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KP 없는 CBDC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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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KP 없는 CBDC 운명은?

이데일리 2025-11-22 06: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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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최근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에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은행권부터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발언이 마치 한국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 한다는 의미로 왜곡되면서, “한국은행이 만들면 결국 CBDC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7월27일 ‘Bitcoin 2024 Conference’에서 “내가 대통령인 한 CBDC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올해 1월 23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창설·발행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은 찬성하면서도 CBDC는 완전히 차단하는 그의 입장이 명확해졌다. 이는 세계적으로 CBDC 논의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CBDC는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통화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원화에 해당한다. 스테이블코인이 현금·예금·단기국채 등을 담보로 민간기업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라면, CBDC는 국가가 직접 발행하고 국가 신용을 담보로 하는 디지털 법정화폐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손에 쥐는 만원권·오만원권 지폐가 전자적 형태로 변환된 것이 CBDC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반적 지급수단은 현금, 신용카드, 선불전자지급수단(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 직불전자지급수단(체크카드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CBDC는 현금을 대체하는 전자적 지급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는 급여를 은행 계좌로 받고, 필요한 경우 ATM에서 현금을 인출해 경조사비로 사용하거나, 새해에는 신권을 준비해 세뱃돈으로 건네곤 한다. 일상에서 현금 사용은 줄었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여전히 현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극단적 가정으로 현금이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법정화폐가 CBDC로만 통용되는 사회를 생각해보자. 월급은 CBDC 형태로 전자지갑에 들어오고, 경조사비도 스마트폰을 NFC(Near Field Communication) 리더기 등에 대어 ‘삑’ 소리와 함께 지불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모바일 결제가 일반적이다 보니 “구걸을 하려고 해도 QR코드부터 있어야 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PwC 글로벌 소비자 인사이트 설문조사 2019에 따르면 중국 소비자들은 월간 거래의 20% 미만을 현금으로 결제했다. 응답자의 70% 이상은 100위안(원화 약 2만 원) 이하의 현금만으로 한 달을 지낼 수 있다고 답했다.

6년 전 자료임을 감안하면 현재는 이러한 흐름이 더 가속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중국 인민은행(PBOC)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 결제가 약 73.2% 수준까지 올라갔고 QR코드 기반 결제의 침투율은 약 92.7%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모바일 중심 결제 구조는 편리함 뒤에 ‘동선·소비 패턴·생활 방식의 완전한 노출’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편리함을 이유로 현금을 받지 않는 상점들이 늘고 있고, 이런 흐름이 확산되면 국민들은 현금을 통해 익명성을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상당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CBDC를 발행하더라도 현금 수준의 익명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CBDC의 활용도는 기대보다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CBDC가 현금을 대체하려면 무엇보다도 사용자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진다는 신뢰가 필수다. 여기서 핵심 기술이 ZKP(Zero Knowledge Proof, 영지식증명)다.

(사진=픽사베이)


ZKP는 정보는 숨기고 조건 충족만 증명하는 암호기술이다. CBDC 시대에 필요한 프라이버시·보안 인프라의 핵심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해당 자금은 합법적”이라는 사실만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거래 경로나 상대방 정보, 사용자의 신원·동선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ZKP는 불법 자금세탁을 감추는 기술이 아니라 합법성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동시에 보장하는 차세대 AML 인프라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결국 CBDC가 현금을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가진 익명성의 핵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CBDC가 도입되더라도 국민은 여전히 ‘현금이 부여하는 자유’를 포기하지 않아 종이 지폐의 수요는 쉽게 줄지 않을 것이다.

CBDC 논의의 핵심은 결국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와 개인 사이의 권한 배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현금이 제공해온 익명성은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는 최소한의 보호장치이고, 이를 디지털 환경에서 재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핵심적인 기술적 수단이 바로 ZKP다. 중국·EU·미국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도 각국이 설정한 ‘허용 가능한 국가 통제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는 지금, CBDC가 성공하려면 단순한 디지털화폐가 아니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프라이버시·투명성·법적 안전성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ZKP 없는 CBDC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1960년 부산 출생 △서강대 경영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회계학) 석사 △고려대 대학원 법학(조세법) 박사 및 경영학(회계학) 박사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심리학 석사 △서강대 정보통신대학원 블록체인전공 석사 △공인회계사·세무사·증권분석사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 △한국자산관리공사 기업회생지원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장 △전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회 본위원 △전 국세청 국세심사위원 △전 한국도로공사 비상임이사 △전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블록체인 유튜브 ‘오문성의 Pick Show’ 운영 중. (사진=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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