태적이긴 하지만요.(웃음) TV 전원이든, 휴대폰 버그든 전원을 한번 꺼줘야 업데이트 될 때가 있잖아요. 어떤 관계든, 내 상태가 한번쯤 완전히 무너지고 셧다운한 뒤에야 회복이 되는 때가 있듯이요.

하퍼스 바자 연기 이외에, 요즘 인간 이하늬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이하늬 사람을 낳았어요.(웃음) 〈윗집 사람들〉 촬영 초기 둘째 임신을 알았고, 촬영이 끝난 이후 다른 작품에 들어가 30주까지 촬영을 마친 다음 〈애마〉 제작보고회를 마치고 나서 아이를 낳았죠. 올해는 꽉 채워서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을 다했어요. 첫째 때는 빨리 회복해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몸을 쓰는 직업이다 보니, 여배우로서 얼른 건강히 회복해 복귀하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둘째는 다르더라고요.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제 안에 여유를 가져가려 해요. 전 그동안 끊임없이 내 역치를 높이고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로 살아왔거든요. 부단히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이들에겐 제가 이미 대체 불가능한 존재인 거예요. 제가 별달리 노력한 것도 없는데, 이모도, 아빠도 그 누구도 안 되고 엄마만이 가능한 것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그러기 위해 내려놓는 것들도 생기지만, 달라진 제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스스로 바뀌었다는 걸 관조적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하정우가 착용한 코트는 Kenzo. 탱크톱은 Recto. 이하늬가 착용한 니트 톱, 팬츠는 Tom Ford. 귀고리는 Messika. 슈즈는 Jimmy Choo. 김동욱이 착용한 셔츠, 니트 베스트, 팬츠는 모두 Fendi. 양말, 슈즈는 Maison Margiela. 공효진이 착용한 퍼 재킷, 슬리브리스, 스커트는 모두 Chloé. 귀고리는 Messika. 부츠는 Cue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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