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사람과 땅, 지리지에 담다' 특별전 25일 개막
세종실록지리지·대동여지도 등 198점 소개…'이건희 기증' 지도도
(대구=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지(地志)와 주(州)·부(府)·군(郡)·현(縣)의 고금 연혁을 찬술해 보려고 한다."(세종실록 1424년 11월 15일 기록)
조선 초 세종(재위 1418∼1450)은 명을 내린다.
전국 팔도, 각 지역에 관한 정보를 담은 책, 즉 지리지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지리지는 특정 지역의 인구와 농경지, 특산물 정보는 물론 자연환경과 인문 정보까지 모두 아우르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일컫는다.
1425년 경상도를 시작으로 나머지 도의 정보가 완성됐고, 몇 차례 손질을 거쳐 1454년에는 '세종실록' 부록으로 그 정보가 빼곡히 담겼다.
그 시절 국가 운영과 행정의 기초가 된 필수 정보, 지리지다.
한 지역의 삶과 역사를 기록한 지리지를 조명한 전시가 대구에서 열린다. 국립대구박물관이 25일부터 선보이는 특별전 '사람과 땅, 지리지에 담다'에서다.
최환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개막에 앞서 24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경상도지리지' 편찬 600주년을 맞아 국립박물관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지리지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유일한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부터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1804 추정∼1866 추정)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까지 198점의 유물을 모았다.
그간 개별적으로 전시해 온 지리지와 지도가 총출동하는 셈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조선 초기 지리서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1454년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 1481년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1530년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이 함께 소개된다.
전시를 기획한 정대영 학예연구사는 "기록 문화가 발전한 조선에서는 초기부터 지리지를 제작했다"며 "지리지 분야의 핵심 자료가 같이 전시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리지 곳곳에 남은 기록을 보면 흥미롭다.
'경상도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 대구 달성현은 인구가 1천329명(436호)이며 논은 1천200결(結·논밭 넓이의 단위), 밭은 800결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1768년 편찬한 대구 읍지(邑誌·고을의 연혁 등을 기록한 책)는 6만508명으로 전하는데, 오늘날 인구(약 239만명)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지리 정보를 담은 다양한 지도 유물은 시선을 끈다.
가로 5.4㎝, 세로 11.2㎝ 크기의 작은 지도는 조선 팔도의 행정 구역과 주요 길이 표시돼 있어 선비나 상인들이 옷소매에 넣어 다닌 것으로 추정된다. 옷소매에 품은 '조선판 내비게이션'인 셈이다.
'전지도'라는 이름의 지도는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와 조선 팔도, 이웃 나라의 지도를 함께 수록했으며 전체를 우리말로 옮겨 주목할 만하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유물 중 하나다.
이 중 '조선도' 지도는 울릉도 옆에 있는 섬을 '방산도'라고 표기했다. 독도의 옛 이름인 '우산도'(于山島)의 한자를 잘못 읽은 것으로 보인다고 정 연구사는 설명했다.
18세기에 제작된 또 다른 지도에서도 '우산'을 자산'(子山)으로 쓴 흔적이 남아있다.
전시에서는 김정호가 제작한 다양한 지도도 살펴볼 수 있다.
전국 지리서인 '동여도지'(東輿圖志)와 지도인 '동여도'(東輿圖), 대중에게 잘 알려진 '대동여지도' 등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전시를 쉽게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돋보인다.
종이에 전국의 명승지를 적어 두고,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만큼 이동하도록 한 '청구남승도'(靑邱覽勝圖)에는 '조선 시대의 보드게임'이라는 설명을 더 했다.
유물 설명마다 짧은 영상을 볼 수 있는 정보무늬(QR 코드)도 넣었다.
정 연구사는 "지리지는 단순한 지역의 지리적 정보를 수록한 기록물이 아니라 중앙 정부의 통치 이념과 지방 사회의 역동성을 동시에 반영한 복합적인 사료"라며 "사람과 땅이 있는 한 지리지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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