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와 유럽연합이 수년간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지만, 독일 산업계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베를린 데일리는 11월 18일, 베를린 소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센터(MERICS)가 발표한 최신 데이터를 인용해 “독일 기업들의 대중국 직접투자가 오히려 사상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업들이 정부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 기조보다 중국 시장의 매력과 산업적 필요성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로 읽힌다.
MERICS에 따르면 독일의 대기업 그룹들이 중국 투자 확대의 중심에 서 있다. BMW는 선양에서 배터리 프로젝트에 100억 위안 이상을 투입하며 중국을 독일 외 글로벌 R&D 네트워크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연례 전략회의를 베이징에서 개최하며 중국 시장 맞춤형 전기차 개발을 본격화했다.
화학 산업 대기업인 바스프(BASF)는 광둥성에서 새로운 대형 일체형 화학단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 마틴 브루더뮐러는 “중국은 바스프 성장에 매우 중요하며 독일 내 생산 축소를 상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보쉬(Bosch) 역시 중국에서 혁신사업을 확장해 미래 기술 선도 지위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행보는 단발성이 아니라 구조적 흐름에 가깝다. 보도에 따르면 BMW, 바스프, 보쉬 등 주요 기업 그룹의 지난 5년간 중국 투자 규모는 연평균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MERICS는 “독일의 중국 신규 투자 중 약 3분의 2는 자동차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독일의 대중국 투자는 뚜렷한 가속 신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 행보가 독일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올라프 메르츠 총리와 연방정부는 반복적으로 기업들에게 “중국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말라”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정부 내부에서는 기업들의 해외 투자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비공개 회의를 통해 행동 계획을 검토해 왔지만, 실제 조치를 취하기에는 정치적·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산업 전략을 재편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기업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과 시장 논리에 기반해 움직이고 있다. 정책 당국이 공식적으로 대규모 개입에 나서지 않고, 동시에 중국을 대체할 확실한 신규 시장 개척 지원책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독일 산업계가 중국을 계속 ‘경제 엔진’으로 삼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독일의 현주소는 정부의 지정학적 우려와 기업의 산업적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정부는 리스크를 말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기회를 중국에서 찾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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