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가 다시 포퓰리즘이라는 이름 아래 요동치고 있다.
▲ 네덜란드의 Geert Wilders 대표가 recent 선거에서 지지를 얻고 있는 장면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연속된 정치적 지각변동은 단순한 지역 정치의 변화라기보다, 지난 10여 년간 쌓여온 불평등과 좌절, 상실의 감정이 폭발하는 과정에 가깝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는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었고, 그 과정에서 전통 정당이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불신이 자리 잡았다.
이 불신을 파고든 이들이 바로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었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분명한 적을 원하고 단순한 해법을 원한다. 포퓰리즘은 그 감정의 경로를 정확히 짚어준다.
네덜란드 총선에서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이 제1당으로 올라선 결과는 유럽 정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장밋빛 비전보다 감정적 메시지를, 복잡한 정책보다 단순한 적대 구도를 제시하며 지지를 얻었다.
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정치권 밖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부패한 기성 정치 전체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좌파 복지 국가의 대표 사례였던 아르헨티나가 돌연 ‘극단적 자유주의자’를 선택한 이유 역시 분노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만 다를 뿐, 기득권에 대한 거부감이 핵심이었다.
네덜란드는 이민 문제를 적으로 삼았고, 아르헨티나는 무능과 부패를 적으로 삼았다.
포퓰리즘은 대중을 하나의 순수한 집단으로 설정하고, 엘리트는 부패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언어를 통해 작동한다.
대중 중심주의, 반 엘리트주의, 그리고 ‘선량한 인민 대 부패한 엘리트’라는 구조가 그 골격이다.
이는 좌파와 우파 포퓰리즘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제다. 다만 좌파 포퓰리즘은 경제와 복지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우파 포퓰리즘은 이민자·난민 같은 외부 타자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리스 파판드레우의 평등주의 정책은 경제위기에 취약했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마두로 체제는 복지 국가의 딜레마를 그대로 드러냈다.
반면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 불안의 책임을 타자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대중을 규합한다. 네덜란드 자유당이 모스크 폐쇄를 주장하거나, 유럽 곳곳에서 극우 정당이 지지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 전역에서 우파 포퓰리즘의 약진은 더 이상 주변적 현상이 아니다.
스위스 국민당의 압승, 핀란드 인당의 약진, 독일 AFD의 지지율 상승까지 유럽 정치 전체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10월 7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에서 발생한 시위와 테러 위협은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불안이 커질수록 대중은 단순하고 강한 언어를 요구한다.
포퓰리즘의 확산은 경제적 불평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성 정치권이 책임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하고, 선거 패배 뒤 음모론으로 불복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을 무조건 ‘악’으로 취급하는 시선도 있지만,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선거를 통해 분출된 대중의 분노는 기성 정치가 놓친 목소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불안에 공감하지 못한 정당이 있다면, 그 자리를 누군가 대신 채울 뿐이다.
포퓰리즘은 때로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로 작동한다. 다가오는 유럽 의회 선거는 이 흐름이 어디로 갈지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민 정책과 기후변화, 녹색 전환 같은 핵심 의제가 새로운 균열선을 따라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유럽은 과거와 다른 의회 구조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포퓰리즘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외면한 목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에만 다시 균형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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