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손해배상, 손해배상액의 예정, 위약금, 위약벌은 계약 실무에서 자주 관찰되는 규정이다.
특히 스타트업 투자계약, 주주간계약에서는 투자자 보호와 이해관계인 또는 주요주주의 의무 이행을 위해 위 개념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각 규정의 취지와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우선 손해배상의 일반 원칙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손해배상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금전으로 전보하는 것을 의미하고,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해서는 민법이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한다(민법 제393조 제1항)고 하고,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같은 조 제2항).
이때 가장 중요한 실무 포인트는 손해를 주장하는 쪽이 손해의 발생과 그 액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 투자계약에서 투자자가 이해관계인의 어떠한 의무 위반 때문에 회사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그래서 투자자가 입은 손해를 금액으로 특정해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런 입증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무에서 가장 자주 활용되는 장치가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다. 민법은 이에 관해 당사자는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손해배상액을 예정할 수 있다(민법 제398조 제1항)고 규정, 채무불이행이 있을 경우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권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채무불이행 사실만 입증하면 되고 손해 발생 및 손해액 자체는 입증할 필요가 없다(대법원 1975. 3. 25. 선고 74다296 판결 등).
다만 다른 특약이 없는 한 손해배상의 예정에는 통상손해뿐 아니라 특별손해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 실제 손해가 이를 초과하더라도 초과분을 따로 청구할 수 없다(대법원 1988. 9. 27. 선고 86다카2375(본소), 2376(반소) 판결). 즉 예정손해배상액이 사실상 손해배상액의 상한이자 확정액으로 기능한다.
스타트업 투자계약에서는 창업자의 주식처분 제한 위반, 경업금지 의무 위반, 재무·법률상 진술·보장의 중대한 위반 등 구체적인 손해액 입증이 어려운 지점에 이런 손해배상의 예정 조항을 두는 사례가 흔하다.
다만 민법은 손해배상의 예정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이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민법 제398조 제2항).
대법원에 따르면 '부당히 과다한 경우'란 채권자와 채무자의 각 지위, 계약의 목적과 내용, 손해배상액을 예정하게 된 동기, 채무액에 대한 손해배상 예정의 비율, 예상 손해액의 크기, 당시 거래관행 등 모든 사정을 고려했을 때, 그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해 공정성을 잃는 결과가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35771 판결).
즉, 법원이 손해배상과 관련한 제반사항을 고려해 이익형량 후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다만, 손해배상의 예정도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른 것이므로, 손해배상의 예정 자체가 크다거나 계약체결 시부터 해제 시까지의 시간이 짧다는 사정만으로는 감액 사유가 되지 않는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4다209227 판결).
쉽게 표현하자면, 법원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을 감액할지 여부는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고 할 수 있을지 여부가 된다. 법원의 재량이 많이 개입되므로, 구체적으로 얼마나 감액될 것인지는 일률적으로 예단하기 어렵다.
실무상 종종 관찰되는 위약금에 관하여 민법은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고 하고 있다(민법 제398조 제4항).
대법원은 명칭, 당사자의 경제적 지위, 계약 체결 경위와 내용, 위약금 약정을 하게 된 동기와 교섭 과정, 위약금이 담보하려는 의무의 성격, 채무불이행 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지 여부, 위약금액의 규모와 채무액 대비 비율, 예상 손해액의 크기, 거래관행 등을 모두 고려하여 '위약금'의 성격을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8. 3. 27. 선고 2017다287860 판결, 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2다65973 판결 등).
위약벌은 채무불이행 자체에 대한 벌로서, 손해배상과는 완전히 별개의 법정 성질을 가진다. 위약벌과 별도로 실제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위약벌은 손해와 무관하게 의무 위반 자체를 제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의할 점은 위약벌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아니어서 상술한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법원이 '부당히 과다한 정도'이어서 감액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위약벌의 약정은 채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정하는 것으로서 손해배상액의 예정과는 그 내용이 다르므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감액할 수 없다'고 보아 왔다(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3다63257 판결, 대법원 2022. 7. 21. 선고 2018다248855, 248862 전원합의체 판결 등).
다만, 대법원은 '의무의 강제로 얻을 수 있는 채권자의 이익에 비해 약정된 벌이 과도하게 무거운 경우에는 일부 또는 전부가 공서양속에 반해 무효가 된다'는 법리를 통해 위약벌을 통제해 왔다(대법원 2015. 12. 10. 선고 2014다14511 판결 등).
다만 법원은 '공서양속 위반'을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왔다. 따라서 단순히 액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위약벌을 무효로 보아서는 안 되고, 당사자의 지위, 계약 체결 경위와 내용, 위약벌 약정을 하게 된 동기와 경위, 계약 위반의 경과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상 도저히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5다239324 판결 등).
투자계약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손해배상 조항이 들어가지만, 실무상 창업자의 주식 처분 제한 위반 시 투자금 또는 지분 가치의 일정 비율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두는 조항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계약 이행을 강하게 강제하려는 목적에서 손해배상과 별도의 위약벌 조항을 두는 경우도 많다.
그 과정에서 실제 분쟁 단계에서의 감액, 무효 리스크를 고려해 법원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과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과격한 숫자보다 실제 집행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을, 창업자 입장에서는 감액·무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장창수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前 EY한영회계법인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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