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상·문지문학상 수록작 담은 '자개장의 용도'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소설 속 세계에서 현실과 환상, 꿈과 실제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세계의 일이지만, 감각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최근 출간된 함윤이(33)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문학과지성사)는 현실을 벗어나 환상의 세계 또는 비현실적인 곳으로 향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표제작은 몇 대째 집안에서 내려오는 자개장의 신비로운 힘으로 원하는 장소에 순간 이동하는 이야기다. '천사들(가제)'은 현실에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친구의 꿈을 꾸다가 깨기를 거듭하는 과정을 그렸다.
'강가/Ganga'는 여공이었던 주인공이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뒤로하고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의 고향 마을로 향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이국의 마을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듯 표현된다.
작가는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현실과 환상은 제 소설에서 대비되는 개념이라기보다 같은 집에 있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방과 같다"고 작품들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제가 10대 때부터 탐닉하던 작품들은 허구성이 굉장히 강하거나 장르 문학이었고,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문학이라도 실제 제 생활과 굉장히 멀어서 허구성이 강한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런 허구의 세계가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줬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현실과 거리가 있는 환상이라거나 실제와 유리된 이야기란 느낌이 아니라 제 안에서 뒤얽힌 것 같다"고 설명했다.
표제작은 안으로 들어간 사람을 원하는 곳으로 옮겨주는 소설 속 자개장처럼 독자를 작가가 만든 세계로 이끈다. 이 신비로운 자개장은 아무리 멀어도 순식간에 데려다주지만, 돌아오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어머니는 처음 딸에게 자개장의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이런 제약을 함께 일러주며 "그래서 자개장에 들어갈 때는 조심해야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후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고 정반대로 조언한다.
작가는 "자개장의 성질이 이야기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그 이후 현실로 복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 어머니의 말과 작가의 말을 종합하면, 여운을 잊지 못할 만큼 먼 곳으로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된 독자만이 소설을 깊이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인천에서 출생한 작가는 어린 시절 귀촌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다. 이 시절 외부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책과 영화에 몰두했고, 10대 때부터 소설을 쓰며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전공 예술사 과정을 졸업한 작가는 적지 않은 신춘문예를 비롯한 공모전, 창작 지원 사업 등에 줄줄이 낙방하며 '여기가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자 오히려 더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됐다.
"여기까지가 끝이든 아니든 저에게 중요한 건 글을 쓰는 것이고 저에게 즐거운 일이라면 계속 쓰자, 아주 소수에게 읽히더라도 계속 작업을 하자고 생각하던 즈음에 결국 등단하게 됐죠."
이렇게 2022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이후 젊은작가상(2023년), 문지문학상(2024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과 문학동네소설상(2025년)을 잇달아 받으며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작가는 "본심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진 소설들도 있었지만, 그것들 모두 저에게 굉장히 소중한 글들이었고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다시피 고친 것들이 결국 인정받게 됐다"고 했다.
젊은작가상을 안긴 단편 '자개장의 용도', 문지문학상 수상작인 '천사들(가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게 해준 '정전' 모두 처음엔 공모전 등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초고를 고쳐 빛을 본 작품이다.
유수 문학상을 거머쥐고 첫 소설집을 펴낸 작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제가 책을 읽으면서 그랬듯이 누군가에게 제 책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문 역할이 된다면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예를 들어 어떤 책에서 영화를 언급하면 그 영화를 보게 되고, 영화에 영감을 준 그림이 있어서 그림을 보게 되고, 이런 식으로 뻗어나가다 보면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제 작품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가지 가운데 하나, 또는 큰 물결을 이루는 일부가 돼서 독자가 즐겁게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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