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박물관을 다시 찾고 싶은 이유는 토머스 제퍼슨 동상을 보고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제3대 미 대통령이자 독립선언서의 주요 작성자다. 위 박물관에 가보면 제퍼슨 동상 위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독립선언서 문구가 보인다. 그런데 제퍼슨 등 뒤에는 이름이 새겨진 수십개의 벽돌이 쌓여져 있다. 이 이름은 제퍼슨이 생전에 소유했던 노예들의 이름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며 인권을 강조했던 제퍼슨의 ‘패러독스(모순)’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는 ‘목화가 왕’(Cotton is King)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미국에 목화 산업이 번창했던 때다. 그런데 이 목화 산업 기반은 노예 착취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불안한 경제 구조였다. 버지니아 대농장 가문 출신이었던 제퍼슨은 ‘천부인권’을 주장하면서 실제론 인권을 모르쇠 하고 노예제를 공고히 하는 ‘모순’을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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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꺼낸 것은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동서울변전소 증설 논란에서 이같은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을 느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국민주권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감일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가 정말 맞느냐”고 되물었다.
그동안 주민들이 호소한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삶의 어려움’이었다. 4만명 주거밀집지역에 전국 최초로 50만볼트에 달하는 변환소를 짓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였다. 영유아, 청소년, 다자녀, 신혼부부 등이 주로 사는 감일동 주민들은 현재뿐아니라 미래 세대에 미칠 피해를 우려했다. 이 사업의 본질은 전력망 국책사업인데도 지난 5일 고시 게재 전에 중앙정부와 일반 주민들과의 간담회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대통령실·국무총리실·기후에너지환경부·산업통상부 고위공무원들이 고시 게재 전에 감일동 거리를 걸어봤으면 어땠을까. 주거밀집지역 코앞에 설치하려는 50만볼트 변환소 위치도 보고 예상보다 큰 소음 소리도 들어봤으면 어땠을까. 초등학교 증축 공사까지 할 정도로 아이들이 많은 이곳, 곳곳에 갓난아이와 유모차를 볼 수 있는 이곳에 와서 주민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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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결국 이 대통령이 강조했던 것처럼 ‘국민의 삶’과 동떨어질 수 없다. 사람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 인권을 훼손하는 경제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앞서 ‘목화가 킹’이던 시대에 제퍼슨이 모르쇠 했던 노예 착취 기반의 경제 구조는 훗날 분열의 씨앗이 돼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AI가 킹’인 현 시대에 서울 이외 지역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서울 초집중식 전력 구조’도 자칫하면 사회적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훗날 우리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지방선거를 앞둔 생색내기라는 시선을 불식시킬 사회적 갈등 해소 모범 사례가 돼야 한다. 22일 주민들과 만나 “대안을 살펴보고 곧 다시 만나자”고 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의 약속이 헛된 공약(空約)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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