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프로그램에 장애를 가진 선생님은 잘 안 보이더라고요. 제가 그런 벽을 허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1일 전화 인터뷰를 나눈 최국화(44) 아나운서는 교사를 하던 20대 중반에 장애를 만났다. 계단에서 내려가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후 하반신 마비가 돼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됐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20대에 찾아온 장애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최 아나운서는 "중도장애여서, 그 당시에는 내가 내 장애를 수용하지 못했다"며 "몸도 이상해지고 제 기능들을 하지 못하니 몸도 마음도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런 최 아나운서가 사회로 나오게 된 계기는 장애인식개선 교육이었다. 국립재활원장을 지낸 이범석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가 당시 주치의였는데, 이 교수가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최 아나운서는 "내가 내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잘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같은 두려움이 커서 거절했지만 여러 번 제안을 해주셔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강사 활동은 최 아나운서의 편견을 깨뜨렸다. 그는 "유치원에 교육을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바로바로 반응이 오니까 사실 두려웠다"며 "나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교육을 끝내고 나왔는데 아이들이 뛰어오더니 '선생님이 안 갔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또 올 수 있게 기도하겠다'고 하더라. 그때 너무 기뻐 눈물이 쏟아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한 번 시작해보자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최 아나운서는 무장애(베리어프리) 여행 관련 진행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고 라디오 DJ 등을 거쳐 2021년부터 KBS 장애인앵커로 선발돼 2년간 활동했다. 국내 최초로 장애인앵커가 장애인 올림픽인 패럴림픽을 취재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최 아나운서는 "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 노력이 너무 뛰어나 놀랐고 선수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그런 모습을 더 잘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시청자분들도 반응이 좋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전율이 올 정도로 강렬하고 좋았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최 아나운서가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가족의 지지와 도움 덕분이다. 남편 없이 홀로 5남매를 키운 최 아나운서 어머니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5남매는 물심양면으로 최 아나운서를 돕고 특히 동생은 다니던 대기업을 포기하고 언니인 최 아나운서의 간병을 맡고 사회 복귀를 지지해줬다.
가족과 함께 최 아나운서의 방송을 보고 힘을 얻는 사람들 역시 그녀가 다양한 활동을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는 원동력이다. 최 아나운서는 "나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는다,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사명감이 생긴다"며 "힘들어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다만 이동의 어려움, 일부 여전한 장애에 대한 차별적 인식 등은 활동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최 아나운서는 "제의를 받고 면접을 봤는데 최종 승인권자가 '장애가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고 다시 추스리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능력과 노력을 통해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최 아나운서는 장애를 접목한 아동 관련 프로그램의 진행을 꿈꾸고 있다. 그는 "TV에 나오는 아동 프로그램에 장애인은 없더라"라며 "지금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육을 나가면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엄청 좋아해주시는데 TV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 벽을 허무는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 아나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었는데, 예전의 나처럼 실의에 빠져있는 장애인도 아직 많을 것"이라며 "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장애인개발원과 공동 기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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