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형 치과가 이틀 만에 퇴사한 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동자 책임 범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이 병원은 퇴사로 인해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는 이유로 수백만원의 배상을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사직서 제출 이후 갑작스러운 퇴사, 업무 실수, 실적 미달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요구하거나 압박하는 회사와 관련한 상담이 계속 접수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단체에 따르면 일부 사업장은 근로자에게 업무용 장비 파손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계약 단계에서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한 문서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사회 초년생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이 표적이 되는 사례가 많다는 설명이다.
단체는 "사전 손해배상 약정을 쓰게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이고, 설령 노동자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회사 관리·감독 책임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노동자가 법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실제 과실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금액을 배상하는 경우도 있다.
단체에 따르면,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 '1개월 전 사직서 제출' 등 사직 절차 관련 규정이 있고 노동자가 이를 지켰다면, 회사가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관련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회사가 사직서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이 지나면 근로계약은 해지되는 것이 원칙이다.
단체는 "갑작스러운 퇴사로 인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손해는 회사가 입증해야 한다"며 "회사 측이 내용증명 등 공식 서면으로 요구하기 전까지 기다리고, 요구가 왔을 경우 '퇴사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음을 증명해달라'는 취지로 서면으로 회신하라"고 권고했다.
업무 중 차량 접촉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회사가 수리비 전액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단체는 "회사가 근무조건과 환경을 설정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으므로, 노동자의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액을 부담시킬 수는 없다"며 "법원도 '손해의 공평한 분담' 원칙에 따라 노동자의 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헬스장 트레이너가 퇴사하면서 기존 회원 수업이 취소돼 환불 요청이 들어온 사례에 대해서도 단체는 "근로자든 프리랜서든 계약 기간이 끝났거나, 계약 해지 절차를 제대로 지켰다면 손해배상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계약 중도 해지의 경우에도 환불 금액 전액을 배상할 책임은 없으며, 배상 범위는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규정이 없다면 사직 의사를 밝힌 날로부터 1개월 후 계약이 종료된다.
또한 회사와 거래처 간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대표가 직원에게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변호사 비용 일부를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접수됐다. 이에 대해 단체는 "거래처와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대표가 관리·감독해야 할 사안이며, 직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면 비용 청구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사전에 정하는 것은 무효로 간주되며, 실제로 법원은 노동자에게 손해 전부를 청구할 수 없다고 본다. 단체는 "법원은 노동자가 손해 전부를 회사에 배상하기로 하는 각서를 작성했더라도, 그 전부를 청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며 "일반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책임은 일정 한도로 제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조항이 근로계약서에 포함될 경우, 효력을 다투기 위해 노동자가 소송에 나서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해당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양현준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노동자가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거나 사직했을 때, 회사가 손해배상을 운운하며 협박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하다 발생한 사고에는 회사의 관리·감독 책임도 있고, 사직으로 인한 손해가 실제로 발생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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