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A씨에 대한 명예훼손 등 사건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4월9일부터 2019년 6월11일까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주식회사 하이트진로(000080)의 사옥 앞에서 허위사실을 적시한 현수막을 전봇대와 가로수 등에 게시해 명예훼손과 옥외광고물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앞서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같은 장소에서 허위사실을 적시한 현수막을 게시한 혐의로도 기소돼 2021년 10월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2018년 3월30일 피해회사 등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A씨가 설치한 현수막을 수거하고 일정 범위 내에서 특정 내용의 현수막 게시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의 쟁점은 가처분 결정 이후 A씨가 게시한 현수막이 선행 사건의 현수막 게시 행위와 포괄일죄 관계에 있는지 여부였다. 포괄일죄로 인정되면 먼저 공소가 제기된 선행 사건의 효력이 이 사건에도 미쳐 이중기소에 해당하게 된다.
1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과 선행 사건 공소사실을 포괄일죄로 판단했다. 두 범행이 동일 죄명에 해당하고 대상·행위 태양·피해법익·행위 목적·장소가 모두 동일하며, A씨가 피해회사를 상대로 수년간 장기간 1인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점을 고려했다. 범행 기간 사이에 2~3개월의 간격이 있으나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사(범의)가 갱신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공소를 기각했다.
2심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가처분 신청과 결정 과정에서 A씨가 현수막 게시행위를 중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시간적으로 근접하며,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범의의 단일성과 계속성은 개별 범행의 방법과 태양, 범행 동기, 각 범행 사이의 시간적 간격, 범의의 단절이나 갱신 여부 등을 세밀하게 살펴 논리와 경험칙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가처분 결정에 따라 A씨가 선행 현수막을 수거함으로써 범행이 일시나마 중단됐고, A씨는 가처분 결정에 따른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선행 현수막의 표현과는 다소 다른 내용의 현수막을 새로 게시한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명예훼손 및 옥외광고물법 위반의 점 각각에 관해 선행 사건 공소사실과 이 사건 공소사실 사이에는 범의의 갱신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두 공소사실은 포괄일죄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현수막을 수거한 후 다른 내용의 현수막을 새로 게시한 경우 범의의 갱신이 있었다고 보아 포괄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명확히 했다. 대법원은 단순히 시간적 간격이나 행위의 유사성만이 아니라 범행의 중단 여부와 범의 갱신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또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명예훼손 부분에 관해서는 공소제기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하고 불분명한 부분은 검사에게 석명을 구하는 등으로 공소제기 부분을 명확하게 한 다음 심리·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