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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금산분리 원칙은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 걸림돌이 아니며,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대안이 없을 때 고려해야 할 최후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금산분리 완화, 민원성 논의…상당히 불만”
주 위원장은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의 한 식당에서 진행된 출입기자단 오찬 행사 모두발언에서 “금산분리와 관련해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한쪽 측면에서 일종의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는 것 같아 상당히 불만이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금산분리 규제 완화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한다는 의미로 1982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대기업집단이 금융회사를 사금고처럼 이용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기업들은 산업과 금융간 협업을 막는 규제로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특히 반도체 등 천문학적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시장 환경에 제때 대응하기 위해선 금산분리를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은 금산분리 완화에 긍정적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산분리 완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반면 규제당국인 공정위는 금산분리 빗장을 쉽게 풀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주 위원장은 기업들이 현행 규제 아래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다면서, 금산분리 규제가 투자 활성화의 ‘허들’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수십년 된 규제를 바꾼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규제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방지하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성급한 판단으로 규제를 허무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대안을 먼저 생각해보고 방법이 없다면 금산분리 완화를 고려해야 한다”며 “기업들은 지금까지 연구개발(R&D) 투자를 잘 해왔다. 매년 수출을 잘 해서 벌어들인 돈을 투자할 때 가장 책임 있는 투자가 있고, 위험이 최소화되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주 위원장은 벤처캐피털(CVC) 등 일부 영역에서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지주사 소속 CVC는 100% 완전 자회사 형태로 둬야 하고, 투자금을 조성할 때 외부자금을 40%까지만 받을 수 있는 등 제약이 많아 활용성이 제한된다. CVC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이를 완화할 수 있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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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167명 증원…내년 1분기 실행
주 위원장은 이날 오찬 행사에 앞서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도 진행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공정위 조직·인력 확충 방향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공정위는 내년부터 조사·심의·데이터 분석 인력 등 총 167명을 증원한다.
우선 현재 기업거래결합심사국에서 민생경제와 밀접한 가맹·유통 분야를 분리해 가맹유통심의관을 신설하고, 하도급과 가맹·유통 분야 사건 처리 인력을 61명, 카르텔·독과점·소비자 분야 인력을 14명 늘린다.
또한 서울·경기·인천·강원 지역을 모두 관할하는 서울사무소의 경기·인천 지역 업무를 분리해 경기·인천 지역을 담당하는 경인사무소를 신설한다. 서울사무소는 공정위 전체 신고사건의 약 60%를 담당하고 있어 업무 과부하 문제가 있었다.
아울러 사건처리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임위원 1명을 포함해 심의 인력을 총 19명 증원하고, 비상임위원 1명도 추가 위촉한다. 카르텔조사국 소속 경제분석과를 조사관리관 직속으로 격상하고 AI·데이터·경제분석과 디지털 포렌식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도 23명 증원한다.
주 위원장은 “이번 공정위 조직·인력 확충 방안은 관계부처와 협의해 마련됐고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며 “에산안 심의가 잘 통과될 경우 내년 1분기에 개편방안이 실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강된 조직·인력을 통해 불공정행위로 생존 기로에 놓인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신속히 피해회복을 지원할 것”이라며 “조사를 받는 기업에겐 빠르게 불확실성을 해소해 경제적 약자와 강자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건강한 경제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주 위원장은 △배달앱 분야 과도한 중개수수료와 일방적인 배달비 부담 등에 대한 제도 개선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중복상장을 억제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신규 상장에 대한 의무지분율 50% 유지 방안 △하도급대금 지급 안정성 강화 등을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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