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10월의 한강은 언제나 특별하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살짝 서늘하며,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묘한 여유가 담겨 있다. 그런 한강 위에서 지난 주말, ‘2025 사각사각 가을축제’가 열렸다. ‘사각사각, 일상에 스며드는 예술’이라는 주제처럼 예술이 공간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 시간이었다.
잠실한강공원에 자리한 사각사각플레이스는 14명의 청년 예술가들이 머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작은 컨테이너 스튜디오들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사이를 걷다 보면 각자의 색이 묻은 작업들이 바람처럼 스쳐간다. 이번 축제에서는 그 14개의 스튜디오가 모두 열린 채 시민들을 맞이했다. 그림, 음악, 미디어아트, 연극, 비트메이킹, 심리예술까지. 각기 다른 언어로 예술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2번 스튜디오에서 ‘꿈나무에 소원 적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시민들이 자신의 소망을 작은 포스트잇에 적어 꿈나무에 붙이는 단순한 체험이었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삶이 묻어 있었다.
“가족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하고 싶은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짧은 문장 속에 담긴 진심들이 나무의 잎이 되어 흔들릴 때, 나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예술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마주보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축제 기간 동안 사각사각플레이스는 한강 위의 작은 마을처럼 변했다. 스탬프 투어를 하며 각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사람들, 에코백에 실크스크린을 찍으며 자신만의 기념품을 남기던 시민들, 무대 앞에 앉아 재즈 듀오의 선율을 들으며 노을을 바라보던 가족들. 누구 하나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참여자이자 창작자였다.
이번 축제를 함께한 동료 예술가들도 인상 깊었다. 어떤 이는 폐자재로 악기를 만들고, 어떤 이는 음악을 통해 감정을 시각화했다. 또 다른 이는 심리와 예술을 엮어 시민과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예술은 가까이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작은 스튜디오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 사람과 연결되는 그 순간, 공간은 더 이상 작업실이 아니라 ‘소통의 장’이 되었다.
축제를 준비하며 느꼈던 긴장과 설렘은 이틀 동안의 시민들과의 만남으로 따뜻하게 채워졌다. 특히 ‘꿈나무’를 가득 채운 소원들을 바라보며 나는 예술이 단지 전시되고 감상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의 말과 표정, 손끝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축제가 끝난 뒤, 비어 있는 스튜디오 안에 남은 것은 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은 나무 한 그루와, 그 나무를 바라보며 웃던 사람들의 잔향이었다. 햇살이 서서히 기울고 한강 위로 불던 바람이 잠잠해질 때,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래, 예술은 이렇게 일상의 틈으로 스며드는 것이구나.”
이번 축제는 그 어떤 전시보다 ‘사람 냄새 나는 예술의 장’이었다. 예술이 일상의 한 조각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 머물다 가는 순간들. 그것이 내가 꿈꾸는 예술의 형태이자 사각사각플레이스가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올해의 가을은 그렇게, 한강 위에서 조용히 물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예술이 주는 가장 따뜻한 온기를 오래도록 느꼈다.
“사각사각, 일상에 스며드는 예술.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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