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中, 국가가 반도체 산업 육성…메모리 강국 'K반도체'는 규제로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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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中, 국가가 반도체 산업 육성…메모리 강국 'K반도체'는 규제로 막혀

한스경제 2025-11-26 1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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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SK하이닉스 전경./각 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전경./각 사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인공지능(AI) 시대 반도체 패권 경쟁이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의 ‘국가 대항전’으로 격화되는 가운데 반도체 주도국인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 특혜’ 논쟁에 발목이 잡혀 제도 개편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반도체가 국가의 핵심 전략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화되며 각국 정부가 직·간접 투자와 규제 완화에 나서는 사이 한국은 제도·정책 한계로 스스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 美, 인텔 최대주주로 ‘사실상 국유화형’ 지원

미국 정부는 올해 인텔 지분 약 10%를 인수해 단일 최대주주에 오르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 주도형’ 개입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기존 CHIPS법 보조금을 현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분 투자까지 확대해 인텔의 신규 팹 증설과 첨단 공정 전환을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인텔은 이를 기반으로 수백억 달러 규모의 미국 내 설비 투자 계획을 재확인했고 미국 정부는 이사회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대신 주요 안건에서 현 경영진과 보조를 맞추겠다고 선을 그었다. ‘통제’보다는 ‘산업정책 수단으로서의 지분 보유’에 방점이 찍힌 셈이다.

이 같은 인텔 지분 인수는 단순한 구제금융이 아니라 AI 패권을 겨냥한 전략적 투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막대한 보조금·세액공제에 더해 정부가 직접 주주로 들어가는 방식은 중국과의 기술·안보 경쟁 속에서 미국 내 생산기반과 공급망을 묶어두는 ‘친(親)국가형 반도체’ 구도를 강화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인텔 지원과 별개로 엔비디아·AMD 등 팹리스에 대해서도 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수출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식으로 ‘규제+인센티브’ 패키지를 동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를 더 이상 시장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사실상 기술 국유화 전략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 日, 라피더스에 27조+규제 완화 ‘올인’

일본 정부의 행보도 거침이 없다. 일본은 2나노 파운드리 도전을 내건 라피더스에 대해 보조금과 출자, 보증을 합쳐 약 2조9000억 엔(약 27조원) 규모의 공적 지원을 추진 중이다. 단순 설비투자 보조금을 넘어 공장·장비를 공공기관이 소유한 뒤 기업에 장기 임대하고 향후에는 현물 출자를 통해 라피더스 지분까지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정부가 인프라와 자본을 함께 제공하며 사실상 ‘공동 사업자’에 가까운 역할을 자임하는 구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6~2027년 추가 재정 투입을 예고한 동시에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민간 금융기관 대출에 대한 정부 보증을 허용하는 등 규제 완화를 병행하고 있다. 정부가 채무 상환과 이자까지 보증하는 파격 조치로 국채 대신 ‘라피더스 채권’을 떠안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첨단 반도체 생산기반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과도한 ‘올인’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1990년대 이후 실추된 반도체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베팅이라는 점에서 여야 간 큰 이견은 드문 편이다.

◆ 中, 빅펀드 3기 앞세워 ‘반도체 자립’ 사활

중국 역시 ‘빅펀드(Big Fund)’로 불리는 국가 집적회로 산업투자기금을 앞세워 반도체 자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14년 1기, 2019년 2기에 이어 2024년에는 3440억 위안(수십 조원대) 규모의 3기 빅펀드를 출범시키며 파운드리와 장비·소재, HBM 등 AI용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다. 3기까지 누적하면 수십조 원이 넘는 자금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 투입되는 셈이다.

빅펀드는 재정부와 중국개발은행 계열사, 공상은행·건설은행 등 국유 금융기관이 출자해 조성하는 전형적인 ‘국가 산업펀드’다. 이 기금을 통해 중국 정부는 SMIC·YMTC 등 주요 기업뿐 아니라 지방 반도체 클러스터까지 광범위하게 자금을 공급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과거보다 눈에 띄게 높아진 것으로 평가되며 베이징은 2020년대 중반 이후 70% 수준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 이후 정책 방향은 한층 노골적이 됐다. 중국 정부는 국산 AI칩·GPU 설계·제조 기업에 보조금·세제 혜택·정책 금융을 집중하고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 데이터센터에서 외산 AI칩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내수 시장을 자국 반도체 기업의 ‘보호막이자 성장 플랫폼’으로 활용해 기술·생태계를 동시에 키우려는 전략이다. 경제성만 따지면 과투자로 보일 수 있지만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를 안보 자산으로 보는 인식이 정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 ‘국가가 리스크 떠안는’ 美·日·中…韓만 정쟁에 발 묶여

미국·일본·중국의 공통점은 ‘반도체는 국가 안보이자 미래 먹거리’라는 인식 아래 정부가 민간 대신 대규모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인텔과 라피더스, 중국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모두 장기 투자와 막대한 초기 비용 탓에 시장 논리만으로는 투자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운 프로젝트들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지분·보증·보조금·규제 완화를 통해 손실 가능성을 분담하며 민간 자본 유입을 촉진하고 있다. 반도체 지원을 대기업 특혜로 보기보다 ‘공급망과 안보를 위한 국가 인프라 투자’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정부와 산업계가 추진해 온 ‘반도체 특별법’은 세제·보조금·인허가 패키지와 함께 반도체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 금융·규제 유연화 등을 담았지만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 속에 핵심 조항이 잇따라 후퇴했다. 현재 논의 중인 안에서도 반도체 연구인력의 장기간 탄력 근로 허용,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은 ‘장시간 노동 회귀’ 논란에 휘말리며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되고 있다.

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상시적인 초과노동이 아니라 기술 고도화 경쟁이 치열한 특정 프로젝트 기간 동안의 집중 근무를 제도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근로시간 완화를 ‘노동권 후퇴’로 보는 시각이 강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글로벌 경쟁국들은 인력·시간·입지 측면에서 더 유연한 조건을 제시하며 첨단 공정과 대형 투자를 끌어들이는 중이다.

◆ 메모리 초격차 지키려면…‘특혜 vs 전략투자’ 프레임 전환해야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특별법과 52시간제 예외, 금융·세제 인센티브 논의가 ‘대기업 특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한다. 메가 팹 한 곳이 지역 일자리와 장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AI 시대 공급망에서의 국가 위상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 기업 지원이 아니라 ‘국가 인프라 투자’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의 인식이다. 그러나 정치권 논의는 여전히 ‘재벌 지원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파운드리·설비·소재 등에서 두터운 생태계를 가진 한국은 여전히 반도체 강국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제도·정책의 발목이 잡힐 경우 ‘기술은 앞서도 투자·입지는 뒤지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정부 재정을 앞세워 인텔·라피더스에 베팅하고 중국이 빅펀드 3기를 통해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내는 사이, 한국만 정치적 프레임에 묶여 반도체 특별법과 노동·금융 규제 완화를 차일피일 미룬다면 글로벌 반도체 국가 대항전에서 입지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주도국 위상에 걸맞은 결단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지원을 ‘대기업 특혜’로만 볼 것인지 ‘국가 전략투자’로 재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새로 세워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산업 기반이 됐다”며 “정치적 공방을 넘어 골든타임 안에 제도·정책 인프라를 갖추는지가 향후 10년 한국 반도체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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