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암에 걸린 아내와 딸 돌본 과학자 이야기…'우주의 먼지로부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아빠, 그러면 엄마가 나한테서 종양이 옮은 거예요?"
어린 딸아이의 말에 아빠는 "아니 종양은 그런 게 아니야"라고 답하며 손을 꼭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딸이 잠들 때까지 같은 말을 되뇌었다.
딸이 걸린 병은 두개인두종이었다. 뇌 중앙에 있는 뇌하수체 부위에 발생하는 희소암이었다. 미국에 사는 어린이 7천500만명 중 두개인두종을 진단받는 아이는 300명에 불과했다.
딸을 극진히 보살피던 엄마도 잇달아 암에 걸렸다. 난치병으로 알려진 교모세포종으로, 역시 15만명 중 1명이 걸리는 희소암이었다. 1년여만에 모녀에게 희소 종양이 생길 수학적 확률은 대략 1천억분의 3 정도에 불과했다. 미국 듀크대 환경대학원 학장을 지낸 과학자 앨런 타운센드는 운 없게도 1천억분의 3의 남자였다.
최근 출간된 '우주의 먼지로부터'(문학동네)는 운 없는 남자 타운센드가 써 내려간 에세이다. 과학 현장을 발로 뛰며 살았던 저자가 운명의 일격에 비틀대다가 과학적 진리에서 위안을 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우주먼지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존재"이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원소들의 뭉침과 흩어짐을 통해 삶과 죽음을 맞이한다고 저자는 운을 뗀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우주 원자다. 원자들은 잠시 한 몸으로 움직이면서 세상을 감지하고 목격하며 그것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흩어져 저마다 새로운 팀에 잠시 합류하고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초반 원소 이야기는 저자의 곡절 많은 인생사의 '빌드업'에 가깝다. 단란했던 가정은 곧 아이의 두개인두종 진단으로 균열이 생기고, 부부는 미국의 유명하다는 병원은 물론, 독일에서 열리는 두개인두종 학회까지 찾아다니며 최신 치료 정보를 얻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시신경과 큰 혈관 등 위험한 부위에 암이 퍼져있어 완전히 제거하긴 어렵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도 수술은 받아야 했다.
저자의 가문에 찾아온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아이의 엄마 차례였다. 5년 생존율이 5~10%에 불과한 교모세포종에 걸린 것이다. 생물학자인 아이의 엄마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구했고, 삶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암 진단 후에도 쉼 없이 일했고, 매일 러닝도 거르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혹사할 정도로 운동에 집착했다. 딸이 클 때까지 꼭 버티겠다며 신발 끈을 묶고 달리고 또 달렸다. 불행은 끈질기고 독했던 그녀의 성격을 암세포가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암은 공격적이었고, 독하기까지 했다. 수술, 항암, 방사선으로 이어지는 표준치료는 물론, 면역항암제 DNA 맞춤치료도 이겨내며 커져만 갔다.
저자는 녹아내린 애벌레에서 시작되는 나비의 탄생, 화산암에 위태롭게 뿌리 내린 나무의 생존법, 멸종위기에 처한 '미국밤나무'가 다시 싹을 틔우게 된 생명력 등 역경을 딛고 일어선 생명들의 사례를 공부하며 아내의 회복을 기원하지만, 결국 모든 건 끝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과학도, 인생도 "결점과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학과 삶을 포개어 놓는 저자의 솜씨가 매끄럽다. 그 매끄러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고통에서 발원한다. 밑바닥을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과 감성으로 저자는 인생과 과학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과학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밝혀내고, 바꿀 수 없는 것들과 함께하는 법을 알려주는 학문"이며 인생도 그런 과학과 닮아있다고.
송예슬 옮김. 304쪽.
buff27@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