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한국 김 수출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국내 시장에선 정작 ‘마른 김’이 씨가 말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주요 소비국이 앞다퉈 한국산 마른 김을 대량으로 확보하면서, 국내에서 써야 할 원료 수급이 흔들리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마른 김은 구운 김과 조미김, 김 스낵 등 한국 김 산업의 핵심 원료여서 장기적인 산업 구조에 적잖은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민들이 김채취를 하고 있다 / 뉴스1
해양수산부와 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1~9월) 마른 김 수출량은 1만 4874톤으로 같은 기간 1만 4459톤을 기록한 조미김을 사상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머니투데이는 보도했다. 전체 김 수출량이 전년 동기 대비 10%, 조미김이 3%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마른 김은 17.7%나 급증했다. 전 세계적인 김 열풍 속에서 그동안 조미김이 고성장을 이끌어왔으나, 올해는 원료 김인 마른 김의 수출 증가세가 더 가팔라지며 두 제품의 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마른 김 수출 확대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이어져왔다. 2020년 9871톤에서 2021년 1만 2448톤, 2022년 1만 3917톤, 2023년 1만 6844톤, 지난해 1만 5043톤까지 증가하며 매년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이에 따라 조미김과의 수출량 격차도 2020년 5160톤에서 2023년 1755톤까지 빠르게 좁혀졌고, 올해 처음으로 역전됐다.
물김 수매. 자료 사진 / 서천군 제공, 연합뉴스
문제는 이 ‘마른 김 열풍’이 국내 수급 불안과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미김은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되는 마른 김을 원료로 하는데, 해외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내 시장에서 확보해야 할 물량이 턱없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업계는 “원료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며 조미김 가격 인상 불가피론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CJ제일제당, 동원F&B, 광천김, 대천김, 성경식품 등 주요 업체는 지난해 원료 수급 부담을 이유로 김 제품 가격을 10~20% 인상한 바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 마른 김의 수요가 급증하는 배경엔 중국·일본의 생산 감소가 자리한다. 원초 생산을 좌우하는 해양환경 변화와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두 나라의 김 생산량이 줄었고, 이 공백을 한국산 마른 김이 메우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해양수산부 집계 기준 올해 3분기까지(1~9월) 한국산 마른 김 주요 수입국은 중국 약 3400톤, 태국 3300톤, 일본 3100톤, 러시아 1800톤 순이었다. 과거 조미김 중심이던 수출 구조가, 최근엔 원료 김인 마른 김으로 쏠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 김 인기, 수출 증가 / 연합뉴스
여기에 해외로 진출한 한국 식품업체들의 현지 공장에서 사용할 원료 수요도 늘었다. 대상, CJ, 동원 등 국내 업체들이 해외 제조 거점을 늘리면서 한국산 마른 김을 직접 조달해 가공하는 흐름이 강화된 영향이다. 이상민 대상 Seaweed 연구기술팀장은 “국내 업체들의 해외 생산 확대와 중국·일본의 생산 감소가 겹치며 한국산 마른 김 수요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글로벌 김 소비 트렌드가 중국·일본식 ‘김’에서 한국식 조미김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해외 업체가 한국식 조미김 제조 방식을 따라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한국산 마른 김을 적극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른 김 중심의 수출 구조가 지속되면 산업 전체의 부가가치가 낮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마른 김은 가공이 적은 원료 형태라 부가가치가 낮고, 조미김은 구이·조미·포장 등 공정을 거치며 단가가 2~4배 높아지는 고부가 제품이다. 업계는 “장기적으로는 조미김 수출을 육성해 수출 구조를 고부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김을 굽고 있다 / 뉴스1
정부도 부가가치가 높은 조미김 생산을 확대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한국식 김밥·초밥용 김 수요가 늘며 한국산 마른 김 수입국이 크게 늘었다”며 “업체들이 조미김 신제품을 더 쉽게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도록 연구비·개발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 김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배경에는 특유의 조리 방식이 있다. 한국식 김은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 간장·참기름·소금이 더해진 절제된 감칠맛이 특징이다. 철저한 위생 관리와 한 장씩 뜯어 먹는 편의성 덕분에 세계적으로 ‘가벼운 프리미엄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의 식문화 속에서도 김은 도시락과 집밥, 세대를 아우르는 기본 반찬으로 깊이 자리해온 만큼, 한국 대표 식재료로서의 상징성도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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