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등한 집값을 잡기 위한 정부의 고강도 대출규제가 시행되면서 일부 기업의 직원 대상 대출 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기업은 비용 부담 없이 복지 효과를 누리고 직원은 대출규제·신용영향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다. 특정기업 쏠림 심화와 차별 논란 등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내 집 마련 과정에서 사내대출을 시행하는 기업 소속 직장인과 그렇지 않은 직장인 간에 간극이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특정 기업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강대 대출규제에 '최대 5억' 사내 대출 제도 관심 급증, 기업·근로자 모두 만족
정부의 고강도 대출규제 시행 이후 사내대출 제도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에서 사내대출 제도를 시행 중인 기업 명단과 해당 제도의 대출한도, 금리, 상환조건 등 상세한 정보까지 공유되고 있다. 그 중에는 '파격' 수준으로 평가될 만한 대출제도를 운영하는 기업들도 여럿 포함돼 있다. 일례로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지난 7월부터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한 '5억원 무이자' 대출 제도를 시행 중이다. 기존 3억원에서 대출 한도를 2억원 더 올렸다.
SK그룹, LG그룹, HD현대 등 국내 주요 대기업 계열사들도 내부 지원을 대상으로 대출 제도를 시행 중이다. 대부분 최대한도는 1~1.5억원, 금리는 1.5~2% 사이로 책정하고 있다. 시중은행 평균 대출 금리(약 3.6~4.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중견기업들도 대출 제도 도입에 나서고 있다. 그 중에는 파격적인 수준의 사내 대출 제도를 운영하는 곳들도 있다. 임직원 200명 규모의 인공지능 보안 업체 슈프리마는 직원 1인당 최대 5억원까지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이 사내 대출 제도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는 기업과 직원 모두에게 유익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 입장에선 비용 부담 없이 만족도 높은 복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반 복지 제도의 경우 일정 수준의 비용을 필요로 하지만 대출은 원금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비용이 아닌 기회비용만 부담하면 된다. 무이자가 아닐 경우엔 이자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또 채무 관계를 맺음으로써 직원들의 이직 확률이 낮아지고 그만큼 신규채용 비용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직원 입장에서도 사내 대출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복지로 평가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대출 규제가 강할 때는 만족도가 더욱 높다. 사내 대출의 경우 은행 대출에 적용되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LTV(담보인정비율), 대출한도 등의 규제를 받지 않는데다 신용등급과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반 직장인이 15억원짜리 서울 주택을 매입할 경우 최대 대출한도가 6억원뿐이라 적어도 9억원 가량의 현금이 필요하지만 두나무 직원은 사내 대출로 5억원을 추가로 조달가능하기 때문에 4억원의 현금만 있으면 매수 가능하다.
또 시중은행에서 5억원을 대출 받을 경우 월 150만원 안팎의 이자를 납부해야 하지만 사내 대출이 무이자일 경우 이자 부담이 없다. 사실상 150만원을 버는 효과를 누리는 것과 다름없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 재직 중인 유정수 씨(33·남·가명)는 "사내 대출은 조건만 되면 무조건 빌리는 게 유리하다"며 "은행에 내는 이자를 절감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추가로 월급을 더 받는 것과 다름없어 복지 혜택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사내 대출 둘러싼 형평성 논란 가열…혜택 못 받는 직장인들 박탈감, 근로의욕 저하 토로
그런데 사내 대출 제도가 주목을 받으면서 기존에 없던 논란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사내 대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생겨나면서 등장한 찬·반 논쟁이 대표적이다.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유익한 점을 들어 사내 대출을 적극 찬성한다는 목소리에 맞서 모든 직장인이 혜택이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주택시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드는 제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는 정부 규제에서 특정 회사 직원들만 자유로운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직장인 박준호 씨(35·남·가명)는 "우리 회사는 재계 서열 상위권에 올라 있는데 사내 대출 제도를 따로 시행하진 않고 있다"며 "그래서인지 다른 기업의 사내 대출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내 집 마련 기회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부여돼야 하고 정부 규제 역시 마찬가진데 특정 기업에 다니는 사람만 더 유리하다는 게 불공평한 것 같다"며 "대출 제도가 없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고강도 규제가 시행될 때는 한시적으로라도 어떠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사내 대출 제도가 없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애사심과 근로 의욕 저하, 이직 충동 유발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스닥 상장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하윤서 씨(32·여·가명)는 "요즘 우리 같은 청년 직장인 중에 내 집 마련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며 "가뜩이나 대출까지 막혀서 내 집 마련이 더욱 막막해졌는데 특정 기업 직장인들만 자금을 추가로 더 조달해 집을 산다고 생각하니 나는 그동안 뭐 한건가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사내 대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일 할 의욕도 떨어지고 이직 고민도 하게 된다"며 "아마 나랑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고 성토했다.
전문가들도 사내 대출은 해당 기업과 직장인에겐 유익한 제도라고 인정하면서도 부작용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대적 박탈감 유발과 타 기업의 이직 리스크 확대가 뒤따르는 만큼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내 대출 제도는 개별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인재 확보와 직원 복지 강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기업 간 복지 격차가 주택시장 접근성의 격차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특정 기업에 수요가 과도하게 쏠리고 반대로 사내 대출 제도가 없는 기업은 인재 이탈 위험이 커지는 구조적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 자체를 제한할 필요는 없지만 기업 간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보완이 일부 필요해보인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