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더욱 빈번하고 심각해지는 녹조 현상이 단순한 수질 문제를 넘어 호흡을 통한 건강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강이나 하천 주변에서 공기 중으로 흩뿌려지는 미세 물방울이 우리 몸속으로 유해 독소를 운반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박은정 교수 연구팀은 녹조의 원인 물질인 남조류가 생성하는 강력한 독소 '마이크로시스틴'이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흡입될 경우 그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 최초의 안전 노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26일 밝혔다.
기존에는 녹조 독소가 오염된 식수를 통해 들어올 때의 위험성과 안전 기준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연구팀은 녹조 발생 시 물안개 형태인 에어로졸과 함께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마이크로시스틴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동물(마우스)의 코를 통해 마이크로시스틴을 흡입시킨 결과, 독소는 코 안쪽 점막을 쉽게 통과해 몸속으로 침투했다. 더욱이 한 번 투여 후 7일이 지나도 간에서 독소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확인되며, 호흡기로 들어온 독소가 간까지 이동해 직접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해냈다.
반복 노출 실험에서는 더 뚜렷한 위험이 관찰됐다. 주 1회씩 4주 동안 독소를 흡입시킨 결과, 높은 양에 노출된 실험동물에서 죽는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암컷이 수컷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죽은 동물의 폐에는 큰 손상이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간에 혈액이 고이는 간울혈이 관찰되는 등 예상치 못한 장기 손상이 드러났다.
연구팀은 "숨을 통해 들어온 마이크로시스틴이 간으로 이동해 간세포의 내부 구조와 지방 대사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등 간에 해로운 영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마이크로시스틴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안전 기준을 제안했다. 호흡기 흡입에 의한 단번에 노출되는 위험 농도를 몸무게 1kg당 150마이크로그램 이하로 설정했으며, 숨을 통한 흡입을 포함해 음식물·마실 물 등 모든 경로를 통한 마이크로시스틴의 하루 총 노출 허용량을 10마이크로그램 미만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박은정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예상치 못한 국민 건강 피해가 녹조 독소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도 환경 유해인자가 증가할 수 있으므로, 이번 연구 결과가 미리 예방하는 관리 체계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환경 속 유해인자에 대한 흡입 독성 평가와 안전 관리 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 그 의미가 크다. 특히 녹조 발생이 잦은 지역 주민들의 건강 보호를 위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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