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협상 팩트시트 발표 이후 한미 통상 환경은 한층 선명해졌다. 미국이 제조·첨단기술·공급망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제시한 보조금과 규제 개편은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전략에 가깝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이 유독 미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수 포화, 인력 불균형, 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 미국은 새로운 선택지가 아니라 사실상 ‘첫 번째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전제로 태어나는 ‘본 글로벌(Born-global)’ 기업의 패턴이 한국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은 속도보다 국제화 준비도를 중시한다. 문제는 미국 시장이 기회의 크기만큼 진입장벽도 높다는 점이다. 주마다 다른 법무·세무 제도, 기술 기업이 마주하는 FDA·HIPAA 등 규제 장벽,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검증 과정까지미국 진출은 본질적으로 다시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한미 네트워크를 가진 대학의 역할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대학의 강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제도적·공공적 신뢰성으로 초기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둘째, 연구·기술 검증 인프라를 통해 기술 기업이 요구받는 객관적 신뢰를 제공한다. 셋째, 지속가능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해 스타트업이 스스로 확보하기 어려운 연결성을 제공한다. 즉, 대학은 기업이 단독으로 만들기 어려운 ‘국제화의 기반 시설’을 이미 갖춘 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중 한 예가 조지메이슨대가 보유한 한미 캠퍼스 연계와 현지 생태계를 활용한 소프트 랜딩 프로그램들이다. 조지메이슨 한국캠퍼스의 혁신창업센터는 워싱턴DC 인근 북부 버지니아의 NISA(Northern Virginia International Soft-Landing Accelerator)와 연계해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시장 안착을 지원한다.
NISA는 미국 공공기관과 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전 세계 15~20개 기업을 선발해 사업전략, 규제·법무 준비, 투자자 매칭을 지원한다.
이후 최종 선정된 기업은 6개월간 현지 혁신지구에서 실험실과 오피스를 무상 제공받으며 미국 시장에 필요한 검증·네트워킹을 집중적으로 확보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미국 시장이 요구하는 제도적 신뢰와 초기 내재적 리스크를 줄여주는 ‘착륙 플랫폼’에 가깝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특정 기관의 활동을 넘어 하나의 흐름을 시사한다. 즉, 글로벌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이 정교하게 설계된 국제화 플랫폼을 통해 제대로 미국에 착륙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APEC 이후의 통상 환경은 한국 스타트업에 분명한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는 준비된 이들에게만 열린다.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 스타트업 2.0 시대,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대학은 글로벌 기업의 출발선을 함께 설계하는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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