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의 애리조나 도전이 한국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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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애리조나 도전이 한국에 주는 교훈

월간기후변화 2025-11-24 10:03:00 신고

TSMC가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투자 규모는 이제 ‘해외 진출’이 아니라, 사실상 ‘국가 단위 공급망 이전’에 가깝다.

▲ TSMC 애리조나 공장 전경    

 

애리조나 투자액은 총 1,650억 달러, 2021년 당시 120억 달러였던 계획이 10배 이상 커졌다. 트럼프·바이든 행정부는 각각 1,000억 달러와 650억 달러를 TSMC에 끌어냈고, 미국은 이 투자를 사실상 새로운 통상 규칙의 기준선으로 삼기 시작했다.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 스위스가 약속한 2,000억 달러 역시 같은 문법으로 읽힌다. 미국 시장에 들어오고 싶다면, 미국에 최소 수백억~수천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자리 잡았다.

 

TSMC는 처음부터 이런 규모를 원한 적이 없다. 반도체 공장은 복잡한 화학물질, 가스, 물, 배관, 초정밀 장비가 촘촘하게 얽히는 거대한 시스템이어서, 해외에서 지어본 경험이 거의 없는 TSMC에게 미국 건설은 위험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SMC는 일정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대만 엔지니어들을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투입하는 속도전으로 대응했다.

 

이들은 공사 현장에서 아무 데나 앉아 등만 기대면 잠드는 강행군을 버텼고, 결국 첫 번째 팹은 가동에 성공했다. 이 팹은 지금 엔비디아의 블랙웰 칩까지 찍어내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 내 인허가 절차는 대만의 10~100배 수준으로 길고, 하나의 전력 설비 승인에 3개월 이상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TSMC와 협력사들은 마치 카운티 정부에 ‘반도체란 무엇인가’를 가르치듯 조항을 하나씩 설명하며, 필요한 조례를 신설하고, 법규를 개정하고, 단계별 교육을 반복해야 했다. 바뀐 규정은 18,000건이 넘는다.

 

반도체 엔지니어뿐 아니라, 법률 전문가까지 수백 명 단위로 동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력난도 심각한 문제다. 애리조나의 반도체 노동자는 부족하고, 대만에서 파견된 숙련 인력은 미국 비자 정책에서 제약을 받는다.

 

건설비는 계약 금액보다 훨씬 높아졌고, LCY 케미컬·솔베이처럼 한때 투자를 보류했던 기업도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TSMC는 멈추지 않았다. TSMC는 자신이 가진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전략을 택했다.

 

5nm 이하 공정 고객에게 가격 인상을 선언했고, 삼성전자 역시 평택 P5 재개와 함께 메모리 가격을 60%까지 올릴 수 있다는 방침을 고객사에 통보했다.

 

거대한 투자비가 들면, 시장 지배력을 기반으로 고객에게 비용을 넘기는 것이 현실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애리조나는 이제 미국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인텔이 1980년대부터 이미 오코틀로에 기반을 마련했고, 그 덕분에 TSMC와 대만 협력사들이 진입할 수 있는 생태계가 이미 갖춰져 있었다.

 

2020년 이후 애리조나 지역에 몰린 투자만 2,100억 달러가 넘고, 반도체 업체 6,600개가 몰려들고 있다. 이 지역은 캘리포니아의 대체지가 아니라, 미국 반도체 산업의 ‘수도’로 재편되는 중이다.

 

대만 내부의 상황은 더 절박하다. 전력 부족, 원전 폐쇄, 토지 부족, 인력난이 겹치면서 TSMC는 대만에서 더 확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TSMC는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플랫폼’이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제는 칩을 만들어주는 회사가 아니라, 반도체를 설계하고 공장을 짓고, 공급망을 구성하는 모든 과정을 국가 단위로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자국 반도체 생산’을 원한다면, TSMC는 그것을 설계하고 구축해주는 국가급 파트너가 되겠다는 계산이다.

 

초기에는 미국 투자를 가장 두려워하던 대만 협력사들도 인식을 바꿨다. 미국에 들어가야 고객을 확보할 수 있고, 미국 AI 투자는 2027년 이후까지 폭발적으로 이어질 것이며, 미국이 세계 기술투자의 최종 목적지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협력사들끼리 공장 초과 공간을 공유하고 장비를 임시 보관하는 사례도 늘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돕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 거대한 변화는 한국에게 그대로 닿는다. 대만이 성공한다면 한국도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대만이 실패하면 한국도 같은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대만과 한국은 반도체에서 경쟁자이자 거울 같은 존재다.

 

미국의 새로운 통상 규칙 속에서 한국 기업도 수백억~수천억 달러대 투자를 요구받을 것이고, 인력난·인허가 지연·비용 폭등 같은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TSMC의 미국 투자 실패와 성공, 협력사 생태계 구축 과정, 인허가 대응 방식, 비용 전가 전략은 한국 기업 모두에게 ‘실시간 교과서’가 된다.

 

한국은 TSMC를 경계해야 하지만, 동시에 배워야 한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벤치마킹할 것은 벤치마킹해야 한다.

 

미국 시대의 반도체 공급망은 이제 개별 기업이 아니라 국가 통상전략의 일부로 묶여 있다.

 

한국이 이 게임에서 중요한 자리를 확보하려면, TSMC가 겪는 모든 문제와 해결 방식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하며 대응해야 한다. 지금의 흐름은 단순한 투자 경쟁이 아니라, 국가 미래 산업의 판을 다시 짜는 새로운 질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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