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구이저우, 빌딩숲과 동굴에서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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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구이저우, 빌딩숲과 동굴에서 사는 사람들

월간기후변화 2025-11-24 10:16:00 신고

구이저우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성을 상징한다.

 

지도로 보면 거대한 도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땅의 92퍼센트 이상은 산악지형이고, 절반 이상은 물조차 부족한 카르스트 지형이다. 도로를 내기 어렵고, 농사 또한 쉽지 않다. 겉으로는 도시의 화려함이 번쩍이지만, 그 화려함은 수도 구이양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도시의 빛이 강할수록 산골의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사실을 구이저우는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 도시는 많은 빌딩으로 가득차 있는 구이저우    

 

구이양 중심부의 화가원은 이런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10제곱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구역 안에 40층, 50층이 넘는 고층 빌딩이 300개 이상 빼곡히 서 있다. 백화점의 중심부에서는 1천만 원이 넘는 오토바리를 팔고, 관상용 물고기부터 카피바라까지 다양한 생물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거리마다 조욕 간판이 줄지어 있지만, 정작 아이들이 놀 만한 놀이터는 단 하나뿐이다. 넓은 아파트 단지 어디에도 모래놀이나 그네는 없고, 바닥만 덩그러니 깔려 있다. 이런 풍경은 도시 자체가 삶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정부의 거대한 투자와 개발 계획으로 인해 ‘세워진’ 도시라는 느낌을 남긴다.

 

이 화려한 도시를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서너 시간을 달리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건물은 낮아지고, 아파트는 보이지 않는다. 시골 마을의 골목은 좁고 조용하며, 먼지 쌓인 집들 위로 새로 단 CCTV가 눈에 띈다. 여전히 작은 시장이 있지만 사람이 많지 않다. 한국의 시골을 떠올리게 하는 불 냄새가 골목에 퍼지고,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남겨진 채 귀퉁이마다 소박한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에는 추위를 막기 위한 덮개가 설치되어 있어, 이 지역이 얼마나 춥고 고된 곳인지 알려준다.

▲ 산기슭에 집을 짓고 동굴에 사는 구이저우 산골마을    

 

이곳에는 묘족이 많이 산다. 전통 의상에 쓰이는 장식은 산골의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띌 만큼 화려하지만, 이들의 삶은 도시와는 달리 소박하고 고단하다. 식당에서 만난 소박한 만두는 질긴 만두피와 강한 식초 맛 때문에 손에 잘 맞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는 동파육을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의 가게는 최소한의 메뉴만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에선 쉽게 접하는 먹거리도 이곳에서는 희귀하다.

 

여행의 가장 특별한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자연 동굴 마을이었다. 버스와 택시, 그리고 사람의 흔적만 겨우 남은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케이블카가 멈춘 채 버려져 있고, 해발 1,800미터의 가파른 경사 위로 드문드문 사람의 기척이 남아 있다. 동굴 입구 근처에는 전봇대와 전기가 들어오는 흔적이 있지만, 마을은 이미 폐쇄된 지 오래된 듯 조용했다.

 

이 동굴 마을은 과거 묘족이 중일 전쟁 당시 일본군의 학살을 피해 숨어든 피난처였다. 동굴은 상부와 중부, 하부로 나뉘며, 자연광이 드문드문 들어오는 구조였다. 과거에는 여기에 100명 안팎의 주민이 살았고, 초등학교까지 운영될 만큼 정착된 공동체였다. 동굴 속에는 우물이 있었고, 떨어지는 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전기도 없던 시절에 이곳에서 해가 지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이어갔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농구 골대만 남아 있고 집터만 희미하게 자리할 뿐이다. 주민들은 모두 산 아래로 내려갔다. 강제 퇴거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가난한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중국 정부가 이 마을을 ‘정리’했다는 추정이다. 정부가 지어준 아래 마을의 집들도 수해로 무너져 다시 동굴로 돌아간 이력이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재입주가 불가능하도록 폐쇄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위험이 많았다. 뒤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지만, 이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이동수단이다. 학교까지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면허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나가던 중국인 부부가 목적지 근처까지 태워주는 덕분에 산길에서 조난을 피할 수 있었다.

 

구이저우의 또 다른 시골 마을은 비교적 평범했다. 한족과 묘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표지판 외에는 특별한 정보가 없었다. 오래된 집들과 소박한 가축 축사가 있었고, 아이들은 놀이터가 없어 시멘트 바닥에 앉아 놀고 있었다. 이곳보다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야 진짜 가난한 마을을 볼 수 있지만, 전날의 위험한 산행을 떠올리면 다시 산악지형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어 방문한 600년 된 전통 마을은 외형만 옛 모습이고 실상은 완전히 관광지화되어 있었다. 호수와 몇몇 가옥만 과거의 흔적을 남겼고, 대부분은 최근에 리모델링된 화려한 건물들로 변해 있었다. 토마토 계란 볶음은 맛있었지만, 찰밥을 넣은 만두는 낯선 맛이었다. 관광지의 화려함 뒤편에는 여전히 어르신들이 사는 오래된 집들이 있고, 문을 열면 오래된 생활도구들이 보였다.

 

이틀간의 여정이 끝나자 다시 도시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더 깊은 지역의 가난을 보려면 버스로 네다섯 시간을 더 이동해야 했지만, 산길에서 조난당할 뻔한 긴장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구이저우의 가난은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있고, 도시의 화려함은 그 가난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음 목적지는 광저우였다. 산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다른 종류의 대비와 문제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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