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생물이 지닌 정교함은 때로 인간 기술이 닿지 못한 지점을 경쾌하게 넘어선다. 캐나다 맥길대학교 창환 카오(Chang-Hwan Chao) 교수 연구팀이 구현한 초미세 3D 프린터 노즐은 그러한 자연의 해법을 기술로 옮겨온 사례다.
연구팀은 암컷 모기의 구기(proboscis)를 절단·추출해 기존 장비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극초미세 인쇄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제작 방식을 선보였다. 이 기술은 연구팀이 '3D 네크로프린팅(3D necroprinting)'이라 부르는 개념으로, 자연에서 얻은 생체 구조를 그대로 정밀 공학 부품으로 재활용하는 접근이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 자연이 만든 구조에서 찾은 해법
현재 시판되는 극세 노즐의 내경은 약 35마이크로미터 수준이며, 개당 가격은 80달러에 이른다. 연구팀은 다양한 제조법을 시도했지만 비용과 내구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연구팀은 시선을 자연으로 돌렸다. 대학원생 저스틴 푸마(Justin Puma)가 전갈의 독침과 뱀의 송곳니 등 여러 생물의 조직을 조사한 끝에, 암컷 모기의 구기가 약 20마이크로미터 폭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숙련된 작업자는 현미경 아래에서 구기를 절단·추출해 1시간에 6개의 노즐을 제작할 수 있으며, 비용은 개당 1달러 미만이다. 생물 유래 구조임에도 제작된 노즐 대부분이 약 2주 동안 정상 작동했고, 동결 보관 시 최대 1년까지 보존이 가능했다. 기존 3D 프린터에 바로 장착할 수 있다는 점도 활용도를 높인다.
◆ 장기 제조를 위한 미세 혈관 스캐폴드 인쇄 가능성
생물의 기관을 기계 요소로 전환하는 연구는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나방 촉각을 활용한 냄새 탐지 기술이나 거미의 사체를 로봇 집게로 변환한 ‘네크로봇(necrobot)’이 대표적이다. 모기 구기 노즐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초정밀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바이오잉크 '플루로닉 F-127(Pluronic F-127)'을 사용해 미세 혈관 구조 스캐폴드를 인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이식용 인공장기 제작에 필요한 핵심 기술로 꼽힌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영국 스완지대학교 크리스천 그리피스(Christian Griffiths) 부교수는 "자연이 오랜 진화를 거쳐 만든 구조는 인간이 설계로 쉽게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하며, 이번 연구를 "생물의 정교한 구조를 기술로 확장하는 흥미로운 시도"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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