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시민들 사이에서 주거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수년째 지속되는 집값·임대료 상승에도 아파트 신규 분양 등의 주택 공급 소식은 감감 무소식인 탓이다. 일찌감치 기대를 접고 서울 근교로 이주를 고민하는 움직임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서울의 주택 공급절벽 문제는 주거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용하려는 권력의 과도한 개입이 원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시장에 개입해 성과를 내려고 시도하다보니 오히려 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상황만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 주택보급률 꾸준히 하락세, 주택 소유율은 전국 최화위…주거불안에 떠는 서민들
서울 주택보급율은 수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주택 보급률은 2019년 96을 기록한 이후 △2020년 94.9 △2021년 94.2 △2022년 93.7 △2023년 93.6 등 2020년대 들어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주택보급율은 전체 주택수를 전체 가구수로 나눈 비율로 100보다 낮으면 주택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100보다 높으면 그 반대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은 꾸준히 100을 상회했다. 수도권은 100 이하를 맴돌긴 했지만 꾸준히 96 이상을 기록했고 특히 가장 최근 통계이자 민선 8기 출범 이후인 2023년에는 전년(96.6) 보다 오른 97.2를 기록했다.
서울의 주택보급율 하락의 주된 원인은 1인가구 증가 등의 여파로 가구 수가 늘어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공급은 제자리걸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2019년 이후 서울 인구와 가구 수는 각각 △2019년 972.9만명, 389만6400가구 △2020년 966.8만명, 398만2300가구 △2021년 950.9만명, 404만6800가구 △2022년 942.8만명, 409만8800가구 △2023년 938.6만명, 414만1700가구 등이었다. 인구수가 꾸준히 줄어드는데도 가구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가구 당 평균 세대원이 줄어든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같은 기간 서울 주택 수는 △2019년 373만8600채 △2020년 377만8400채 △2021년 381만1900채 △2022년 383만9800만채 △2023년 387만8500채 등이었다. 2020년 기준 서울 다주택자 수가 228만명 가량임을 감안하면 가구 수에 비해 주택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 시민들의 주거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집값과 임대료가 갈수록 올라가는 탓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주택 통계'에 따르면 서울 거주 가구의 주택 소유율은 48.1%을 기록했다. 전국에서 50%를 넘지 못한 지역은 서울이 유일했다. 전국 기준 주택 소유율(59.8%)에 비해서도 무려 8%p 가량 낮았다. 지난 2022년 발표된 한 연구 자료에선 서울 거주 청년 5명 중 1명(21.5%)이 주거 불안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당시에 비해 임대료나 주택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거 불안을 경험한 청년 역시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시민들의 반응은 이를 방증했다. 직장인 강진석 씨(29·남)는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취직까지 했는데 서울에 집을 살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며 "청년주택이니 신혼부부 특별공급이니 이런 말들이 계속 들리는데 서울은 워낙 공급이 적다 보니 그런 집을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황정훈 씨(35·남·가명)는 "취업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월세를 전전하고 있다"며 "재개발·재건축 소식이 자주 들려도 정작 사업은 진행되지 않고 자연스레 집값과 임대료가 계속 올라 전세로 갈아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하루라도 빨리 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공급의 최대 적은 부동산 정치, 시장 개입 대신 중재·지원·감시 역할에 충실해야"
다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의 주택 공급이 더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긴 하지만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들은 공급절벽의 본질적인 이유로 선출 권력의 과도한 개입을 꼽고 있다. 주거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표심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과도한 시장 개입에 따른 혼란, 나아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차질로 이어졌고 결국 공급이 더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서울 용산구 L 부동산 관계자는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방법은 과거 강남 세곡·내곡 개발이나 마곡지구 개발 등과 같은 외곽 지역의 신규 택지 개발과 기존 주택의 재개발·재건축뿐이다"며 "전부 정부나 기초단체, 기존 원주민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방법들인데 이럴 경우 한 쪽 권력이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하면 다른 쪽에서 제동을 거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 정부나 지자체 땅을 개발하는 게 아닌 이상 처음부터 권력의 개입 없이 원주민들이 알아서 개발을 진행하게끔 유도하고 정부나 지자체는 인·허가 과정을 신속하게 해주는 등의 지원 수준에 머무르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서초구 S부동산 관계자 역시 "과거 고 박원순 시장 때는 재건축·재개발에 회의적인 정책 기조 때문에 보니 공급이 더뎠고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후에는 신통기획, 모아타운 등 대부분 공공 주도로 공급을 늘리는 방안만 내놓으니 원주민들의 반대 등에 부딪혀 사업이 지지부진한 곳들이 많다"며 "부동산 민심이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 보니 부동산 정책으로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엄청난 역풍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개발·재건축 문제는 집주인들에게 맡기고 서울시나 각 구청 등은 갈등 중재나 부정행위 감시, 인·허가 절차 단축 등 최소한만 개입하고 지원해주는 게 가장 빠른 주택공급 방안이다"고 강조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자체는 기본 원칙과 안전장치만 마련하고 세부 개발 과정은 시장과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조율하도록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인 경우도 있다"며 "지자체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고 시장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주택 공급 정상화의 핵심이다"고 분석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