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미쉐린 스타 탄생 현장 단독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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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미쉐린 스타 탄생 현장 단독 취재

에스콰이어 2025-11-27 00:00:00 신고

남자는 여자에게 곧장 달려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몇몇 사람은 그녀를 따라 함께 눈물을 훔쳤다. 이윽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치 축구팀을 응원하듯 ‘헬름(Helm)’을 외쳤다. 필리핀 최초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대 위에 선 헬름의 셰프 ‘조시 바우트우드’는 비벤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이렇게 말했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되는 건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팀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겁니다.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 10월 30일, 필리핀 마닐라 메리어트 호텔에서 ‘미쉐린 가이드 마닐라 및 인근 지역 & 세부 2026’이 열렸다. 이는 필리핀이 처음으로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는 자리였다. 2스타를 받은 헬름을 비롯해 1스타 8곳, 빕구르망 25곳, 셀렉티드 74곳까지 총 108개의 레스토랑이 선정됐다. 행사에 참여한 크리스티나 프라스코 필리핀 관광부 장관은 ‘미식 투어리즘’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미쉐린 가이드의 필리핀 진출은 단순한 미식 행사가 아니라 필리핀이 가진 창의성, 정체성, 지역의 다양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국제적 도약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지역경제 및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미쉐린 스타의 파인 다이닝 애피타이저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미쉐린 스타의 파인 다이닝 애피타이저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크리스티나 장관이 미식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2024년 필리핀 관광 수익이 역대 최고액인 약 7600억 페소(약 17조원)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최고 기록이었던 6000억 페소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또한 필리핀 관광부의 발표에 따르면 필리핀을 찾은 관광객들의 지출 중 음식 및 음료 서비스가 17.1%를 차지하며, 국민 중 약 675만 명이 식음료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다. 즉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기 위해선 미식 문화 강화가 필요한 것이다. 미쉐린 행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26 UN 세계 미식 관광 포럼’의 개최지가 필리핀으로 결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미식 시장에서 필리핀 음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가까운 일본, 한국, 중국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그렇죠.” 필리핀 현지식을 모던하게 재해석하는 ‘마남 앳 더 트라이앵글’ 마이타 매니저의 말이다. 참고로 마남 앳 더 트라이앵글은 이번 미쉐린 시상식에서 빕구르망에 선정된 곳이다. “하지만 필리핀은 주변 국가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대표적으로 신맛을 이용한 ‘시니강’이 있죠. 일반적으로 시니강은 망고나 쌀을 이용해 신맛을 내지만, 저희 레스토랑에선 수박으로 신맛을 내는 게 특징입니다.” 시니강 외에도 잘게 간 얼음 위에 우베 아이스크림, 과일, 젤리, 연유 등을 취향대로 올려 비벼 먹는 ‘할로할로’나, 튀긴 면에 소스를 부어 먹는 ‘크리스피 팔라복’이 마남이 내세우는 필리핀 전통 먹거리다.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가보자.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시상식은 미쉐린 그린스타 및 영 셰프상 수여를 비롯해 셀렉티드, 빕구르망, 1스타 그리고 2스타 순으로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슬슬 허기가 질 무렵, 무대 반대편에 준비된 공간에서 칵테일 리셉션이 시작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쉐린의 칵테일 리셉션은 차원이 다르다. 필리핀의 첫 미쉐린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홍콩의 카프리스(3스타), 쿠알라룸프르의 데와칸(2스타) 등 총 7개의 미쉐린 레스토랑이 각자 2~3가지의 핑거푸드를 준비해 참가자들에게 대접했다. 재미있던 광경은 음식을 올려놓는 테이블이 커다란 원형으로 배치되어 사람들이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끊임없이 배를 채웠다는 점이다. 이를 보고 일본에서 온 푸드 저널리스트는 “헤어나올 수 없는 미식의 굴레에 빠져버렸네요”라는 농담을 남겼다.

1898년 생으로 올해 127세인 미쉐린 비벤덤은 어딜 가나 인기다.

1898년 생으로 올해 127세인 미쉐린 비벤덤은 어딜 가나 인기다.

만약 이 기사를 읽고 마닐라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하고 싶어졌다거나 처음 마닐라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카티’와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BGC)’ 위주로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대부분이 위 지역에 위치한다. 공항과 가깝고 글로벌 체인 호텔이 많아 밤늦게 다녀도 비교적 안전한 편에 속한다.

“2개의 별을 받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별을 받기 위해 저희의 스타일을 바꿀 마음은 없습니다.” ‘갤러리 바이 첼레’의 셰프 곤잘레스의 말이다. 그들은 미쉐린 1스타와 함께 ‘그린스타’도 받았는데, 그린스타는 지역 식재료 및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탄소발자국 감소를 위해 노력하는 레스토랑에 부여하는 새로운 등급이다. “현지 식재료를 사용해 필리핀 음식이 지닌 전통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저희가 지난 13년간 지켜온 가치이자 가장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헬름의 셰프가 아내와 수상의 기쁨을 나눈 후 무대에 올라 소감을 이야기할 때 그걸 지켜보는 내 가슴 역시 울컥 뜨거워졌다. 그의 음식을 먹어본 적도, 그와 이야기해본 적도 없었지만 그가 온 힘을 다해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는 게 느껴져서 그렇다. 월평균 소득이 40만원 수준인 곳에서 한 끼에 20만원이 넘는 다이닝을 운영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상에 앞서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 그웬달 뿔레넥은 “약 1년간의 조사를 통해 저희 팀이 발견한 필리핀 퀴진의 특징은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30대 이하의 젊은 셰프들이 대거 활약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이번 기회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필리핀의 미식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는 것 말고도 필리핀에 가야 할 이유가 이렇게 하나 더 늘었다.

필리핀에 가면 방문해야 할 108곳의 레스토랑이 공개됐다.

필리핀에 가면 방문해야 할 108곳의 레스토랑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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