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들의 경제 심리가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지난 9월부터 계속됐던 경기 불안과 국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11월 소비자심리지수가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민간 소비도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는 112.4로 전달보다 2.6포인트 올랐다. 이는 2017년 11월(113.9)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9월(-1.3포인트), 10월(-0.3포인트) 두 달 연속 하락했던 분위기가 불확실성이 빠르게 풀리면서 눈에 띄게 반등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이 기준이다. 100을 넘기면 소비 심리가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상태임을 의미한다. 11월 지수가 충분히 100을 넘어선 걸 보면, 국내 소비자들이 느끼는 경기가 '위축에서 반등'으로 돌아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상승은 특히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한 기대가 커진 영향이 컸다. 향후경기전망 지수는 102로 전월보다 8포인트 상승해, 여러 지표 중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현재경기판단 지수도 96으로 5포인트 상승하며 함께 회복세를 보였다.
생활형편전망(101, +1포인트)와 가계수입전망(104, +2포인트)도 함께 올랐다. 반면 현재생활형편(96)과 소비지출전망(101)은 전달과 같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수출기업과 국내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게 줄었다"며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시장 기대를 뛰어넘은 점도 경기 회복 기대를 키운 원인"이라고 말했다.
또 "계엄 사태 이후 크게 움츠러들었던 소비 심리가 기저효과로 조금씩 되살아나는 모습"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수출 주력 산업이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는 한편 제조업 가동률까지 조금씩 오르면서 경기 비관론이 빠르게 힘을 잃고 있다. 소비자들도 앞으로 6개월 경제 상황이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런 기류가 전반적인 경제 심리 회복으로 이어진 셈이다.
주택 시장에 대한 전망도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11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9로, 전월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9월에 112였던 이 수치는 10월 122까지 뛰었다가 다시 다소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집값 상승 기대감이 완전히 꺾인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단기 조정일 뿐,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높다"고 본다. 실제로 6·2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던 7월(109)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지수가 100을 넘는다는 건 여전히 '앞으로 1년 안에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전세 시장이 정점을 찍고, 매매로 넘어가는 수요가 늘어난 데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신축 위주로 거래가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 등이 주택가격전망지수 하락을 단기간에 멈추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금리와 물가에 대한 전망은 전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6개월 뒤 금리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는 금리수준전망지수는 98로, 10월 대비 3포인트 올랐다. 여전히 높은 금리가 유지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내년에 금리가 인하 사이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조금씩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기대(기대인플레이션율)는 2.6%로 전달과 같았다. 올 하반기 들어 기대인플레이션율이 확실히 안정되면서, 소비 환경의 불확실성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비심리 지표의 상승이 경기 회복의 '선행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실제 소비 지출 변화보다 좀 더 빨리 반응하기 때문에, 이번 반등이 내년 초 민간 소비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관세 협상 타결이 국내 수출 회복뿐 아니라 소비와 투자 심리까지 자극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 같다"며 "다만 소비 회복이 실제 수요 증가로 이어지려면 추가적인 안정 요인이 계속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개인 금융비용 부담, 고금리 여파, 가계부채 조정 등의 과제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조사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겹친 상황에서도 한국 소비자들이 무조건 비관적으로만 상황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관세 협상 타결, 성장률 선방, 물가 안정과 같은 긍정적인 요인들이 빠르게 소비 심리 개선으로 이어졌고, 그 덕분에 앞으로의 경기 전망에 대한 기대감도 지난해보다 크게 높아졌다.
금리나 물가, 주택가격처럼 일상과 밀접한 요소들은 여전히 조정 국면이지만, 대부분의 지표가 장기 평균을 웃돌아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가능해졌다.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소비 심리의 반등이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경기 회복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조사 결과가 내년 경제 흐름의 방향성을 짚어볼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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