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4일(이하 현지시간) 약 1시간 동안 통화하며 지난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내년 4월 중국을 방문하고,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국빈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중 정상의 '셔틀외교'가 성사된다면 그간 G2 갈등으로 인해 심화됐던 글로벌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 정상의 상호 방문 외에도 양국에서 개최될 G20과 APEC 다자 무대에서 대좌할 경우 총 4차례 만남을 갖게 된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양 정상의 통화 후 미국산 대두 추가 구매에 나섰으며 베선트 재무 장관은 "미국의 대만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하나의 중국' 지지를 시사했다.
다만, 희토류와 대만 문제 등 경제 외교 분야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어 미중 갈등이 전면 완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내년 4월 방중을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내년 한반도 정세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트럼프 "내년 4월 방중…시진핑 미국 국빈 방문" 시진핑 "중미 관계 총체적 안정"
中, 美대두 추가 구매…트럼프 "중국의 대만 문제 중요성 인식"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시진핑 주석과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내년 미중 정상의 '셔틀외교'를 예고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시 주석과 매우 좋은 전화 통화를 했다"며 "시 주석은 내게 내년 4월 베이징 방문을 초청했으며, 난 이를 수락했다. 시 주석은 내년 중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나의 손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도 25일 브리핑에서 "통화 분위기는 긍정적·우호적·건설적이었다"며 "양국 정상은 공동의 관심사에 관해 소통했고, 이는 중미 관계의 안정·발전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힘을 싣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4월 중국을 찾는다면 집권 1기 시절인 2017년 11월 이후 8년여 만의 방중이 된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은 2017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시 주석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다만, 당시 시 주석의 방미는 국빈 자격이 아니었다.
이날 양 정상의 전화 통화는 지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합의 내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통화는 3주일 전 한국에서 있었던 매우 성공적인 회담의 후속"이라며 "그때 이후로 양측은 우리의 합의를 최신이자 정확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이제 우리는 큰 그림에 시선을 둘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러시아, 펜타닐, 대두, 그리고 기타 농산물 등 많은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며 "우리는 우리 위대한 농부들을 위해 좋은, 그리고 매우 중요한 합의를 이뤄냈으며, 이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합성마약 펜타닐 전구물질의 미국 유입 차단에 협조하는 대가로 대중(對中) '펜타닐 관세'를 10%포인트(p) 인하하고, 중국이 미국산 대두 등 농산물을 대량 수입하기로 한 합의를 거듭 강조한 셈이다.
실제로 중국은 양 정상의 통화 후 미국산 대두 3억달러(약 4397억원)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브라질산 대비 미국산 대두 가격이 높은데도 중국이 구매 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날 통화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고 전했다.
레빗 대변인은 통화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가 나오기는 했지만, 주요 초점은 "중국과 논의해온 무역협상, 미중 관계가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레빗 대변인은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농민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이 보여준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그들도 같은 입장"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매우 생산적인 한국에서의 회담 이후 계속 소통을 유지하는 것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도 통화 후 "지난달 우리는 한국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회담을 열어 많은 중요 합의를 달성했고, 중미 관계라는 이 거대한 배가 안정적으로 전진하도록 조정하고 동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세계에 긍정적 신호를 발신했다"며 "부산 회담 이후 중미 관계는 총체적으로 안정·호전됐고 양국과 국제 사회의 환영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아울러 신화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고, 미국은 중국에 있어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미중 정상이 내년 총 4차례 대면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며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함 없다고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CNBC방송에 출연해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시 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을 거론하며 시 주석은 미국에서 개최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개최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각각 참석해 미중 정상의 만남이 내년 한해 최소 4차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래서 1년 동안 이런 네 차례의 회담이 있다면, 그것은 양국 관계에 큰 안정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라며 "안정성은 미국 국민에게도 좋고, 세계 경제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만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우크라이나 분쟁에서의 평화를 추진하고, 이를 위해 협력하는 데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합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시진핑의 '큰그림'…경제·안보 '빅딜' 시도하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통화 사실을 밝히면서 '큰 그림'이라는 표현을 한 것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펜타닐, 대두, 희토류, 반도체 등 서로가 필요한 것을 주고 받은 상황인 만큼 '큰 그림'은 보다 상위의 합의를 모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후 "협력 리스트를 늘리고 문제 리스트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두 정상이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양국의 첨예한 갈등 요소들을 한 테이블에 올려 주고받는 '빅딜'을 도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즉, 인도·태평양 권역을 중심으로 미중의 군사적 긴장감이 커지는 가운데 양측 모두 타격이 불가피한 무력 충돌로 치닫기 전에 '가드레일'(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위한 '평화 프레임워크'를 시 주석과 공유했으며, 시 주석은 이에 "공평하고 항구적이며 구속력 있는 평화 협정이 조기에 체결"되기를 바란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미국과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러시아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두 정상이 '큰 그림'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양측의 극한 갈등이 지속되는 게 국내 정치적으로 결코 이롭지 않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최저 지지율을 경신하고 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참패하면서 당내 그립감도 약화되고 있다. 시 주석 역시 미중 갈등 장기화로 경제 발전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상태다. 실업률 증가, 부동산 경기 침체, 수출 감소 등 경제적 어려움이 사회·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려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트럼프 "김정은 만나러 다시 돌아올 것" 북미정상회담 재추진 전망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4월 중국을 찾는다면 이를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남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APEC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 만남을 추진했으나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서 좌절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떠나면서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의 강한 의지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 회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은 북미 대화 성사에 중국의 역할을 감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1기 북미 협상을 담당한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은 지난 17일 간담회에서 당시 협상 경험에 대해 "우리가 협상하는 상대는 실제로는 시진핑이었다"면서 "궁극적으로 이건 북한이 아니라 중국과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은 이달 초 국정감사에서 김 위원장이 북미 회동을 대비하고 있는 정황을 확인했다며 "내년 3월이 북미 회동과 한반도 정세의 중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내년 3월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조정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아프리카·중동 순방 중 기자간담회에서 "상황에 따라 (한미훈련 조정은 평화 체제 구축의) 결과가 될 수도,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며 훈련 조정 카드를 대북 유인책으로 활용할 여지를 열어뒀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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