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퓰리처상 '기쁨의 분출' 뒤에 숨은 언론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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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퓰리처상 '기쁨의 분출' 뒤에 숨은 언론의 딜레마

연합뉴스 2025-11-24 10:58: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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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베트남서 스텀 중령 귀환 사진, 퓰리처상 수상

아내 불륜 행각, 남편 귀환 직전 이혼 요구 편지 보내

군인연금 절반에 양육권 빼앗겨…언론 분노 대신 외면

스텀 '아내의 포로'로 생마감, '분노의 분출'로 다시 써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73년 3월 17일, 베트남에서 전쟁포로로 잡혀 있다 5년 만에 귀환한 미 해군 중령 로버트 스텀을 향해 아내 로레타와 네 남매가 팔을 벌리고 달려갔다.

캘리포니아 트래비스 공군기지 활주로에서 일어난 이 순간을 찍은 AP통신의 사진기자 슬라바 베더가 취재 경쟁을 피해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30분 만에 전 세계에 타전했다. 이 사진은 이듬해 '버스트 오브 조이(Burst of Joy:기쁨의 분출)'라는 제목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가족의 재회, 기쁨인가 분노인가 가족의 재회, 기쁨인가 분노인가

1973년 3월17일.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스텀 중령이 마주한 현실은 정반대였다. 활주로 위의 포옹은 한 가족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이었다. 스텀이 귀환하기 사흘 전, 아내 로레타는 남편에게 이혼 의사를 밝히는 편지, 일명 '디어 존'(Dear John)을 보냈다.

'디어 존'은 전쟁터에 나간 남성에게 아내나 연인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를 의미하는 관용어로,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중화됐다.

국민의 환호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간 스텀에게는 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레타의 재산 분할 요구로 치열한 법정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법원은 스텀에게 당시까지 누적된 군인연금의 42.9%, 향후 연금의 40%를 아내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스텀은 두 어린 자녀의 양육권과 양육비, 자동차도 빼앗겼다.

스텀은 아내가 불륜 여행에 사용한 1천500달러만 돌려받았다. 로레타는 스텀 귀환 6개월 뒤 불륜 상대와 재혼했다. 스텀은 이후 재혼과 이혼을 거치는 동안 그 사진을 집에 걸지 않았다고 한다.

5년 만에 재회한 전쟁포로의 가족들 5년 만에 재회한 전쟁포로의 가족들

이 사진을 찍은 기자 베더는 생전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사진 뒤에 비극이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며 "스텀에게 그 장면이 평생 고통이 됐다는 사실이 내 가슴 속 아픔으로 남았다. 기자로서 현실의 절반을 담지 못했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당시 기성 레거시 언론은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이 불편한 진실 앞에 침묵한 것은 퓰리처상이 만든 특종의 영예를 잃을 수 있다는 언론사의 이기심과 기사 보도 시 미국 대중으로부터 받을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대령으로 전역한 스텀이 재향군인의 날인 지난 11일, 92세를 일기로 캘리포니아주의 한 요양원에서 별세했다. 일부 언론은 그를 두고 "베트남전의 포로이자, 못된 아내의 포로였다"고 썼다. '기쁨의 분출'이라는 제목을 '분노의 분출(Burst of Anger)'로 바로잡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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