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쿠폰 등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로 내년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것이란 국제통화기금(IMF) 진단이 나왔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다만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성장률을 끌어올린 만큼, 중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 악화와 물가상승 압력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빠른 경기 회복의 이면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와 국가채무 급증이라는 부담이 누적되고 있어 재정 기조를 보다 보수적으로 전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IMF "韓경제, 내년에 잠재성장률 수준 회복…완화 재정정책 영향"
25일 기획재정부가 전날 공개한 '2025년 IMF 연례협의 보고서'에 따르면, IMF는 한국 경제가 올해 하반기부터 회복 국면에 진입해 내년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IMF는 지난 9월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7월 전망(0.8%)보다 0.1%포인트(p) 올린 0.9%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내년 성장률은 지난번 전망치와 같은 1.8%를 제시했다.
OECD 역시 같은 달 공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올해와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을 직전(6월) 전망치와 같은 1.0%, 2.2%로 유지했다. 주요국의 경우 내년이 올해보다 대체로 성장이 둔화되겠지만 한국은 회복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경제 연구 기관들도 올해 성장률이 1%에 근접하고, 내년에는 1% 후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완화적 통화·재정정책과 선거 이후 개선된 소비심리 등의 영향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민간소비가 회복될 것"이라며 "내년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감소하고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정책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점진적으로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7월 4일 이재명 정부는 '내수 진작'을 목적으로 31조8000억원 규모의 올해 2차 추경 집행에 착수했다. 이 정책 패키지엔 전국민 대상 최소 15만원의 소비쿠폰과 비수도권·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이 담겼다.
인공지능(AI)과 기후대응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도 대폭 확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 등 민생 안정을 위한 재정 투입도 크게 늘렸다.
특히 이 같은 정책 효과가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등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완화와 맞물리면서, 민간 소비·투자 심리를 동시에 끌어올렸고 내년 경기 회복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성장률 반등에도 불어나는 나라빚…적자재정 경고음↑
다만 단기간에 대규모 재정이 투입된 만큼 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재정 여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물가상승 압력 등을 고려해 재정정책 기조를 보다 더 보수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에 비해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잠재성장률을 회복하는 국면에 들어서는 만큼 재정도 완화 기조를 이어가기보다 점진적으로 정상화 단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재정지출 규모는 올해(2차 추경 포함) 703조3000억원에서 2029년 834조7000억원으로 향후 5년간 연평균 5.5%씩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나라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2025년 111조6000억원에서 2029년 124조9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내년 4.0%로 확대돼, 2027년 4.1%, 2028년 4.4%로 증가한다.
2029년에는 4.1%로 소폭 감소하지만, 기재부가 당초 재정건전성 사수를 목표로 내세운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 3%'의 재정준칙은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국가채무 역시 올해 1301조9000억원에서 매년 100조원 이상 증가해 2029년엔 1788조9000억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말 49.1%에서 2029년 말 58.0%까지 높아진다.
확장재정 기조가 유지될 경우 국가재정이 구조적으로 매년 100조원가량 부족해지는 상황이 불가피하며, 이에 따른 나라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대미 투자로 매년 50억달러 기금채…4년뒤 국가보증채무 0.6%→3.2%
한미 통상 협상 타결로 향후 대규모 대미 투자 의무가 발생한 점도 변수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보증채무관리계획'을 보면, 보증채무는 올해 16조7000억원에서 2029년 80조5000억원으로 약 5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국가보증채무는 정부가 상환을 보증한 채무로, 회계상 확정채무인 국가채무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증을 받은 주채무자가 제때 상환하지 못하면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해 국가채무로 전환되는 '잠재적 국가부채'로 분류된다.
여기에 내년부터 대미투자특별기금(가칭)에서 매년 50억달러(약 7조4000억원)의 정부 보증 기금채가 발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단기간에 상환이 어려운 구조상 보증채무가 매년 추가로 누적될 수 있다.
이럴 경우 2029년 말 국가보증채무 잔액은 100조원을 돌파하게 된다. GDP 대비 국가보증채무 비율도 올해 말 0.6%에서 2029년에는 기존 전망치인 2.6%를 넘어 최대 3.2%까지 치솟을 수 있다.
현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따라 국가채무가 2029년에는 1788조9000억원까지 늘어나는데, 보증채무까지 빠르게 불어날 경우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확정채무와 잠재채무가 동시에 불어나는 것은 재정의 완충 능력을 빠르게 약화시키는 요인"이라며 "특히 대외 리스크가 커졌을 때 신용등급 평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확장재정 속도 줄이고 지출 구조조정을"…'재정 축소' 보단 '재원 확충' 목소리도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내년을 기점으로 확장재정의 속도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기준점 정립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명재 교수는 "더 이상 경제성장률이라는 단기 지표에만 속지 말고, 내년부터라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빠르게 재정을 조여 나갈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확장 기조를 유지하면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반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인 만큼, 재정준칙을 강제적으로 작동시키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확장재정의 속도를 지나치게 조이는 것은 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만큼, 재정 운용의 기준을 '축소'가 아닌 '재원 확충'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공공지출은 OECD 평균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 증세를 통해 재원을 확충하며 재정의 역할을 넓혀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성장 모멘텀 형성 단계에서 재정을 조이면 가계부채만 더 악화되고 국가경제 전체의 잠재력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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