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의 관습을 뒤흔든 세 작가 이헌정, 김주리, 김대운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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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의 관습을 뒤흔든 세 작가 이헌정, 김주리, 김대운의 전시

더 네이버 2025-11-25 15:55: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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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헌정, 김대운, 김주리 작가.

서울 청담동의 갤러리 글래드스톤에서 이헌정, 김주리, 김대운 작가의 그룹전 <Irreverent Forms>가 11월 20일부터 2026년 1월 3일까지 열린다. ‘불손한 형태’ 정도로 번역될 전시 제목은 세 작가가 모두 흙을 재료로 삼되 점토의 전통 역할에 대한 기대를 배반하는 작업 방식을 이른다. 이들의 세대와 관심사,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지만, 도예라는 매체의 연약한 특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닮았다.


도예로 시작해 조각과 건축을 공부하며 영역을 확장한 이헌정 작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중심에 둔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백자항아리 연작은 흔히 떠올리는 달항아리와 달리 찌그러지고 깨진 모습으로 도자 공예의 정형성에 반기를 든다. 김주리 작가는 흙으로 빚은 형상이 물과 만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 과정에 주목한다. 재개발로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도시의 풍경을 조각한 ‘휘경’ 연작, 점토판에 폐허의 흔적을 새긴 ‘클레이 태블릿(Clay Tablet)’ 등 그가 흙으로 구축한 문명은 필연적으로 붕괴한다. 사라지는 숙명을 안고 탄생한 작품을 관조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김대운 작가는 춤을 추듯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덩어리를 쌓아 올리고 색을 입힌다. 그렇기에 도자 조각 표면에는 손이 흙과 닿는 순간의 무의식적 동작이 고스란히 남는다. 무른 점토에 아로새긴 흔적은 불을 만나 단단해지고 몸의 기억은 작품에 갇힌다.


갤러리 1층에 들어서면 먼저 이헌정 작가의 항아리 작품과 만난다. 안쪽에는 김대운 작가의 조각이 밝은 색감을 뽐내며 서 있다. 지하에는 김주리 작가의 ‘휘경’ 연작과 부조 작품, 그리고 이헌정 작가의 영상 작업이 자리하고, 2층에는 작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지러지고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작품들은 안전한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관객에게 활짝 열려 있다. 소멸과 위험을 감내할 준비를 마쳤다면 균열을 직시할 것. 그렇게 형태의 속박에서 벗어날지니.

Juree Kim, ‘Hwigyeong(揮景)-m10’, 2025, Soil, water, 34×36×36.5cm. 

공통적으로 흙을 다루지만 작업 방식이 상이한 세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모였다. 함께 전시를 여는 소감을 듣고 싶다.
김대운 계속해서 다듬고 결점을 가리는 과정이 전통적인 흙 작업의 핵심일 텐데, 우리 작업의 성격은 그와 반대라 흥미롭게 다가왔다. 흙을 대하는 제스처가 아주 다르기에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김주리 의도한 것처럼 세 작가의 세대와 나이가 구분된다.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을 테고, 사회적 분위기도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여 기획하지 않았을까. 흙을 오래 만져온 사람으로서 세라믹 작업을 활발히 하는 작가님들과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
이헌정 이전부터 좋아하던 작가들이라 작가진을 듣고 놀랐다. 김대운 작가님은 미국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고, 김주리 작가님은 7~8년 전쯤 협업하고 싶어 연락을 했지만 외국에 계셔서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인연으로 연결된 작가들과 함께할 수 있어 고맙다.

Juree Kim, ‘Clay Tablet: Seoul-style 03’, 2025, Ceramic, 41×32×5.5cm. 

세 작가의 작업에서 점토의 허물어지는 속성을 수용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매체 특유의 취약성에 주목하기까지 전통적 시각을 벗어나 고민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 같은데.
김주리 조각을 전공하면 에스키스를 연습 삼아 흙으로 작게 만들어보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다 물에 습작을 넣은 적이 있다. 미술계에서는 형상을 만들어 굳히는 용도로 흙을 사용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물속에서 해체되는 모습을 목도했다. 물속에서 쪼개지는 입자가 시간의 파편처럼 보였다. 20여 년 전 경험 이후 흙의 물성에 대해 고민했고, 물이라는 자연 요소를 작업에 끌어왔다. 흙이 물을 만났을 때 해체되는 속성은 취약점이지만, 동시에 가장 생명력 강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을 품은 유동적 상태에 흙의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다.
김대운 이전부터 즐겁게 작업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제스처를 표현할 수 있는 흙의 물성이 와닿았다. 동시에 가마에 굽거나 유약이 섞이고 흐르는 등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과정도 존재한다. 취약점이라 볼 수도 있지만 예상할 수 없는 속성을 즐기는 내 성향과 잘 맞다.
이헌정 도예 전공자들은 ‘조각가는 재료를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도예가는 재료에 선택당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도예로 시작했기에 흙을 종교적으로 바라본다. 이번 전시 작품은 백자항아리다. 한국에 올 때면 1년에 한 번 정도 물레질을 해 항아리를 만든다. 그럴 때면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물레질이 즐거운 이유는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다가 어느 순간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취약성이 매력적이다. 

Hun-Chung Lee, ‘Jar’, 2025, Glazed ceramic, 54×32cm. 

전시 작품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김주리 ‘휘경’ 시리즈는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근간이 되는 작품이다. 2008년경 내가 살던 서울 휘경동이 재개발 지역이 되며 집과 스튜디오가 철거되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 경험을 계기로 집, 그리고 주변 환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휘경(揮景)’이라는 제목은 ‘사라진 풍경’이라는 뜻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신작은 실제 살았던 집을 모델로 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김대운 5년 전 작업한 ‘페르소나’는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며 만든 작품이다. ‘정상성’에 비유할 수 있는 달항아리 고유의 모양을 깨뜨려보고 싶었다. 여기에 다양한 형태를 덧붙여 마무리했다.
이헌정 조선 후기 18세기에 달항아리를 만드는 문화가 짧게 이어졌다. 그 가치를 존중하지만 달항아리에 환호하는 지금의 현상에 의구심이 든다. 달항아리는 당대를 반영하고 시대정신을 보여주기에 가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가 당대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달항아리를 21세기 시점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질문해야 한다. 그렇기에 달항아리를 빚은 뒤 손으로 꾹 눌러 풍자 요소를 더했다. 

작품들이 어우러진 전시장을 보니 어떠한가?
김주리 두 분의 작업을 보며 흙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흙은 재료이기도 하지만 주체적인 자연의 요소다. 그래서 흙의 속성을 자연의 원리에 맡기는 작업을 해왔는데, 김대운 작가님의 그림 같은 색채와 이헌정 작가님의 자유로운 태도에서 흙이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대운 이헌정 작가님의 록스타 같은 호방함에 반해 예전부터 작업을 따라갔다. 작품 속의 특징적인 제스처와 터치 하나가 크게 와닿은 적이 많았다. 특히 백자항아리 연작은 작가님의 해석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한 작품이다. 김주리 작가님의 작업은 예전에 전시를 기획하며 공부한 적이 있었다. 상실에서 비롯된 감정의 여진, 그 흔들림과 재료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재개발이라는 화두가 흙으로 표현되는 점도 흥미로웠다. 


매체와 국경을 넘나드는 이헌정 작가님의 여행자 정체성은 타고난 기질인가, 혹은 예술가로서 채택한 태도인가?
이헌정 대학생 때 그러한 기질을 발견했다. 하나를 깊게 파고들지 못하고 산만해서 선생님들에게 지적도 받았는데 안 고쳐지더라. 예술에서든 삶에서든 하나의 사물을 깨우치기 위해 미시적으로 연구하는 방식과 그 주변을 여행하는 방식이 있다면, 나는 후자를 택했다.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뿐 아니라 재료와 표현 방식을 바꾸는 것 역시 여행의 일종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단순한 떠남이 아니라 귀환을 전제한다. 그렇기에 1년에 한 번 한국에 돌아와 항아리를 빚는 종교적 행위가 내게 소중한 여행의 일부다.


서울 휘경동 풍경에서 출발한 ‘휘경’ 연작, 압록강 하구 습지를 배경으로 한 ‘젖은 흙’ 등 김주리 작가님의 작업 중 장소에서 비롯된 작품이 눈에 띈다. 평소 특정 장소에서 작업의 단초를 발견하는지?
김주리 정확하게는 장소보다 환경과 주변 상황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전에도 흙으로 구축한 형상이 물에 의해 해체되는 시리즈를 작업했는데, ‘휘경’을 계기로 건축물을 조각했다. 재개발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함의가 크지만, 그보다 물과 흙이 만나는 순간의 에너지와 이후의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또 중국 단둥 지역을 방문했을 때 문화가 뒤섞인 풍경이 압록강 습지의 유연함과 맞물려 다가왔다. 본래 물과 흙이 만나면 물이 기화해 흙이 건조되기 마련인데, 합쳐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젖은 흙’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한 장소에 한정 짓기보다 지구적 관점으로 환경에 대입하며 작업한다.


김대운 작가님은 대주 콜렉티브를 결성해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친구를 모델로 조각 작품을 만든다. 작업 활동에서 공동체와 동료란 어떤 의미인가?
김대운 사실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에게는 우리밖에 없다. 퀴어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제도권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면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작업을 할 때면 다들 날카롭지만 서로 응원하기에 작업의 원동력이 된다.

Dan Kim, ‘Persona #2’, 2021, Clay and glaze, 156×100×60cm. ©Dan Kim, Photo by Ieon Yang.

그간의 작업에서 우연의 작용을 발견할 수 있다. 우연과 즉흥성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헌정 40대 중반에 건축을 공부한 이유는 이전까지 혼자 작곡하고 연주를 끝내는 솔로 연주자처럼 작업했다면, 시스템으로 구현되는 오케스트라 같은 예술 구조에 관심이 생겨서다. 건축은 나사 하나까지 결과를 예측해 철저하게 계획해야 하는 분야다. 그런데 양평의 작업실을 직접 설계하고 짓는 과정을 마치 조각 작업하듯 진행했다. 창문을 이렇게 냈다가, 다음 날 구조물을 올리기도 하고 매일 바뀌었다. 이렇듯 내 작품은 처음 설계와 다르게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시작 지점에서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 소중하다.
김주리 직관을 믿고 직관적인 작업을 추구하지만 즉흥과는 거리가 멀다. 상황을 설정하는 작업이라 계획을 세워 철저하게 준비하려 하는데, 즉흥성보다는 흙에 함유된 수분이나 물질, 환경의 영향 등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김대운 나의 작업은 직관적이고 즉흥적이다. 즉흥에서 비롯되는 허술함이 좋다. 즉흥적으로 작업하다 보면 무언가 빠뜨리고 삐끗할 때가 있는데, 결국 리듬감과 작가적 제스처로 발현되더라. 


이헌정 작가님의 테마를 빌려 질문하겠다. 전시를 마치고 후련하게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로 향하고 싶나?
이헌정 물리적 여행이라면 최근 멕시코에 빠져 있다. 올해 일 때문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졌다. 넓게 보자면 최근 삶이라는 여행에 목표가 생겼다. 얼마 전 부와 명예를 얻을 굉장한 기회를 제안받았지만, 고민 끝에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올해 가장 잘한 일 같다. 이를 계기로 여행의 목표를 설정했다. 매년 단 1보도 퇴보하지 않고 조금씩 더 자유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김대운 작업실은 늘 작업을 마치고 빨리 떠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업실에 머무르며 ‘낯설게 바라보기’를 실천해야겠다.
김주리 사실 나는 여행에 취약한 사람이다. 여행에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는 데 서툴지만, 일 때문에 해외에 갈 때면 작업의 영감을 얻곤 했다. 최근 궁금한 곳이 생겼다. 초기 문명의 흔적이나 옛 유적을 좋아하는데, 내년에는 요르단 와디럼 사막으로 떠나 지구 표면에 남은 인류의 흔적을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최근 천착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대운 퀴어 미학의 보편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세대에게 ‘퀴어함’이란 일종의 관계 맺기 방식 같다. 어떤 정체성이나 젠더의 범주를 넘어 세계 속 타자와 감정, 사물에 접근하는 태도의 하나로, ‘나는 퀴어다’가 아니라 ‘나는 퀴어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린다. 이처럼 규범적 구분과 위계를 거부하고,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감응을 탐구하며 새로운 형태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는 보편성을 작업에서 획득하고 싶다.
김주리 스튜디오가 있는 남양주 답내리에 공교롭게도 GTX-B 노선 기지국이 들어서며 맞은편 산이 깎여 사라졌다. 이를 계기로 ‘월산 풍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대 토목 기법인 판축으로 야외에 구조물을 세워놓고 자연 속에서 풍화되는 과정을 기록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궁극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이헌정 한국에서는 주로 세라믹 작업을 하고, 미국에 가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세라믹과 달리 기다림 없이 바로 결과물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그래서 미국의 세라믹 스튜디오를 아예 정리했다. 혼자 일기 쓰듯 매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나만의 문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작품 사진 전병철, 글래드스톤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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