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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주유소 ‘초과이윤’ 일반주유소는 ‘폐업’ 그늘
25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알뜰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24~25원 저렴한 것으로 분석됐다. 인근 경쟁 주유소의 가격도 리터당 6~8원 내려가는 간접 효과가 관측됐다. 고유가 국면에서 가계 부담을 덜어주고 정유사 위주의 유통 구조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가 사회 전체 후생 증대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정부 예산을 투입해 가격을 낮춘 만큼 정유사·대리점·일반 주유소의 이익이 줄어드는 ‘풍선 효과’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이중 공급단가 구조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알뜰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60~100원 저렴한 가격에 석유제품을 공급받는다. 실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할인 폭(약 25원)을 제외한 35~75원은 사업자 측 초과이윤으로 남는다. 특정 사업자에게 이익이 몰리는 구조가 공공기관 주도 정책 아래에서 사실상 굳어졌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이중 가격 체계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역·소득별 형평성 논란도 커지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의 알뜰주유소 비중은 3~7%에 그치는 반면, 지방은 15~20%까지 높아 지역 간 편차가 크다. 연료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소득층일수록 할인 혜택을 더 많이 누리는 역진성도 문제로 꼽힌다. 서민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도입된 제도가 실제로는 특정 지역·계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체 시장 경쟁력 약화도 우려된다. 시장연구에 따르면 알뜰주유소 반경 2km 이내에 있는 일반 주유소의 퇴출 위험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약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 초기에는 인근 주유소들이 가격을 따라 내리면서 경쟁이 촉발되지만, 5~6년이 지나면 가격 인하 효과는 사라지고 주변 일반 주유소만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진 압박이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안전시설 투자와 서비스 관리 여력이 떨어지면 유통 인프라 전반의 품질 저하도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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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기’ 투자 여력 줄어드는 정유업계
정유업계의 투자 여력 위축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정유사 영업이익률은 0.1∼2.5%, 주유소는 1.5~2% 수준으로 일반 소매업(3~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석유제품 수요가 2030년 이후 급감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친환경 규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수송용 연료는 연평균 2.5% 감소해 2024년 대비 약 4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전환기를 맞아 지속가능항공유(SAF), 바이오연료, 수소 등 미래 사업 전환을 추진해야 할 정유업계의 투자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 산업은 화석연료 중심에서 전기·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며 “주유소는 단순히 기름을 넣는 곳이 아니라 전기차를 충전하고 수소를 공급하며 친환경 유통 구조의 거점이 되는 ‘에너지 종합 판매회사’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유럽 사례를 언급하며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멀티숍을 허용해 국민 편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유통 모델을 바꿔야 한다”며 “단순히 석유제품만 팔아서는 알뜰주유소든 일반 주유소든 모두 생존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책 해법으로는 민간 중심 자율경쟁 체계로의 점진적 전환이 꼽힌다. 우선 알뜰주유소의 저가 공급·가격 할인 의무를 단계적으로 폐지해 정유사 이중 공급단가 구조를 완화하고, 석유공사에 부여된 인센티브도 줄여 전환기에 주유소 지원기금으로 돌리자는 제안이다. 물가 대응 수단으로는 특정 유통 채널을 통한 사실상 상시 할인 대신, 유류세 탄력 운용을 활용해 국제유가 급등기에 한시적으로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이다.
구조조정과 친환경 전환을 연계한 알뜰주유소의 질서 있는 퇴출도 요구된다. 조 교수는 “한계 주유소의 폐업 비용 부담을 완화해 환경 복구를 전제로 한 퇴출을 유도하고 기존 주유소가 전기·수소 복합충전소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을 지속하는 일이 없도록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알뜰주유소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에너지 유통 전반의 구조개편 논의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은 최소화하고 가격 담합과 불공정 행위를 감시·제재하는 ‘시장 감시자’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에너지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은 포퓰리즘이 아닌 리얼리즘에 기반해야 한다”며 “현재 알뜰주유소 문제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유통 생태계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종합적 에너지 판매시장 구조개편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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