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23일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꺼내들면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1호였던 '개헌'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해병대원 순직사건) 정국이 지속되면서 개헌 논의가 잦아들었으나 특검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내란 재판 1심 결과도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여 내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메인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국, 당대표 취임 일성 "조국혁신당, 제7공화국 여는 쇄빙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23일 당대표 취임 일성에서 개헌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조 대표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은 개헌으로 이어져야 한다. 조국혁신당은 제7공화국을 여는 쇄빙선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즉각적인 '국회 개헌연대' 구성과 내년 6월 '지방선거와 지방분권 개헌' 동시 투표를 여야 정치권에 제안했다.
조 대표가 '개헌'을 꺼내든 것은 최근 정치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극한 대립 속에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한자릿수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을 주도함으로써 존재감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특히, 개헌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기획위원회의 1호 과제였다는 점에서 대통령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개헌을 통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대통령 4년 연임제 △감사원의 국회 이관 △국회에 국무총리 추천권 부여 △국회의 계엄 통제권 강화 등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민주 박지원 "지금은 내란 종식, 다음은 개헌"
민주당 내에서도 개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21일 광주개헌넷(준)이 주최한 특강에서 "지금은 완전한 내란 종식, 다음은 개헌"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제7공화국을 열 수 있도록 호남에서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재명 대선 후보 때 개헌 논의를 차단 한 바 있다"며 "내란 청산 집중과 이재명 후보 보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집권했다. 미래도 준비해야 한다"며 "올해는 특검을 마무리하고 공직사회를 안정시키고, 내년부터는 정권 재창출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완전한 내란 종식이 개헌이다. 개헌은 항상 추진 주체·시기·방법·내용 등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며 "개헌 논의도 호남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회에서 절제되고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헌 요구가 성숙되면 호남과 국민 의견을 경청, 국회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강기정 "내년 지선서 개헌 국민투표"
박형준 "분권형 개헌으로 권한 재배분"
지자체장들도 앞다퉈 '개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4일 '지방자치 30주년 시도지사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현재처럼 중앙에 권한이 집중된 구조로는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없다"며 "지방정부가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갖기 위해서는 지방분권형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고 대타협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에 개헌 주민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23일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미래혁신도시포럼 주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 토론회 패널로 참석해 지역 균형발전 실현을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 분산과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대한민국 엘리트 80%는 서울, 그것도 강남에 산다"며 "이런 '서울 감각'으로는 지역 균형발전을 말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역 균형발전의 전제조건으로 중앙정부 권한 분산을 들며 "지방정부의 정책 역량을 평가해 성과가 좋은 지방에 더 지원하는 새로운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며 "중앙과 지방 권한을 재조정하는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정회 "개헌 중심 의제는 권력구조 개편…양원제 도입해야"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도 내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시행을 위한 여론 조성에 힘쓰고 있다.
지난 12일 헌정회가 마련한 '분권형 권력구조 헌법개정 대토론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해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번 헌법 개정의 중심 의제는 권력구조 개편"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명예교수는 "베네수엘라, 튀르키예 등 양원제를 폐지한 나라는 대체로 독재의 역사를 밟았다"며 "양원제는 다수당의 폭정을 방지하고, 입법 품질을 제고하며, 지역 대표성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정회 헌법개정위원인 이시종 전 충북지사도 "상원에 정부 고위공직자 임용 동의권을 부여하면서 제왕적 대통령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며 양원제 도입을 지지했다.
이 전 지사는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국민 정서는 이해되나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며 "국회의원 정수 300명 범위에서 상·하원 의원 수를 조정 배분하는 '총원 불변의 법칙'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내년 지방선거 때 '지방분권 원포인트 개헌'을 하면 나머지 부분도 점진적으로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1987년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하나의 주제였기에 국민적 합의가 가능했다"며 "6·29 선언으로 갈등·대립이 해소된 상태에서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통 큰 양보로 개헌 기구인 8인 정치회담이 4대 4로 구성됐다"고 부연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이재명 정부 들어서 나온 개헌론은) 4년 중임제에 집중해 임기만 연장하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거나 다른 데로 제한하는 의도가 거의 없다"며 "잘 감시하고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국회에 특위 구성하고 개헌 논의 시작하라"
시민단체들도 정치권을 향해 개헌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주도 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는 12일 오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는 당장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개헌을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국회에 요청했다.
이 단체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 123건을 확정하며 1호 과제로 개헌을 선정한 지 2개월이 지났다"며 "아직 국회에서는 개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가 공언한 대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일차적으로 개헌이 이뤄지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개헌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하고 위헌적인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개헌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와 기후위기·재난·참사·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 등 시민이 열망하는 사회대개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특검 정국에 개헌 가능성 낮아져…"내란종식 우선" 목소리 커
개헌 논의가 궤도에 오르려면 국회에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구성과 국민투표법(재외국민 투표·사전투표 도입) 개정이 선결돼야 한다.
그러나 3대 특검(내란·김건희·해병대원 순직사건) 수사와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 등으로 여야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개헌특위나 국민투표법 개정을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 내 대표적인 개헌파인 우원식 국회의장은 9~10월 개헌특위를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무엇보다 개헌보다 내란종식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큰 것도 개헌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당장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개헌'을 주장한 조국 대표를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는 24일 페이스북에 "지금은 '반란을 종식시키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라는 목소리를 더 크게 외쳐도 모자랄 때"라며 "조 대표는 지금이 왜 개헌 논의의 타이밍인지 단 한 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 대표의 발언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작 내란 세력이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국면 전환이다. 논점을 흐리고, 본질을 덮고, 국민의 분노를 분산시키고, '개헌 논쟁'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이슈를 빨아들이는 것"이라며 "판단력과 지도력 결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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